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경 Apr 30. 2021

서른 넘어 처음 생긴 내 방_3

아이고 또 시작이야...!(질끈...!)


그날 밤 엄마는 문래에 남고 싶다며 울었다. 새로운 곳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 했다. 나는 이 유약한 사람이 어떻게 애를 셋이나 낳았는지 아직까지 신기하기만 하다. 엄마는 문래동에서 꾸려왔던 모든 것들을 잃은 듯 거대한 상실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계속 울며 문래에 있을 수 있다면 오피스텔이라도 좋으니 좀 더 집을 찾아보자고까지 했다. 이 발언은 한껏 들떠 있던 아버지의 기분을 조지기에 아주 효과적이었다. 아버지 성격에 썅욕이 안 나온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는데, 아버지 역시 엄마의 프라이드를 깎아내리는 데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싸움은 꽤 오래 이어졌다.


- 이 모자란 여편네야, 계산이라는 걸 좀 해봐라... 여기 말고 지금 있는 돈으로 얼마나 더 괜찮은 데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애!

- 문래 쪽 매물을 아직 제대로 안 봤으니까 좀 더 보자고...

- 그럼 얘들한테 집은 왜 보여줬어? 처음에 나랑 갔을 때 확실하게 말을 하던가! 그리고 빚 갚으려고 집 파는 건데 문래에서 집 구하려면 다시 대출을 받아야 한다니까!

- 빌라나 오피스텔은... 안 받아도 되잖아.

- 그런데는 죽어도 집값 안 오를 거라고 했던 게 너야!

- .......


나는 딸 입장으로 대부분의 경우 엄마 편이지만 이번만큼은 엄마 편을 들어줄 수 없었다. 왜냐면, 아버지가 구구절절 맞는 말을 했으니까. 심정적으로 편을 들어주기도 힘들었다. 그냥 가기 싫어서라니. 나도 가기 싫다고요 엄마. 우리 이사 가고 싶어서 가는 거 아니잖아. 근데 어쩌겠어. 상황이 이렇게 돼버렸는걸.


운다고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 그치?


운다고 상황이 나한테 우호적으로 바뀌었던 건 8살 이후로 끝났다. 엄마도 결국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는 다음날 계약금을 걸었다. 사실 나는 아버지와 사이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닌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 년에 통화를 3번 할까 말까 한 우리 부녀가 엄마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전화기 불나게 전화를 주고받아야 했다.(아버지 : 네 엄마 계약서 도장 찍을 때 또 울더라. 네가 전화해서 기분 좀 달래줘라.) 

하... 나는 일하다가 말고 또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나 위로 잘 못하는데. 거기다 상대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자주 울리는 사람이다. 전화를 하면서도 내가 과연 엄마의 마음을 달래 줄 깜냥이 될지 반문해봤지만, 노답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엄마는 좀 젖어있지만 나름 가뿐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엄마 괜찮아...? 했더니, 도장까지 찍어버려서 이젠 뭐 어떻게 무를 수가 없다고 하하 웃었다. 그보다 공원이 너무 좋다고, 지금 아버지랑 구경 중인데 넓고 상쾌하다고 다음에 같이 오자고 했다. 나는 도저히 엄마의 조커 뺨 때리는 감정 기복에 따라가질 못하겠어서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만 했다. 엄마가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민경아, 엄마는 변덕쟁이야...


그 이후로 서류 서류 서류. 아버지는 집을 팔고 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서류를 처리했다. 여자들은 짐을 정리했다. 자그마치 25년간 살았던 집이다. 잡동사니며 쓰레기, 안 입고 안 쓰는 옷과 물건이 어마 무시하게 나왔다.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고... 초등학생 때 모았던 god 엽서집이며 중학생 때 받았던 종이 장미꽃, 구 남자 친구들이 준 편지들, 찍은 것도 잊고 있었던 사진들, 언젠가 다시 입으리라 다짐하며 처박아둔 작아진 옷들과 아껴서 똥 된 옷들을 다 버렸다. 책도 족히 3박스는 버린 것 같다.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곰팡이 피고, 색이 바랜 책들만 버렸는데도 그 정도였다. 남은 책들은 그대로 새 집에 싸 들고 가야 하는데... 이걸 또 다 어디에 두나... 머리가 아팠다. 그 와중에 강남에 있던 회사가 신사로 이사를 했다. 여태 옹이 박혀 살다가 이렇게 집이며 회사며 죄다 이동을 하는 걸 보니 올해는 이동수가 많은 해임에 틀림없었다.


엄마가 뒷산에서 주워온 솔방울과 벌레가 냠냠한 도토리.


