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여행기 2

서울이랑 똑같은 걸 확인한 날

by 연하

도쿄 여행기를 쓰려고 여행을 간 건 아니다. 그야말로 그냥 도쿄란 곳은 어떤 곳일까 싶었고, 마침 도쿄에 갈 정도의 돈이 있었다.


기억에 남는 건 몇 가지 장면들이고 순서는 정확하게 기억에 남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건 몇 가지 파편화된 장면들 뿐이다. 따라서 몇 가지 장면들로 써보고자 한다. 사진은 찍었는데, 내 사진을 찍기보다는 풍경 위주로 찍었다. 화장을 하지 않고, 옷도 그냥 검정 패딩에다가 연보라색 바라클라바(턱과 입이 덮이는 방한에 최적화된 털모자)를 입고 감기기운이 있어 컨디션도 썩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키 모교인 와세다 대학교랑 도쿄의 핵심 스폿 몇 곳 정도만 가보고, 아무 목적 없이 생각을 비우고 어떤 곳인지 거리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 그 정도의 생각뿐이었다.


그럼 기억에 남는 것들.


1. 시부야 109

일본 10대나 20대 초반이 입을 것 같은 일본 여자애들스러운 옷들이 많다. 누가 봐도 일본 느낌으로. 나는 여기서 사고 싶었는데, 내 취향은 없다고 생각해서 안 샀는데, 막상 안 사니까 아쉽다. 일본 사람들은 키가 한국사람 평균키보다 작아서 그런지, 아니면 그들의 스타일인지 모르겠는데, 앞굽까지 높은 통굽신발이 많았다. 다음에 간다면 그걸 사보고 싶다.


2. 파르코 백화점

여기서 양쪽에 어깨가 두 개 뚫린 에겐녀 원피스를 하나 샀다. 검은색 바탕에다가 연분홍색과 연두색 벚꽃이 휘날리는 듯한 원피스였는데 고민하다가 샀다. 이걸 3월에 따뜻해졌을 때 즈음 많이 입고 다녔는데 번호를 많이 물어봤다. 사실 자랑은 아니고 그때는 화장도 열심히 하고 다녔고, 속눈썹 연장도 하고 나를 봐달라고 아주 발광을 하던 때였다. 외로워서 그랬던 것 같다.


이날 찜해둔 원피스를 며칠 뒤에 마감시간 지나서 다시 가서 원피스를 다시 겟했는데 점원한테 미안했다. 눈치 보였다. 나는 원래 눈치를 좀 보는 성격이다. 요즘은 눈치 없는척하는 스킬을 터득했지만.


3. 라멘집

혼자 라멘을 먹었는데 옆에 한국인 커플이 있었던 것 같다. 국물이 살짝 느끼하면서도 담백했다. 아마 구매했던 도쿄 지도에 나왔던 라멘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라멘집에서 나왔는데 스타일이 좋은 여자가 지나갔다. 추운 겨울인데도 코트차림이었고, 깔끔한 외양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추레한 복장이었던 것 같다. 여행객이기보다는 현지인 같은. 저렇게 입고 왔으면 어땠을까, 했지만 몸 컨디션이 안 좋아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던 것이 기억난다.


4. 롯폰기, 긴자 뭐 비슷비슷한데 명품거리가 엄청 많다.

bape매장이 엄청 커서 구경했는데, 역시 가격대가 좀 있었고, 한국의 청담동보다 더 명품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느낌이었다. 오모테산도도 갔던 것 같은데, 계속 걷다 보니 아까 갔던 곳이 오모테산도였구나, 다이칸야마였구나, 이런 느낌. 사실 지역 이름이 아직도 헷갈린다. 어쨌든 그 거리가 바뀌는 지점의 느낌과 분위기를 알고 싶어서 지하철을 안 탔다. 전날 비행기를 비롯해 대중교통을 너무 많이 타서 머리가 아파서 걷고 싶었던 것도 있다.


5. 시부야 스크램블 횡단보도와 스타벅스 있는 거리는 생각보다 별 거 없었다.

여행 책자에는 대단한 스폿인 것처럼 소개해놓았는데, 사람도 별로 없었던 이른 오전의 횡단보도였을 뿐이었다. 핫한 여행 코스를 미리 찾아보지를 않으니 서울이나 도쿄나 별다른 게 없어 보였다. 거의 똑같다고 봐도 무방했다. 간판만 빼면.


남들 다가는 곳, 랜드마크만 찍는 여행을 지양하는 게 요즘 트렌드라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한데, 그런 여행이 이런 건가 싶다가도 진짜 서울이랑 다른 게 없는데 싶기도 한 기분을 느꼈다. 이걸 느껴본 것이 이번 여행의 깨달음인가 싶기도 하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6. 돈키호테

돈키호테 중에서 제일 큰 돈키호테를 찾아갔다. 7층이었는데 신기했던 건 성인용품을 민증검사도 안 하고 그냥 천 한 장으로 가려놓고 아무나 들어갈 수 있게 해 놓았다는 것이다. 물론 민증검사를 한다는 건 도쿄 다녀온 후 6개월 정도 후였지만. 돈키호테가 첫 성인용품샵을 방문한 곳이었다. 여기서 엄청나게 사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길 들었는데 발에 붙이는 거라던지 안대라던지 화장품 같은 것. 그런데 나는 일본화장품에 대해서 잘 아는 게 없어서 인터넷에 몇 번 검색해 보고 나왔다.


7. 스마트폰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서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폰 충전을 부탁해서 했다. 처음에는 없다, 안될 것 같다. 하다가 내가 애잔해 보였는지 아니면 정말로 방법이 생각난 건지 바닥에 있는 비밀의 콘센트 하나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사고 충전할 생각이었는데 충전하는 콘센트 입구가 usb모양의 네모난 모양이어서 못했다. 돼지코가 있어도 충전을 못해서 그랬다.


8. 옷 쇼핑 하고 싶었지만 실패. 옷 쇼핑 하고 싶어서 엄청 뒤죽박죽 지하철도 여러 번 타며 돌아다녔는데 마음에 드는 옷이 하나도 없었다.


9. 맛집을 찾아보고 가지를 않아서 그냥 거리에 있는 아무거나 먹었다.


10. 이번 여행의 특징은 여행 끝나고 돈 계산을 안 했다. 이미 쓴 돈 계산해 봤자 다음엔 아껴 써야지! 이런 생각도 안 할 것 같아서.


어쨌든 도심의 인상은 이랬다.


그러나 애초에 뭔가 대단한 재미를 보겠다는 생각을 하러 간 것도 아니고, 대단한 기대를 한 것도 아니고(꿈을 찾아오겠다거나 변해서 오겠다는 등) 내일 하루키 모교 가고 나오코 산책코스 갔다가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 나온 DUG바 가는 정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갔던 여행이었어서 딱히 실망은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기분이 별로였는데 도쿄를 갔다고 기분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건 아닌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도쿄 여행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