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아침을 먹은 제이는 거리로 나왔다. 1월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 계절은 겨울이다. 제이는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계절이 변하는 것을 알아채지도 못하고 지낸 그동안의 날을 떠올렸다. 그녀가 지난 6개월 간 한 일은 6시에 눈을 뜨자마자 집 앞 타원 모양의 300m 트랙을 3바퀴 돌고 샤워를 한 후, 엄마가 해주시는 된장찌개 또는 김치찌개, 때로는 고등어구이 같은 한식을 먹고, 옷을 입은 뒤 냉장고에서 양상추와 방울토마토를 꺼내서 락앤락통에 담고는 3분 거리에 위치한 스터디카페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가을과 겨울의 상쾌한 아침 공기는 그녀가 수험생만 아니었다면 감상에 빠지기 완벽한 온도와 습도였다. 그녀는 스터디카페에 도착하자마자 휴게실로 들어가 냉장고에 가지고 온 락앤락통을 넣고 커피머신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텀블러에 뽑고 얼음을 넣었다. 얼음 기계에 얼려져있지 않은 경우도 있었는데 그것은 그녀를 언짢은 기분이 들게 했다.
교육과정 문서를 외우다가 낮 12시나 1시쯤이 되면 냉장고에서 샐러드를 꺼내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며 햇빛을 15분 정도 봤다. 그리고 다시 스터디카페로 들어가 밤 10시까지 공부했다. 그녀가 항상 샐러드를 먹지는 않았다 때로는 점심이나 저녁으로 스터디카페 바로 아래에 있는 닭칼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대개 저녁에는 집으로 가서 집밥을 먹었다.
제이는 공부를 정식으로 시작하기 전인 5월, 단발을 하고 애쉬 바이올렛색으로 염색을 했다. 그리고 래퍼를 연상시키는 작년 그녀가 대학생일 때 비 오는 날 혼자 홍대에서 샀던 빅사이즈 반팔티, 창모 굿즈로 샀던 후드티, 통 큰 바스락 거리는 소재의 검은색 조거 바지를 주로 입었다. 엘리베이터에 등에서 누군가 그녀를 쳐다보면 그녀는 절대 눈을 먼저 피하지 않았다. 상대가 눈을 돌릴 때까지 무표정으로 계속 쳐다봤다.
하루 중 그녀의 희열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하루에 3잔씩 마시는 것이었다. 잠이 오면 의자를 뒤로 밀면 벽에 부디히는 비좁은 캡슐방에서 나와 개방형 스터디카페로 가서 공부했다. 아침과 밤에는 빈지노의 if i die tomorrow, always awake를 들으며 자신이 지금 청춘 안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상기시켰다. 밤에는 달빛을 보며 DEAD STAR, PARANOID REMIX 같은 노래를 들었다.
그녀는 아프다. 왜냐, 아직 그 애가 마음속에 남아있기에. 그날 밤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에. 그 밤은 치즈처럼 쭈욱 늘어나다 어느 순간이 오면 결국 끊어질 것을 알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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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임용고시를 준비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성격이었다. 그녀는 어떤 것을 외워야 한다는 것 자체에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재수를 하기로 결심하기 전 해에 그녀가 책상 앞에서 일 년 동안 한 일은 내가 이걸 정말 외울 수 있을까였다. 아무 맥락 없는 단어들의 향연. 이런 걸 외우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이런 걸 외우는데 나의 23살을 쓰는 것이 맞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그녀는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합격을 하지도 못했다.
그녀는 많은 것을 기억하지 않았고, 그녀가 대학생이었을 때 같은 과 동기에게 자신은 강의에서 설명하는 것을 외우지 않고 이해만 한다고 했다. 그녀에게 암기가 많은 과목의 시험기간은 항상 힘든 시간이었고, 2학년 때부터는 암기는 자신의 길이 아니라며 포기했다. 공부를 하나도 안 하고 작문을 해서 내는 시험에는 a+를 받을 정도로 암기와는 거리가 먼 인간형처럼 보였다. 그녀의 같은 과 동기는 강의 시간에 너를 봤는데 정말 외우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았다고 귀띔해주었다.
