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친구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했다.
빌려달라는 물건도 다 빌려줬다.
그들은 오직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에만 관심이 있는 듯했다.
주말에 전화가 와서 세계사 핵심 요약정리를 해달라고 말하는 애들도 있었다.
어쨌든 그 역할과 배역은 재미가 없고 숨이 막히고 답답했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그들은 흩어졌고, 그들이 나에게 연락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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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나는 드디어 가족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가족을 떠나야만 했다. 술에 취하면 노래를 틀면 시끄럽다며 의자나 휴지 같이 깨지지 않는 것들을 던지고, 자신의 생각을 절대 굽히지 않고 카톡으로 정치유튜브를 계속 보내오는 아버지, 글을 쓰고 춤을 추며 살고 싶다고 하자, 재능이 없다고 했다. 그것은 근거가 있는 말이기도 했다. 내 생각에도 내가 딱히 재능이 있는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광기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빠는 본인이 이루지 못한 판사, 검사 같은 꿈들을 나에게 강요했고, 엄마는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고등학생 때 연애에 빠져 교대에 가지 못한 것으로 나에게 교대에 가라며 야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간식을 챙겨주며 항상 교사의 장점에 대해서 설파했다. 나는 배가 고팠고, 그녀의 요리는 맛있었기에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피는 속이지 못하는 걸까. 아빠의 주와 엄마의 색이 합쳐져 나는 공부보다는 주색에 가까운 인간형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더 연습이 필요했다.
중학생 때까지 많이 맞았는데 그 이유는 기억에 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학교에서는 너무 모범생이고 착한 애, 그리고 집에서는 처맞아야 마땅한 년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밤마다 소리를 지르며 죽어도 미술을 하겠다는 동생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마당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구멍이 숭숭 뚫린 베이지색 커튼을 빛을 가리지 못했다.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과 자동차 소리는 잠을 방해했다. 아마 암막 커튼을 초등학생 때부터 설치했다면 키가 3cm는 더 자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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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기대와 다르게 제이는 안타깝게도 소설가, 댄서, 화가들에게만 끌렸다. 그녀는 끌리는 것을 믿고 믿기 전에 사로잡혀 버린다. 이성으로 통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