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츠비 다시 쓰기

데이지가 이미 결혼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by 연하

개츠비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한 여자 데이지로 인하여.

소년 개츠비는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또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에 따라 행동했다.

지금 있는 돈으로는 데이지와 편안하게 살 수 없으니 돈을 벌고 오겠다는 것이다. 틈틈이 편지도 썼다. 그러나 막상 벌고 오니 데이지는 톰과 결혼해 있었다.


이를 본 개츠비는 자기가 만든 사랑의 세계에 갇혀 데이지를 다시 데려오려는 망상적 무리수를 둔다.


개츠비는 모든 면에서 감정적인 인물이었을까?

아래는 개츠비의 계획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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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철두철미하게 살았던 인물이 왜 데이지라는 여인 앞에만 가면 이성을 잃고 한없이 감정적인 사람이 되었는지.


어쩌면 이는 당시 미국 사회에 들끓던 상승 욕구, 그 바탕에 있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사랑에 대한 환상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각종 매체(책, 영화, 드라마, 광고 등)를 통해 '사랑'의 감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학습한다. 언어는 사람의 생각을 규정한다고 한다. '사랑'이라는 말조차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알랭드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라는 제목의 책도 있다. 이렇듯 우리는 그저 '호르몬의 장난'일지도 모르는 것에 각종 이름을 붙이며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정의하려 하는 것이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비단 개츠비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우리 세대는 이념 갈등이 모두 정립되고 난 이후 태어났기에 한 번도 자본주의 외의 세상을 경험해보지 않았다. 이에 인간이면 누구나 이러한 사회에 적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에 적응하지 않으면 불이익과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것은 사회적인 왕따, 무시 등 감정적인 것이 될 수 있고, 경제적인 것(물질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이 제도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순응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순응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쨌든 '적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적응이라는 것은 바람직한 상태인 것이다. 하나의 생명체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바람직한 형태이자 자세인 것이다.


개츠비는 자신이 만들어낸 데이지라는 환상에서 빠져나왔어야 했다. 데이지를 찾기 위한 공허한 파티를 그만두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냈어야 했다. 데이지는 이미 과거가 되었다. 그 당시에 지켜야 했던 법인 금주법을 어기고 밀수입으로 불법을 저지른 삶이지만, 한때 사랑했던 여자가 실컷 돈 벌고 나니 이미 결혼해 있는 광경을 목격한 상처가 있는 그 삶 속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야 했다. 세상은 이미 너무나 다양한 가치가 혼재되어 있고, 그것이 과도하게 극단적이지만 않으면 인정되는 사회이므로, 그중에서 자신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재정립해야 했다. 과거의 개츠비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는 상관없다. 개츠비의 과거 삶의 의미는 데이지였다. 그랬기에 밀수입을 하는 건 딱히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개츠비가 생각하는 자신의 인생 설계 안에서는. 무조건 돈 많이 벌고, 그를 바탕으로 데이지와 결혼을 하면 되었으므로 불법을 저지르는 것 따위는 인생에 전혀 흠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람들 생각도 "돈 많이 벌면 되지. 안 들키면 됐지. 자기만 행복하면 됐지. "였다.


그러나 이제 데이지는 없다. 개츠비가 죽은 이유는 개츠비의 삶의 의미는 데이지였고, 유일했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은 사회에서 완벽한 삶을 꿈꾼 개츠비, 숨이 막힌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짜인 계획표대로 살아온 개츠비, 혹자는 재미없는 삶이라고 했을지 모르나 오히려 파티를 통해 데이지를 만나게 되고 근황을 들은 후 삶의 의미를 잃은 개츠비보다는 억척스럽게 자신의 목표를 위해 살았던 개츠비가 행복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사람에게는 쫓을 무언가가 필요하니. 더 이상 좇고 싶은 것이 없을 때 사람은 비로소 호흡을 멈추고 눈을 감는다.


개츠비는 당시 미국사회에 잘 적응했다. 사회를 바꾸고자 방 안에서 사상에 대한 책을 읽지도 않았으며, 허구한 날 한탄하며 이미 엉켜버린 사회 속에서 무의미한 날갯짓을 하는데 자신의 삶을 소비하려는 시도 또한 하지 않았다. 의미 없는 사회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 수도 있었던 개츠비는 데이지라는 환상이 망쳐버렸다. 환상 덕분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황금을 캐냈지만 그 환상이 없어지자 자신을 지탱할 것은 찾지 못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 개츠비.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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