부치지 못한 편지
별아. 아주 오랜만에 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곳은 어때. 지낼 만하니?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지, 새로운 친구는 생겼는지 궁금하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어. 아빠는 퇴직 후에 다른 일을 시작하셨고 엄마는 여전히 병원에 다녀야 하지만 예전만큼 힘들진 않으셔. 참, 우리 아이들은 벌써 10살, 8살이 되었어. 놀랍지 않니.
문득 헤아려 보니 몇 달 후면 너를 만난 지도 20년이 되더라. 네가 처음 우리 집에 왔던 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 분명 아빠가 태어난 지 5개월밖에 안 된 토이푸들이라고 했는데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의 네가 온 거야. 갈색 털이 아주 복슬복슬 통통한 모습으로.
그러나 발랄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그때의 넌 아주 소심했지. 너를 보내준 아빠 친구분에게 듣기론 넌 함께 살던 친구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모양이야. 그래서인지 늘 나를 졸졸 쫓아다녔지. 마침 나는 대학교 1학년이었고 그래서 시간이 아주 많았어. 너랑 많은 시간을 보냈단 뜻이지. 내가 의자에 앉아 있을 때면 너는 내 발밑에서, 내가 바닥에 있을 때면 너는 내 무릎에서, 내가 잠들면 내 옆에 누워있곤 했어.
그때의 널 떠올리면 떠나기 전의 네가 전혀 다른 이처럼 느껴져. 푸들의 유전질환인 슬개골 탈구로 너는 오랜 시간을 아팠잖아. 처음엔 뛰기를 힘들어하더니 나중엔 뒷다리가 조금씩 굽어 바로 펴기 힘들어했어. 정기적으로 가던 동물병원에서 수술해주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당시 우리 가족에겐 그럴 만한 여유도 생각도 없었던 것 같아.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 너를 더는 고칠 수 없게 되어서야, 나는 우리가 크게 잘못했다는 걸 알았지.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너를 보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 무지했던 나를, 무책임했던 나를, 이기적이었던 나를 자꾸만 확인하는 것 같았거든. 내가 너를 조금씩 멀리했던 걸 아마 너도 느끼고 있었을 테지.
그래서 반찬을 가져가라는 엄마의 연락을 받고 친정에 갔던 그날도 후다닥 반찬만 챙겨 집으로 돌아왔던 거야. 불편한 다리로 나를 마중 나왔던 너에게 나는 짧은 인사만 전했지. 그때 너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더라면, 잠시나마 안아주었더라면, 나는 지금보다는 덜 후회할 수 있었을까.
다음 날 저녁, 엄마에게 전화가 왔어. 네가 떠났다고 하더라. 감자전을 먹던 내가 엉엉 울자 아이들이 깜짝 놀라던 기억이 나. 아빠는 산에 올라 우리 집이 잘 보이던 곳에 너를 묻어주었다 하셨어. 그게 벌써 5년 전, 2019년 8월 27일의 일이네. 사실 나는 아직도 아빠에게 네가 떠나던 날의 이야기를 묻지 않았어. 네가 너무 아프게 갔을까 봐, 그래서 나를 또 한 번 미워하게 될까 봐 무서웠거든. 어쩌면 나에게는 너의 아픔과 고통을 마주할 용기가 아직 없는 것 같아.
네가 지내는 그곳은 어때? 어느 책에선가 강아지들이 죽으면 가는 세상이 있다는 걸 보았어. 거기선 아픔도 슬픔도 없다고 하더라. 어쩌면 나같이 죄 많은 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한번 믿어보기로 했어. 네가 그곳에서만큼은 튼튼한 다리로 마음껏 달리고 있다고 믿고 싶으니까.
사람이 죽으면 세상을 먼저 떠난 그의 반려견이 마중 나온다고 하더라. 만약 너를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먼저 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 그날이 오면, 나는 그때 너를 미워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어. 그저 새로 생긴 내 가족에 정신이 팔려 너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고, 나 때문에 아픈 너에게 미안해서 너를 똑바로 볼 수 없었다고, 네가 미워서가 절대 아니라고 말이야. 만약에 네가 나를 마중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정말 괜찮을 것 같아. 지금의 생활이 너무 좋고 편해서 나를 다 완전히 다 잊었다고 한다면 나도 행복할 거야.
별아. 이 편지가 네게 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마음속에만 담아뒀던 이야기를 이렇게 꺼내놓으니 이제 진짜 너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잘 가. 나의 영원한 동생, 별아. 너를 영원히 잊지 않을게.
2024년의 어느 가을 날
너의 누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