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
"제이야, 넌 애들이랑 스터디했었어?"
"아니"
"왜?"
"음 그냥 둘 씩 짝을 다 지어놓고, 나한테 한 명 더 구해서 스터디를 하자는데,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 없는 느낌. 평소에 가깝게 지내지도 않았는데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찾는 걸 안 좋아하는 것 같아."
제이는 자신이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사장한테 인신공격을 당한 이야기, 원래 일하고 있었던 사람들한테 텃세를 당한 이야기 등을 들려주었다.
네이버에 있는 임용 카페에서 스터디 멤버를 찾았는데, 임용이 끝나니 한 번도 다시 만난 적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아 임용 합격한 게 아니라 기간제 하고 있다는 말이었어?" 제이는 재수까지 하고 우연히 연락이 되고 만난 첫 남자친구가 자신이 기간제 교사라는 걸 알고 난 이후에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진 것을 느꼈다고 했다. "공무원이라는 신분에 묶인 자신을 답답해하면서 내 자유를 부러워하다가도 2년 동안이나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나를 한심하게 여기는 게 느껴졌어."
제이가 그때 만난 남자친구는 우리 학교 한 학년 선배라고 했다. 학기 초 과행사 때 한 번 만나고 제이가 임용 끝나고 다시 연락을 했다고 했다.
"그 사람은 내가 여행 혼자 가고 싶다고 하니, 자기도 많이 가봤는데 처음에만 재미있지, 나중에 되면 재미없고 외롭다고 했어. 그런데 나는 그 외로움과 지루함 조차도 느껴보고 싶거든. 그런데 그 사람은 나를 그 과정을 다 생략하고 평온함에 이르기를 바라는 것 같아. 그 과정이 있었기에 자신의 삶에 충족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인데도 말이야."
제이는 그때는 사실 사회적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서 자신의 삶에 전례 없이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고 했다.
"기간제 교사로 1시에 퇴근하고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했어. 한 달 동안 90만 원 하는 현대무용 학원에 가서 배우고 싶다고 말했어. 원래는 전공생만 받는다는 학원이었지만 일주일 다 올 수 있다고 하고 열심히 하고 싶다고 하니 알겠다고 하더라고. 블로그도 하고 유튜브도 하고, 마케팅 책도 읽었어. 다 그렇다 할 성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포토샵이랑 일러스트, 애프터 에펙트도 배웠어. 컴활도 치고 말이야. 지금까지 계속하는 건 없지만 말이야. 나의 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거든"
내 젊음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던 것 같아. 그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는 어디론가 빨려 들어갈 것 같지만,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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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는 서울 집에 집착할 때가 있다고 했다. 나는 람보르기니 키링을 들고 다닌 적이 있거든. 사회에 나와서 일을 해보니 돈 있는 사람이 강자라는 생각이 들었어. 내 안의 사랑은 썰물처럼 사라졌고 그냥 돈 많이 벌어야겠단 생각만 들었어. 그래서 한때는 주식, 부동산 공부만 했다고 했다.
"너무 부러운 거야. 어릴 때부터 서울에서 태어난 애들이. 스무 살 때 강남역 1번 출구로 나왔는데, 주변은 온통 까맣고, 건물의 불빛만 반짝거리고 있는데, 별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그 풍경이.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예전부터 이런 걸 다 누리고 살았겠구나. 세련되어 보이고, 옷차림도. 난 문명을 4년 정도 늦게 받아들인 사람 같단 생각이 들었어. 얘넨 비싼 인강도 다 끊고, 현강도 듣고 그러겠지..."
제이는 자신의 대학교 신입생 시절을 회상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살다가 결국 돈을 못 벌면 난 내 인생을 후회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
내가 봐도 제이는 숫자놀음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포기한 게 집이야.
서울 집을 포기하니, 돈이 너무 많더라.
왜 이렇게 돈을 안 쓰고 모아놨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