제이는 조앤롤링이 업무시간에 계속 딴생각을 해서 상사에게 혼났다는 일화를 보고 자신은 어쩌면 작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제이의 타고난 자기 부정과 자기혐오는 자의식 과잉이 너무 심해졌으므로 스스로를 진단 내렸고, 첫 번째 임용에서 불합격한 후 본가인 대구로 내려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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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불합격이 확실해진 후 크리스마스 철에 바로 본가로 내려와 일부터 했다. 감자튀김과 폭립 등을 파는 요리주점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청소를 못한다고 꾸중을 듣고, 사장은 처음 본 순간부터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원래 저렇게 무뚝뚝한 성격인가, 했는데 사장이 좋아하게 생긴 얼굴의 남자 손님이 오자 저번에 했던 아르바이트생인 듯 환하게 맞이해 주었다. 그 남자 손님은 여자친구와 같이 왔는데 나는 그들이 와인을 주문했기에 신분증을 확인해야 했다. 나보다 5살이 많군. 그 남자 손님은 사장이 잘해줬는지 선물까지 사서 가지고 왔다.
제이는 하필이면 크리스마스, 제일 바쁠 때 알바를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정신적 충격으로 그곳을 그만두고 그 겨울 p빵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계산할 때 사용하는 포스기를 처음 사용했고, 자신은 한 번도 빵집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문제의 그날, 그녀가 시작한 지 일주일이 조금 지났을 때 그녀는 배달어플로 들어온 주문에서 딸기식빵을 종이가방에 넣어야 했다. 그런데 그전 타임에 근무하는 사람이 딸기식빵과 딸기맘모스의 팻말을 거꾸로 놓아두었다. 그래서 제이는 딸기식빵을 넣는 대신 딸기식빵의 팻말 앞에 있는 딸기맘모스를 넣었다. 손님은 전화가 왔고 딸기맘모스가 더 비싼 것이기 때문에 자신은 상관없다며 그냥 먹겠다고 웃으며 잘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사장 할머니는 “너 예전에 야단 많이 맞았지?” “오전에 하는 애는 혼자서 2명 치를 한다.” “잘하면 돈을 올려주지” “손님들이 팁도 준다” 마감 때 사장의 친구가 왔을 때도 “저번에 했던 애는 어린이집 교사 됐다더라. 걔는 참 싹싹해~”라고 했다. “나는 너에게 2주의 시간을 주겠다. 못하면 자를 것이다.”
"목소리 명랑하게!!!" 사장은 제이가 손님에게 인사하는 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아르바이트생들은 나에게 차가운 눈빛을 보냈고,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람도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버거킹에서 알바를 했다는데 사장이 있을 때는 제이가 확인한 유통기한도 자신이 확인한 척 대답을 하고 사장이 없을 때는 손님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3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 빵집을 불매하고 있다.
한 번은 그녀의 남자친구가 그녀의 생일 때 T사의 홀케이크를 사 왔다.
그녀는 그 케이크를 보고는 울었다.
“혹시 레터링이 아니어서 그래? 내가 당장 레터링 케이크로 바꿔올게”
“어떻게 나를 그렇게 모를 수가 있어” 그녀의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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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 독학재수학원 매니저를 했을 때도 분명 엑셀을 못한다고 하고 뽑혔는데 이럴 거면 자기가 하는 게 낫다며, 나는 너를 고용한 것이라면서 밥을 먹고 있으니 들어올 때 노크를 하고 들어오라고 했다.
제이는 한동안 자기혐오와 분노가 뒤섞인 채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조용히 사라지는 게 사회에 이로울까, 하는 생각에 빠져지냈다. 그 무렵 그녀의 플레이리스트는 그녀가 태어나기 전의 아티스트들로 채워지는 중이었는데, 와인집이나 열반 같은 것을 들으며 무언가에 취해있는 듯했다.
제이는 임용을 합격한 후 자기 마음대로 살 것이라고 선포했다. ‘와 시발 그럼 이거 일 년만 해서 합격하면 60살 될 때까지 안 잘린단 말이지’ 그녀는 대학교 내내 발전 없는 철밥통을 욕했지만 이제 상관없어졌다. 다른 사람들이 욕하는 발전 없는 철밥통의 삶. 이것이 어쩌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선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쳤다.
동시에 그녀는 왠지 그녀가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제이의 모든 욕망은 죽음을 향해있었다. 이 고통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 자신의 무능력함과 사람들의 무시로부터 오는 자기혐오 단번에 끝내고 싶다는 생각. 그 한 가지 생각에 그녀의 모든 정신과 감각은 하나의 침이 되어 그녀의 급소를 찌르기 직전이었다.
