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창문 밖에서 해가 뜨고 다시 질 때까지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침묵이 찾아오면 창문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겨울나무 향을 맡고, 옷으로 덮여있지 않은 얼굴과 손을 스쳐가는 바람을 느꼈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같은 것을 생각하고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른쪽 하얀색 행거 위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들은 모두 그의 옷이었다. 백화점에 걸려있는 이름 없는 옷들이 아닌 그의 옷.
“옷가게를 돌아다니다가 내 걸 찾으면 한동안 그런 곳들에는 관심이 없어지는 거야. 이 옷들에 애정을 주는 거지. 다른 옷들과 섞여 다른 색으로 물들지 않게 분리해서 세탁하고, 화창한 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잘 말려주고, 다림질도 해주는 거야. 그럼 점점 내 향이 배는 거야 그 옷에.”
“이름도 붙여주고.” 나는 생강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생강이는 새까만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마치 우리의 얘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처음 봤을 때가 떠올라, 이름을 부를 때마다.” 생강이가 생강이가 된 이유는 데려오던 집에서 생강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스물넷이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이렇게 자신의 옷들이 하나둘씩 생기는 것,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색으로 염색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몇 가지 요리쯤은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되는 것.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걸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
그는 보호받고 있는 것 같다.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의 세상은 잔잔하다. “행복하게 살아야지, 남들이 뭐라고 하든, 한 번뿐인 인생이잖아.” 회색 후드티에서는 기분 좋은 섬유유연제 향이 난다. 소매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손목이 있다. 조금 더 가다 보면 손가락이 있고, 그 끝에 손톱이 있다. 아무 색도 없는 손톱, 자른 지 3일 정도 흐른 것 같은 손톱. 그 손을 잡고 싶다. 안고 싶다. 그렇게 오래도록 있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지. 아무 말 없이 이렇게 조용히 있다가 잠들어 버린 척하며 어깨에 기대면 어떻게 반응할까. 지금 문고리에 걸려있는 데님 크로스백, 그 옆의 연하늘색 모자, 그리고 창밖의 메마른 나뭇가지가 있는 산까지 모든 것이 이 상황에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그의 영혼과 내 영혼에는 한 치의 엇갈림도 없는 듯하다. 난 이 순간이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거야, 그래서 각인시키고 있는 거야. 눈, 코, 귀, 피부 모든 감각을 이용해서. 지금 하는 이 말을 후회하게 될까.
“오빠가 좋은 것 같아.”
침묵.
무슨 말을 더 해야 하는 걸까.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남았는가. 스스로 물어봤다. “내 상태를 말하고 싶었어. 계속 기분 좋은 상태로 있고 싶어.” 해는 어느덧 산을 넘어갔다. 사실 이다음 행보는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오늘은 이쯤 마무리하고 내일 해가 뜨면 어떻게든 흘러가게 되지 않을까. “역까지 데려다줄게.” 집에서 밖으로 나오는 아주 짧은 새 어느덧 깜깜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가로등 불빛 만이 환한 노란빛을 내고 있었고, 두 다리만 번갈아가며 움직였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지하철엔 사람이 별로 없어 널널했고 기숙사에 돌아오니 9시였다. 샤워실에 들어갔다. 세 명 정도가 이미 들어가 있어 비어있는 칸 중 구석 자리에 들어갔다. 지하철에서 묻은 먼지를 씻어내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창문을 살짝 열고 불을 끈 뒤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오늘 오후 네 시쯤 맡았던 겨울나무 향과 비슷한 향이 났다. 눈을 감으니 바람도 잘 느껴졌다. 내일 눈을 뜨면 다시 해가 떠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erYBbuzqWwI
00:00 오늘도 널 안고 싶어 (가제) 00:27 So flyyy (가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