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명현 Aug 15. 2020

오늘의 표현:'I'm a writer' 작가입니다.  

<'너도 할 수 있다'는 뻔한 소리가 아니라는걸 이젠 알 때도 되었네>

 


제 안에 잠든 ‘작가’를 깨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소풍’을 주제로 시를 지어 상을 받았습니다. 글짓기반에 떠오르는 유망주로 들어갔지요. 첫날부터 원고지를 챙겨 오지 않아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퇴출당했습니다. 준비물을 제대로 챙겨갈 수 없었던 가정환경 때문에 그 후로도 학교 생활이 순탄치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글쓰기반 퇴출로 인해 ‘나는 앞으로 글을 쓰지 못할 거야’라는 인식을 스스로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에세이를 써서 투고를 했는데 출판사에서 바로 계약을 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나로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에세이 책은 한국 문화 예술 위원회로부터 올해의 2020 문학 나눔 도서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휘황찬란한 글로 필력을 뽐내려기 보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순간 속으로 깊이 들어갔습니다. 평생 글을 쓸 수 없을 거라 외치던 제 자신과 접점을 찾고 화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저는 좀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에이, 내 까짓게 뭘 하겠어’ 하며 찬물을 끼얹는 말로 제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제 경험과 그 경험이 가져다주는 느낌, 깨달음을 온전히 신뢰합니다.


요즘은 어디 가면 ‘작가’라고 한번 더 주목을 받습니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은근슬쩍 이름만 소개하고 넘어갑니다. 그때마다 꼭 옆에 있는 오지랖 넓고 목소리 큰 사람이 ‘야, 쟤 책 쓰는 작가야. 이번에 상 받았잖아’라고 합니다.

그때부터 모든 시선과 집중에 제게 머뭅니다. ‘저 사람은 뭔가 다른 사람’이라는 무언의 인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됩니다. 알고 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나는 절대 못 할 일이야”, “와, 책을 썼다고? 난 짧은 글이라도 좀 제대로 써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라는 다수의 푸념으로 어색하게 제 소개의 순서가 마무리됩니다.



조금만 훈련이 되면 누구나 잘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입니다. 그런데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이 글 쓰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말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분위기 메이커 K 양은 막상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라 하면 한 없이 작아집니다. 그녀의 솟구치는 심장박동 소리가 옆 사람에게 들릴 정도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릅니다.

평소답지 않게 말을 더듬고 거의 음소거에 가까운 볼륨으로 말을 합니다. 알고 보니 K양은 말하는 자체가 두려운 게 아니라 사람들이 그녀를 어떻게 평가할까 걱정하며 노심초사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글쓰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쓴 글은 별로 일 것 같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에 그녀의 글쓰기는 진전이 없었습니다.



‘글쓰기’란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글쓰기는 활자로 말하기 이니까요. 일상의 모든 것이 디지털로 탈 바꿈 한 이 시대에도 우리는 글쓰기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거래처에 이메일을 쓰면서 한 줄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던 기억이 있나요? 회사 단톡 방에 한 문장 쓰는 것도 영 부담스러운 적은 없었나요? 문자, 이메일, 문서 작성, SNS까지 글 쓰기는 이미 삶의 많은 영역에 녹아들어 가 있습니다. 대하기 힘든 사람에게 카톡 답장을 하는 것은 작가인 저에게도 어려운 일입니다. 성심성의껏 써 놓고는 영 어색한 것 같아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고심 끝에 전송을 누르곤 합니다.



페이퍼 (리포트) 여러 개를 매주 제출해야 했던 미국 유학시절, 주말 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빈 문서를 화면에 덩그러니 띄워 놓고 무엇부터 쓸지 몰라 난감했습니다. 미국 학생들은 자신만의 논리를 명확히 제시하고 핵심 사례로 뒷받침하며 글로 풀어가는 훈련을 어려서부터 합니다. 그에 비해 글쓰기 훈련이 되어있지 않았던 저는 “이왕이면 객관식 퀴즈를 치게 할 것이지, 이게 뭐야.” 하며 방학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이제부터 글 쓰기에 관해 자주 묻는 질문과 답변을 공유합니다.



1.     좀 쉽게 쓰고 싶은데, 꼼수 부릴 수는 없나요?


