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행복하신가요?
선생님이 되어보니 알겠다. '행복한 교사가 행복한 교실을 만든다.'의 진짜 의미를.
요즘 나는 금요일만 기다리는 것 같다. 학교에서 열심히 하냐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
애들 한 명 한 명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그냥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시간이 많은 것 같다. 한 마디로 엉덩이가 무겁다. 특히 요즘.
그 이유를 들자면
1. 계절 탓
겨울이 되니 기분이 쳐진다. 겨울을 행복하게 보낸 적이 딱히 없다. 여름에는 이번 여름은 어떻게 해서든 행복하게 보낼 거다. 여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니까.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겨울은 어떻게 보면 나에게서 '버리는' 계절이 된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2. 시끄러운 환경이 나한테 안 맞아서.
사실 선생님이라는, 한 사람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이끌어가야 하는 역할과 먼 사람이었다. 그래서 임용 시험 면접을 볼 때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당황 안 한 척, 뻔뻔한 척, 자신감 있는 척을 많이 한 것 같다. Fake it until you make it이라는 것도 있는 것처럼 그런 척을 하다 보니 정말 그런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배우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 역할에 너무 몰입해 우울증 걸리고 고통받는 것처럼 나도 그런 것 같다.
청소를 깨끗하게 하는 것도, 애들을 조용한 상태로 만들고, 질서 있게 교실을 유지하게 하고, 싸우지 않게 갈등을 해결하는 것도 너무 버겁다. 나는 이 역할이 아니면 사람과 마주쳐 갈등상황에 처하는 것을 최대한 피하고 싶은 사람이기에. 그렇게 살아왔기도 하고.
3. 열심히 안 해도 월급은 그대로이다.
그러니 오로지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에서, 나의 보람에서, 윤리적인 측면에서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공립 초등학교 교사의 역할인 것이다. 그런데 열심히 하기에 출결이니, 생기부니 하면서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 일들은 아이들이 하교하고 퇴근하기 직전 1시간 30분 안에 끝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 애들이 있어서 시끄러워 글자 읽는 게 집중이 안 되는 시간을 제외하면 옆 반 선생님처럼 주말에 그 일을 하거나 퇴근 시간 이후에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애들이 수학 문제 풀고 있는 시간이나 미술시간에 애들이 작품을 만들 때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전담선생님과 달리 full power로 수업을 해야 한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을 수는 있지만, 고학년 담임인 경우에는 전담선생님처럼 1시 조퇴 같은 건 못 쓴다. 5교시하는 날 2시 10분, 6교시하는 날 3시 조퇴, 이런 식으로 쓴다.
사실 기초학력 부진이나 애들 수학, 수익 제대로 안푸는 거 확인 일일이 다하기, 글쓰기, 책 읽기 지도, 음악, 미술 수업 더 재미있게 하기 같은 것들도 내가 좀 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잘할 수 있는 것이긴 한데 내 몸과 정신이 안 따라와 주는 것 같달까 요즘은.
올해 혼자 자취하면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힘들었을 때는 '나는 집에 오면 이렇게 외롭고 힘든데 학교에서는 나를 톱니바퀴 취급하고 일했는지 안 했는지, 학부모가 보기에 선생님답게 옷 입는지만 신경 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개 짜증 났을 때도 있다.
4. 교감, 교장은 방학이 없다. 교무부장, 연구부장도 마찬가지.
학년 부장은 2일을 나온다. 방학근무상황표를 언뜻 보니 교감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은 거의 반 정도를 나오더라. 방학 때도. 그래서 더더욱 승진에 대한 생각이 없어졌는데, 그냥 교사를 하자니 나중에 50, 60대 되어서 애들이랑 힘들다는 말도 있던데, 애들이랑 같이 있는 법을 터득한 선생님도 있는 것 같긴 하다.
어쨌든 나의 제일 심각한 문제점은 이 직업에서 의미와 보람을 못 찾고, 힘들다는 생각만 하니, 그냥 빨리 쉬고 싶다는 생각만 드는 것 같다.
5. 사회이다 보니 싫은 사람들이 있음.
기본적인 것조차 안되어서 다른 선생님들을 힘들고 귀찮게 하는 선생님.
나는 적어도 다른 선생님(어른들)을 힘들게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전담시간에 전화 와서 나한테 애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전화하는 선생님이 계셨다.
그건 그 선생님이 지도해야 하는 부분인데 말이다.
6. 운동을 안 해서
어제는 수영을 갔다 왔는데 어느 블로그에서 '무기력은 수용성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러닝은 날이 추워지니 적당한 옷도 없고 해서 계속 미뤄왔는데 출근할 때 수영복을 챙겨서 퇴근 후 바로 비교적 가까운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하니 그날 저녁에는 머릿속이 완전히 비워지는 느낌도 들고 좋은 노래를 들으면서 버스를 타니 기분이 좋아졌다.