그리고 대망의 이삿날. 나랑 동생이 퇴근하고 집에 갔을 땐 얼추 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아직 주문해둔 가구가 오기 전이라 썰렁했지만 내 공간이 생겼다는 게 마냥 좋기만 했다. 아직 풀지 않은 짐은 박스째로 베란다에 우겨져 있고, 매트리스와 행거만 덜렁 있는 그 방에서 나는 오래도록 감탄했다. 그러다가 봐서는 안될 것을 보고 말았는데, 문 뒤쪽 벽에 못이 2개 박혀있는 게 아닌가... 아니 도배를 새로 했는데 웬 못이지? 당황스러워서 거실에 있던 아버지한테 물었더니 엄마가 박았다고 했다. 왜?! 나는 분개했다. 엄마는 마침 시장에 가고 없어서 나는 엄마가 올 때까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대체 어떻게 이사 온 첫날에 흰 벽에 못을 박을 수 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느라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엄마가 도착하자마자 다다다 쏴 붙였는데 엄마의 대답은 기가 막힐 정도로 심플했다. 못을 안 박으면 옷은 어디에 걸어?


아니... 하... 진짜 우리 엄마 어떡하지?


저 문이 끝나는 쪽에... 못이 아직도 2개 박힌 채로 있다.


엄마는 가끔, 아니 자주 물건의 본래 기능을 뛰어넘는 활용으로 가족을 뜨악하게 만든다.(지금도 안방에선 행거 아래 선반이 TV 장으로 혹사당하고 있다.) 멋대로 물건을 버리거나(!) 배치를 맘대로 바꾼다거나, 말도 안 되는 센스로 목덜미를 잡게 하는 빌런이다. 그래 빌런이야... 이렇게 정의 내리고 나니 속이 좀 풀린다. 아무튼 벽에 박힌 그 대못 2개는 며칠간 나를 화나게 했다. 볼 때마다 이가 갈렸다. 집에 장도리도 없어서 빼려면 또 돈을 써야 하는 판이었다. 나는 엄마가 알아서 그 못을 빼주길 바랐지만, 그러다가 괜히 장도리에 눌린 자국까지 생길까 봐 그러라고 하지도 못했다. 못도 쓸데없이 커서 문을 활짝 열면 못에 닿는다. 완전 짜증... 이사한 지 한 달 반이 지났는데 아직도 못을 생각하면 짜증이 솟구친다. 후... 잠시 진정 타임.(찬물)


아무튼 이사 가기 전까지, 그리고 지금도 나는 수시로 오늘의 집에 들어가서 내 마음을 혹하게 하는 물건들을 골라 방을 채웠다. 이사 오면서 거의 모든 가구를 다 버리고 왔기 때문에 각자 알아서 자기 방을 채워야 했다. 돈이 만만치 않게 들었지만, 머릿속에서 수없이 배열해왔던 모든 가구와 소품들의 합이 조화롭게 들어맞을 때의 그 성취감이란. 처음부터 자기 방을 가진 사람은 결코 모를 기분이다. 그동안은 알 길이 없었던 내 취향을 비로소 알게 되면서 나 자신을 한 겹 더 이해하게 된 기분. 난 내 방을 아늑한 느낌이 나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방에 딱 들어서면 그곳이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게 조명과 침대였다. 저상용 침대를 선택한 건 순전히 아늑함을 위한 거였다.(그리고 우리 댕댕쓰도 올라오기 편하고 말이야) 지금도 침대는 아주 만족한다. 습기가 쓸지 말라고 원목 프레임을 깔고 위에 매트리스를 올렸다. 제품은 무인양품 것으로, 구경 갔다가 누워보고 마음에 들어서 더 볼 것도 없이 사버렸다.


나는 아무래도 초록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사와 내 생일이 얼추 겹쳐져서 지인들이 선물로 소품을 많이 보내왔다. 캔들, 이불 커버, 베개, 그림 같은 것들.(모두 사랑해) 침구는 무조건 하얀색으로 해야지, 했었는데 막상 하얀 이불을 덮으니까 부담스러웠다. 응 그렇지, 여긴 호텔이 아니지... 하다못해 생리라도 새는 날엔... 어우. 금방 정신을 차렸고 양면으로 쓸 수 있는 딥 그린/베이지 이불 커버를 구입했다. 베개 커버도 같은 곳에서 구입해 양면으로 사용 가능. 쿠션과 커버는 모던 하우스에서 샀다. 침구 컬러가 정해지니 어울리는 쿠션 커버를 고르는 건 쉬웠다. 겨자색도 식물도 너무 좋아!


요즘엔 씻고 침대에 푹 빠지듯이 눕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이전에 동생과 같은 방을 썼을 때는 누리지 못한 온전함이다. 우리는 같은 방을 쓰는 내내 서로의 자리를 배려해야 했었으니까.(그 덕분에 물고 뜯는 다른 자매들에 비해 사이가 좋은 걸지도) 캔들과 향을 피워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고, 한낮에 어두침침하게 블라인드를 내리고 있어도 괜찮다. 여긴 내 방이니까. 뭐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정말 최고다. 내 방 만세! 나는 여태 몰랐던 종류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여전히 문래가 그립지만 내 방이 있는 이곳에서의 생활도 좋다. 아버지는 이미 20년 정도 살았던 사람처럼 편해 보이고 엄마와 동생도(여전히 뜯어내지 못한 체리 몰딩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만) 나름 빠르게 적응해내고 있는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른 넘어 처음 생긴 내 방_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