미안한 말이지만 글쓰기는 지름길과 꼼수가 먹히지 않는 지난한 여정을 요구합니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 실력이 향상됩니다. 토익 시험처럼 족집게 방식으로 접근했다가는 큰일 납니다. 운전과 수영을 유튜브로 배우려면 한계가 있듯이 몸소 부딪혀 가며 직접적인 체감을 쌓아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집요한 집중력과 지구력으로 창작의 고통을 버텨내는 것은 작가로서 꼭 거쳐야 하는 관문입니다. 어려움이 감지될 때 미리 쉬운 길로 피하려는 습성은 인간인지라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지만 인내하며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딱히 고통과 어려움이 아니라는 것을 본인이 알게 됩니다.



차 한잔에 자판을 두드리는 시간은 자신에게 양분을 주는 시간입니다. 내면을 튼실히 다지는 공간입니다.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특권과도 같은 것입니다.  글감들이 내 손을 거쳐 재 창조되는 기쁨은 알 사람만 아는 비밀입니다. 그렇다고 특공대처럼 힘들게 훈련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유독 제 주위엔 자기 계발에 목숨 건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와는 에너지가 맞지 않아 가끔 숨이 턱 하고 막힙니다. 저는 적당한 저의 게으름을 인정합니다. 글을 자주 많이 써야 한다는 압박감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이 내용은 오늘 꼭 쓰고 자야지!' 다짐을 하고도 깜빡하고 잠이 든 적도 많습니다. 그럼 생각날 때 다시 쓰면 될 일입니다. 한 템포 쉬고 여유 있게 쓸 때 오히려 감칠맛 나는 글이 나옵니다. 규칙적인 시간에 정해진 분량의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숨이 턱 막힙니다. 창작이라는 활동 자체가 기존의 체제를 거부하는 것이니까요. 써야 하니까 억지로 쓴 글, 양을 채우려 영혼 없이 쓴 글은 흡입력이 없습니다. 오히려 읽는 사람에게 피로감이 그대로 전달될 뿐입니다. 



2.     어차피 완성도가 높지 않을 거 같아서 시작할 엄두가 안 나요.

글을 수정하고 다듬는 것은 별개가 아닌 글 쓰기의 일부입니다. ‘처음부터 잘 써야 한다’며 숨 막히게 구는 내 안의 조교를 내 보내세요. 저는 글을 잘 써야만 한다는 중압감으로 제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습니다. 대신 초안이 엉망이어도 괜찮다고, 단 시간에 걸쳐 나오지 않아도 되니 여유 있게 쓰라고 다독여 줍니다.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에 손을 얹기까지 감정과 행동이 경쾌합니다.

.



3.     주제를 아예 못 잡겠어요. 무엇에 대해 써야 할지를 모르겠네요.

필력을 떠나 내면의 관찰자와 욕망을 키우는 것이 우선입니다. 굳이 쓸 주제와 써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참 난감한 일입니다. 작가란 독자에게 꾸준히 읽히는 사람입니다. 소통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남에게 읽히고픈 약간의 관종 기질과 읽혀도 상관없는 약간의 뻔뻔함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의 일상을 조금 더 존중했으면 합니다. 글감이 존재하지 않을 만큼의 시시콜콜한 삶이란 이 세상엔 없습니다. 처음부터 독자의 반응을 살피느라 주제를 정하는 것조차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늘 긍정과 희망을 외치지 않아도 됩니다.

휘황찬란한 미사여구보다 오히려 투명한 문장들이 독자들에게 울림을 준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알고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이 글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출근하고 점심 먹고 퇴근해서 샤워하고 자기 전 뉴스를 보는 평범한 일상에 생명력이 가해지려면 글로 한 번 옮겨봐야 합니다. 저 또한 사소 하다 못해 영 헛짓거리 같아 남 보기 부끄러웠던 제 일상이 값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작가의 눈으로 바라보면 모든 삶이 작품입니다.



셰프인 친구는 시장이나 마트에 가면 눈이 초롱초롱 해 집니다. 엄선된 식재료를 모아 고급 요리를 합니다. 멋쟁이 친구들은 쇼핑을 즐깁니다. 핫한 패션 아이템들을 모아 자신을 멋지게 꾸밉니다.

