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_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사회생활의 출발선에 서있는 당신에게

by 옆집여동생

지금은 매일 어떻게 하면 회사에 안 갈 수 있을까를 성실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대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에는 여느 취준생들과 마찬가지로 사원증 하나 목에 걸어보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였다. 당시에 시간은 많고 체력은 남아돌고, 바깥 풍경 보면서 취업 스트레스도 풀고 싶은 마음에 서울에 있는 대교를 걸어서 건너는 무모한 취미 생활을 감행한 적이 있었다. 바로 옆으로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 매연 가득한 산책길이었지만, 살짝 고개만 돌리면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는 나름 낭만도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그중 가장 여러 번 간 곳은 마포대교였는데,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을 때쯤 마포대교 위에서 바라보는 여의도는 참 아름답고도 서글펐다. 수많은 빌딩들이 불빛을 반짝거리고 있었고,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갈한 차림새의 직장인들과 추리링 차림의 내 모습이 대조되면서 이어폰도 꽂혀 있지 않는 귓가에 괜스레 서글픈 BGM이 흘러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지루하고도 마음 졸이는 취준생의 나날들 중, 하필이면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 해주겠다고 기차 타고 올라온 엄마를 마중 나간 서울역에서 최종 면접 탈락 문자를 받고 엄마가 싸들고 온 반찬 보자기를 끌어안고 대성통곡했던 날도 있었다.



서른 번도 넘는 서류와 면접 전형으로 희망고문에 지쳐갈 때쯤, 꿈꾸던 회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감사하게 나를 뽑아준 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고 지치는 하루하루였지만 점심시간에 동료들이랑 사원증을 목에 걸고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산책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이런 것이 바로 직장인의 삶인가’라고 소소한 뿌듯함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익숙치 않은 업무에 많이 혼나기도 했지만, 결국 회사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를 알아주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곳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회생활을 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 이 스토리는 아주 잠깐 새에 지나간 일들에 불과하지만 나에게만은 여전히 ‘처음’을 떠올릴 때면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틀어주는 특선영화같이 주저 없이 재생되는 스테디셀러이다.




태어나서 가장 처음으로 만든 빵은 스콘이었다. (갑자기 왜 빵 얘기야? 하겠지만, 여기가 원래 갑자기 빵얘기하는 그런 채널이다.) 빵을 원래 좋아했는데, 맨날 먹지만 말고 만들어도 보자는 생각이 든 후 교보문고에 가서 기초 베이킹 책을 하나 사 왔는데, 스콘이 바로 그 책의 제일 앞 장에 있던 레시피였다. 발효 과정도 없고 재료도 간단한, 가장 난이도가 낮은 빵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가장 앞 장에서 소개하고 있었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는 맨발로 넘어야 하는 에베레스트 산맥 같은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온 주방에 밀가루 파티를 하고 나서야 3만 원 주고 산 미니오븐에 반죽을 앉혀놓을 수 있었는데, 빵이 구워지는 20분간 한 번도 자리를 뜨지 않고 자그마한 오븐 유리창 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견과류나 초코칩 같은 것도 넣지 않은 플레인 한 밀가루 반죽 그 자체였지만, 난 아직까지 처음으로 내가 만든 스콘의 충격적인 맛을 잊지 못한다. 아마 지금 다시 먹는다면 이게 뭐야 할지 모르겠지만, 사람의 감각이란 게 감정의 영향을 원체 많이 받기 때문에 ‘나의 첫 스콘’이라는 필터가 단단히 씌워져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이런 나의 첫 사회생활도 내가 처음 만들었던 스콘처럼 직장인이라면 누구나가 겪는 과정이고 그다지 특별하지만은 않은 스토리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이라는 단어에는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복잡 미묘한 애틋함이 있다. 처음 자전거를 탔을 때도, 처음 집을 떠나서 혼자 자취를 시작했을 때도, 처음으로 연애를 시작했을 때도, 항상 처음으로 무엇을 할 때의 기억은 좌충우돌 우당탕탕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처음’이 주는 풋풋함과 설렘은 한참이 지난 후의 어느 날 그때를 떠올려볼 때 언제든지 우리를 피식 웃게 만들어 준다.



회사 근처에 스콘을 아주 잘 만드는 베이커리 카페가 있다. 스콘은 처음엔 과정이 간단해서 만들기 쉽다고 생각했지만, 빵력이 높아질수록 맛있게 만들기는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죽을 오래 해서 글루텐이 과도하게 형성되면 빵 같은 질감이 되어버리고, 낮은 온도에서 오래 구우면 너무 퍼석해져 버린다. 많은 사람들에게 ‘스콘을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느냐’며 호불호가 강한 빵으로 손꼽히는 이유가, 정말 맛있는 스콘을 파는 곳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 가게의 스콘은 퍼석하지도 빵 같지도 않은, 은은한 버터향과 함께 부드럽게 부서지는 아주 적절한 질감을 가지고 있다. 이 정도 수준의 스콘을 만들기 위해 버터나 우유의 양, 반죽의 정도, 밀가루의 종류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바꿔가며 수많은 테스트를 통해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어 왔을 것이고, 그 또한 가장 처음의 시도가 있었을 것이다.




일하고 싶은 회사에 지원하고, 면접을 보고, 또 떨어지고. 또 다른 회사를 찾아서 서류를 쓰고, 면접을 보고. 이런 과정 자체가 감정적으로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지만, 다행히 이 과정을 통과하여 새로운 시작에 성공했다고 해도 돈을 받기 위해 하루 종일 익숙치 않은 일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길고 긴 사회생활의 초입 어드메에 서서 이 글을 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래도 언젠가는 서툴렀던 첫사랑을 떠올릴 때처럼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될 거라고, 조금만 더 잘 견뎌 보자고, 지금 너무 잘하고 있다고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다. 이해가 안 가는 지시를 수행해야 하고, 5리 길을 100리에 돌아가야 하는 방법으로 일을 해야 하고, 도대체 어디서 찾았는지 궁금할 정도의 빌런들이 활개를 치는 곳이지만, 그래도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걸어 가다가다 보면 입 안에서 고소하게 부서지는 최고의 스콘처럼, 비장의 무기를 연성하고 강화해 나가는 매일 아침 로그인하는 애증의 던전으로 무한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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