7. 애정결핍
내 안에 사랑이 가득 차야 애들한테도 사랑을 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애정이 고픈 상태라, 조금만 시끄럽게 해도 짜증 내고, 교실이 질서가 엉망이니 나만 힘들어져서 통제를 하다 보니 애들을 딱히 존중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존중은 하는데 1:24이다 보니 사무적인 태도가 되어가는 것 같다. 그러니 교감, 교장이 교사한테 그러는 것도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 게 사람이 너무 많고 힘들면 이게 사람이 아니라 그냥 개체로 보인다. 나를 피곤하게 하는 개체. 그래서 모임을 나가거나 해서 연락하는 사람을 만들거나(진짜 말 그대로 연락하는 사람. 나와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불특정다수에게 일방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얼마 전에는 아예 다시 인스타 비활성화를 하고 브런치로 도피했다. 적어도 지인 중에 브런치 구독자가 없기 때문에 인스타와 블로그보다 더 편하게 쓸 수 있다.)
사랑이라는 것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것이기 때문에 차츰차츰 해나가고 싶다.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에. 당일 약속이 깨지거나 나중에 연락한다고 해놓고 안 하거나, 읽고 씹기 같은 것도 많이 당해봤어서 상처를 안 받으려고 상대가 그런 행동을 해도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다 보니 나도 상대와 연락을 끊는 것에 관대해지는(척) 하게 되는 것 같고, 죄책감도 딱히 안 느끼게 되는 것 같다.
8. 이미 학기 말이다.
이미 학급 경영 씨 다 부렸고 1월 초에 방학식까지 학교폭력 같이 심각한 사안 안 터지고 빨리 새로운 학급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 아니 새로운 걸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고, 그냥 망친 케이크 빨리 먹고, 쉬고 싶다는 생각?
딱히 망쳤다기에는 교육이기에 정확한 정의가 없지만
어떤 작품이나 일과 달리 내 기준에서 완벽하지 않은 모습이 너무 많았기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사실 완벽할 필요도 없지만
내 기준에서 나만 잘한다고 잘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 일반적인 회사의 일과 차이점인 것 같다.
결국은 개인적인 삶에서 행복해야 학교에서도 웃으면서 지낼 수 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산해 봤는데 월세, 생활비, 관리비, 여행, 옷 사는 비용 모두 합치니 일 년에 1천만 원이 마이너스더라. 내 월급의 4개월치가 그냥 나가는 것이다. 물론 살려고 돈 버는 게 맞긴 하지만 요즘 다 돈을 모으려고 하는 세상에서 나는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달고 걷는 느낌이 들어 싫었다. 50만 원 x12달=600만 원은 월세+관리비에서 나간다. 2~3달치 월급인 셈이다.
나는 내년에도 교사를 하면서 살게 되겠지 아마.
그게 아니면 나만의 글을 써보고 싶다.
서울의 한 모임에서 만난 사람에게 흥미가 생겨 어제인가 연락을 해봤는데 그림을 그리시는 분이고, 지금은 일을 하지 않는데 계속 이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바탕으로 일을 찾거나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사업아이템을 생각해 사업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 경험을 아주 짧게는 해본 터라
운동루틴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다.
그분도 아침에는 수영, 밤에는 웨이트를 한다고 하셨다.
나도 출근 시간에 맞춰 내 삶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루틴으로 생활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1년만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을 쓰며 생활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교사는 사표를 쓰지 않는 이상 10년은 닥치고 일해야 하니까. 그 부분이 너무 압박감이 든다.
사실 그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고, 1년 정도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계획서를 몇 장에 걸쳐 가족들에게 이야기해 본 적도 있지만 취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 그리고 임용고시 치는 비용이 아니면 돈을 지원해주지 않겠다는 부모님의 말에 (그 당시에는 교원자격증도 나오지 않아 기간제교사를 했었는데) 기간제라는 자격지심과 아르바이트했을 때 너무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우울증까지 겪었던 터라 또 비정상적인 정신상태로 임용공부를 해서 합격했던 것이다.
지금은 통장에 그동안 벌어둔 돈도 있고(기간제+1년 차 교사) 결혼도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나이만 찼다고 결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건 꼭 직장을 그만두고 보내야 하겠느냐? 묻는다면
1년 했으니 2년 더 채우고 할 수 있는 어학연수나 유학휴직도 생각해보고 싶다.
사실 워킹홀리데이도 가고 싶었는데, 이걸 가려면 지금 교사를 그만둬야 하고
취업을 안 했을 때는 그깟 임용 경쟁률이 갈수록 점점 빡세져서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말이 너무 두려웠다.
그걸 안 했다고 해서 내가 걸어온 길이 결코 쉬웠던 것은 아닌데 왜 남이랑 같은 선택을 하면 편하고, 또는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위안을 받을 수 있고, 남과 조금만 다른 선택을 하면 가시밭길을 걸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그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아 그 사실에 또 위로를 받으며 사는 것이 맞는지 알 수 없는 하루다.
어쨌든 요즘 나의 일상은 매우 의미가 없고, 간간히 운동을 하며 정신을 차리고 있다고 하면 되겠다. 매월 17일 월급날을 어기지 않고 들어와 주는 통장의 돈들을 가장 큰 위안으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