저는 작가입니다. 일상의 상황, 사건, 대화, 반응, 감정 등 열심히 글감을 모읍니다. 글로 녹여냅니다.

혹시 요리처럼 글쓰기도 장비빨인가 하여 노트북을 더 좋은 것으로 바꾼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노트북이 바뀌었다고 글쓰기가 술술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글을 쓰려는 의지 자체가 노트북 성능보다 높으면 종이에 연필로 써도 될 일입니다.  


4.   굳이 글을 써서 남는 것이 있나요? 글쓰기가 도대체 어디에 좋다는 건지…


글쓰기는 자신과 객관적으로 마주 하는 시간입니다. 천천히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그 속에 나만의 말버릇, 반응, 감정 패턴 등 나의 전인성이 드러납니다. 자신과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더 나은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인생은 전체적으로 보면 비극이지만 부분적으로 보면 희극입니다. 희극에 초점을 맞추고 극대화 함으로써 우리는 비극이 주는 아픔과 고통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작가가 된 이후로는 문제 앞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 이기보다 ‘이 또한 지나가고 있구나’ 하고 한 걸음 물러납니다. 어차피 글로 풀어낼 것이니 그렇게 쫄 필요 없다고 되뇌며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내기도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비법이 쓰인 자기 계발서가 판을 칩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동기부여가 되지만 그런 류의 책에 의존함으로써 그들의 방법과는 다른 나만의 방법에 종종 눈이 가리어집니다. 자신의 브랜드를 내세우며 접근하는 저자들의 대부분은 비슷한 패턴을 보입니다. 독자를 향한 진정성보다는 자신의 스토리만을 내세우며 미래의 성공을 책임져주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성과를 지나치게 부풀리고 자신이 고생했던 에피소드를 반복적으로 어필합니다. 이렇게 이성보다는 감성을 더 자극해서 독자들의 열정과 충성심을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활용합니다. 요즘은 실력보다 홍보를 잘하는 사람이 각광을 받습니다. 블로그의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성 있는 글을 쓰는 블로거들이 있는가 하면 매번 돈을 받고 광고성 글을 올리는 블로거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순진한 호갱 독자가 되지 않도록 분별력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쓰는 자는 쓰는 자를 알아보기에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5.   저는 책을 굉장히 많이 읽는 다독가입니다. 그래도 글쓰기는 영 어렵네요.


다독하는 것과 글쓰기는 다른 차원입니다. ‘나는 다독하는 사람인데 당연히 글을 잘 써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채찍질을 멈추세요. ‘여태껏 많이 읽었으니 이제는 써야 할 때’라는 것을 인식한 것만으로도 남들보다 출발선이 빠릅니다. 잘 쓰고 싶다면 일단 쓰면 됩니다. 도저히 유치해서 손발이 오그러 질 것 같은 글도 일단 써봐야 고칠 거리가 생깁니다. 당신은 읽음으로 엉덩이 싸움을 해 낸 사람입니다. 쓰기로도 충분히 가능한 잠재성을 갖고 있습니다. 인풋만 하고 아웃풋을 내놓지 않으면 영양 불균형이 옵니다. 먹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비만이 된다는 이치는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이지요. 쓰기로 아웃풋을 내세요. 자신만의 아카이브를 만드세요. 그곳에 지금까지의 인풋들을 전시해 보세요.




6.   글 잘 쓰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가도 괜히 주눅이 들어요.


솔직히 저 또한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부럽습니다. (단, 필력이 좋은 작가에 한해) 제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이는 열등감 속에 잠시 머물다가 글쓰기에 있어 완벽한 일인자가 어딨겠냐싶어 정신을 퍼뜩 차립니다. 매번 경쟁 구도를 만들어내 자신을 못 살게 구는 버릇은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제 자신을 누군가에게 증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로서의 일상을 충실히 살아내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자체가 행복입니다.



오늘은 누구를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눴나요? 오늘 본 유튜브 영상 중에 흥미로운 주제가 있었나요? 요즘은 어떤 관심사를 갖고 계신가요? 글감 소재가 벌써 3개나 나왔네요. 이제 글을 한 번 써 볼 용기가 생기나요?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표현: 'Doormat' 호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