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조명이 무대를 가득 메운다. 제이는 드레스도 정장도 아닌, 평범한 교사 차림으로 무대 중앙에 서 있다. 그러나 손에는 반짝이는 트로피가 들려 있다. 관객석은 보이지 않고, 오직 제이만 조명 속에 갇혀 있다.
제이
최대한 다작을 하는 것이 목표예요. 다양한 배역, 하고 싶다. 고정된 이미지로 하면… 제한이 되잖아요. (트로피를 가볍게 들어 올리며) 그동안 안 해본 역할, 그런 걸 해보고 싶어요. 비련의 주인공, 악역, 방황하는 청춘, 그리고… 아무 욕망 없는 교사까지.
관객의 환호 대신, 공허한 정적이 무대를 채운다. 제이는 잠시 멈추더니, 여배우처럼 미소 짓고 고개를 숙인다.
제이(속삭이듯)
… 이건 삶이 아니라, 그냥 또 하나의 배역일 뿐이죠.
조명이 꺼지고, 무대는 완전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
무대 위, 전신 거울이 하나 세워져 있다. 제이는 그 앞에서 천천히 옷매무새를 고친다. 관객은 그의 뒷모습만 본다. 조명은 차갑고, 정적이 흐른다.
제이(거울을 보며)
다이어트를 하는 이유도… 일종의 배역 때문이죠. 몸이 바뀌면 역할도 달라져요. 어떤 얼굴, 어떤 체형, 어떤 걸음걸이. 그게 곧 다른 인물이 되거든요. 저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배우로서 오래오래 연극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지금 이 선택들도 다, 미래의 배역을 위한 준비일 뿐이에요.
제이는 거울에 손바닥을 댄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만, 관객은 그 표정을 볼 수 없다.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며 장면이 닫힌다.
*
무대에는 긴 테이블과 마이크. 기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플래시가 터지는 듯한 조명이 깜박인다. 제이는 마이크 앞에 앉아, 차분하게 웃으며 말하기 시작한다.
제이
제가 역할을 선택하는 게 아니에요. 역할이 저를 찾아오죠. “너, 지금 이거야.” 하고 말해줘요. 어떻게 연기를 시작했냐… 그건 사실 중요하지 않아요. 배우라면 누구나 데뷔작이 있잖아요. 저는 거기에 갇히고 싶지 않아요. 끊임없이,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배우. 그게 되고 싶어요.
제이의 말이 끝나자, 객석 어둠 속에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무대 위 제이는 조금도 감정이 흔들리지 않고, 가면 같은 미소만 지은 채 조용히 물컵을 들어 올린다.
*
쟤는 어떻게 임용을 합격한 거야. 신기했다. 저렇게 놀기만 하고, 욕심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제이가.
그건 그냥 연기야. 제이는 자아가 없고, 그냥 연기를 할 뿐이다.
제이는 항상 바다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들다. 항상 부산, 제주, 호주, 캘리포니아 이런 곳에서 태어난 남자한테만 끌렸어요. 그래서 전 항상 절 버려야 했던 거예요. 오랫동안 고향을 버린 채 살았던 거예요. 마치 부유식물처럼. 둥둥 떠다녔던 거예요. 바다 위에 떠다니는 부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