그 후 그녀는 모든 사랑노래는 악의 축이라고 생각을 했다. 내가 망한 이유는 사랑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이후 그녀의 플레이리스트는 재키와이, 저스디스, 창모, CL로 채워졌다. 사람의 정신상태가 음악 하나로 이렇게 쉽게 바뀔 수 있는 거라니. 그녀는 바뀐 자신이 신기하면서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맞이한 11월 그녀는 억지로 해오던 기억을 토해내듯 시험을 쳤다. 시험을 친다기보다는 구토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애초에 임용 이후의 삶도 별로 기대가 되지 않았기에 임용을 합격하고 일주일간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쾌락을 누린 후 임용 합격자 발표일 7일 후인 2월 5일인 자신의 생일에 목숨을 끊기로 다짐했다. 삼수는 없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했다. 그녀가 합격을 하는 이유는 명예로운 죽음과 이 제도의 잔혹함을 알리기 위한 시험이었다. 불합격자의 불만은 패배자의 중얼거림이 될 뿐이다,라고 했던 그녀의 아버지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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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이란 새해가 아니라 1월 4일에 있을 면접을 준비하는 연장선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스터디의 늪 속으로 쉼 없이 굴렸다. 그녀는 영어면접 스터디와 영어수업실연 스터디, 수업실연 스터디로 부족해 온라인 밴드 스터디를 두 개 더 돌렸다. 마치 그 모습은 자신을 태워 승천하고 싶은 구도자 같았다. 제이는 이 모든 무의미한 행위가 멈춰질 날만 떠올렸고, 그 외에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자아를 상실한 사람 같았다. 그것이 아니면 특정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 같아 보였다. 그녀의 탈색한 머리는 가을이 되자 물이 빠져 은행잎처럼 노랗게 변하고 윗부분만 검은색이 되었다. 빼빼로 데이날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다가 '흠 초코만 녹여 먹다가 만 빼빼로 같군', 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꼴에 구역질이났다. 그녀는 다음날 미용실에 가 머리카락 전체에 다시 초코색을 끼얹었다.
그녀는 1차 시험이 끝난 11월 15일부터 3일 동안은 밥을 먹지 않고 침대에 누워 15시간씩 자고 일어나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해가 지면 추리닝을 걸치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돌아왔다. 2차 시험이 끝나는 한 달 2주 동안 한 일은 마치 인공지능이 딥러닝을 하는 것처럼 경기도 교육감의 정책을 자신의 생각인 듯 말하는 연기를 반복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 면접 날 그녀는 자신의 삶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연극 같다, 고 생각했다. 면접 날은 면접관을 보며 두 달 중 가장 많이 웃었다. 그녀는 웃으며 정말 기쁜 감정을 느꼈다. 면접장을 나온 그녀는 그날 자기 전까지 한 번도 웃지 않았다. 그녀는 드디어 자신의 어릴 적 꿈이었던 배우가 된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면접이 끝나고 그녀와 온라인 스터디를 같이한 사람들은 면접이 끝난 마지막 날 점심때, 서로에게 단체 톡방에서 고생하셨어요, 수고하셨어요. 의 연락을 했고, 합격자 발표날 제이는 그 톡방을 다시 들어가 봤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서가 아니라 문득 들어가 봤다. 그중 한 명의 상태가 (알 수 없음)으로 바뀌었다. 아마 카카오톡을 탈퇴하거나 전화번호를 바꾼 것이 아닐까, 제이는 추측했다. 그 후 카카오톡 프로필에 합격상태를 알린 스터디원 한 명에게 한 사람의 프로필이 알 수 없음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말했고, 그녀는 잘 모르겠다, 들은 것이 없다,라고 말을 했다. 그녀와 나는 "오 저희 한 번 만나서 밥 먹어요"라고 말했지만 그 둘 모두 그런 날은 어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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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반복되는 지겨운 연극을 마친 그녀는 주위를 둘러본다. 모든 것이 그대로이다. 원래 도넛집이 있었던 곳이 피자집으로, 마라탕 가게가 있었던 곳이 일본 카레집으로 변한 것 정도만 다를 뿐이다. 그녀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다음 작품은 뭘까. 어떤 배역을 하게 될까. 합격을 하지 않는다면 난 정말 괜찮을까. 그럼 난 뭘 해야 할까.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합격자 발표일까지 악몽에 시달리고 잠을 자다 깨다 하는 날이 반복되었다. 시험이라는 것은 그녀의 삶을 계속 유예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