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제이에게 말했다.
"검사 결과, 도파민 결핍입니다. 수혈이 필요해요. 혈액형이 어떻게 되시나요?"
"rh양성, b형이요"
제이의 또래들은 인스타그램을 하지만 제이의 휴대폰에는 인스타그램이 없다. 그녀는 6개월 전에 계정 삭제를 했다. 그녀의 삶을 보던 128명의 사람들이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 중 제이에 대해 궁금해한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며, 생각을 했더라도 길면 10초 이내였을 것이다. 제이는 자신이 1년 전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음을 느낀다. 그녀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짐을 느낀다. 그들이 아는 나는 지금의 나와 너무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지난 1년간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변해서 이제 마치 아예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변해버렸다. 계절이 서서히 바뀌어 아예 다른 옷을 꺼내게 만들 듯. 그녀는 새로워진 그녀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자신의 과거를 상기시키는 과거의 사람들은 한동안 피해야 했다.
*
그날, 집에 돌아온 제이는 밤 1시쯤 잠에 들어 5시쯤 깼다.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그녀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녀는 모든 기억은 잃었고, 그녀의 방에는 그녀의 과거를 알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필요가 있었다. 이제 그녀는 새벽 5시에 일어나 1시간 간격으로 휴대폰을 켜고 스와이프를 하고 있다.
다음날에도 제이는 일어나서 하루 종일 휴대폰을 보고, 주변이 어둑해질 때쯤 집 밖에 나가 동네 산책을 하다가 잠에 든다. 제이는 4일 정도 카톡을 하더니 5일째 되는 날, 방문을 닫고 전화를 한다.
“생일 축하해요.” 그는 그 해 2월 5일, 생일에 제이에게 생일 축하를 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 알림을 안 꺼놨구나.” 제이는 남자에게 생일을 알려준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카톡 친구추가를 하면 나오는 생일 알림 업데이트 덕에 생일 축하를 받았다. 오늘은 원래 3개월 전 제이가 죽기로 결심한 날이었지만, 순간적으로 조금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카톡에 자신의 생일이 떴으며, 그중 몇 명이 자신과의 추억을 떠올렸으며, 몇 명이 연락하기를 고민했을지를 상상해 봤다. 세상은 그녀가 존재하든 하지 않지 않든 전혀 상관없는 듯했다.
폰을 바꾸러 간다. 아이폰으로 바꾼 자신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폰으로 바꾼다. 번호 옮겨드릴까요? 음 안 옮겨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그냥 지워주세요.
그녀는 부모님께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말한 후, 집을 나선다. 그녀는 차가 오는 곳을 바라보다가 도착한 카톡을 확인한다.
- 5분 후쯤에 도착할 것 같아.
그녀는 하얀색 산타페 차량에 올라탄다.
-안녕
-응 안녕
-연수 듣고 오는 길이야?
-응.
-수성못으로 가는 거지?
- 응
-실제로 보니 어떤 것 같아?
-사진이랑 비슷한데?
-비슷하면 안 되지, 똑같아야지. 나는 어떤데?
-실물이 더 예뻐.
제이는 소리 내어 크게 웃는다.
제이와 남자는 카페로 들어간다. 남자는 182 정도의 키와 하얀색 니트에 깔끔한 데님 바지를 입었다. 마르고 탄탄한 몸을 가졌고, 제이보다 9살이 많았고 수염은 레이저 제모를 한 듯 자국이 없었다.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얼굴을 가졌다. 온화한 인상의 남자였다.
그들은 카페로 들어간다. 사방은 오픈되어 있지만 다른 테이블과는 각자의 말소리만 들리는 오두막처럼 생긴 공간에 들어가 앉는다.
"너 어떤 연애해 왔는지 궁금해.”
"나는 연애를 안 적이 없어."
"왜?"
"어쩌다 보니"
"그래도 짝사랑이나 관심 가는 사람은 있었을 거 아니야."
"있었지."
"잘 안 됐어?"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녀는 묵비권 행사를 좋아했다. 묻는 말에 굳이 대답을 안 하고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무언가 감상에 취한 표정을 짓는 것을 좋아했다. 마치 상대방의 말이 자신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건드려 그녀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는 것처럼. 제이가 묵비권 행사를 하자 흰색 니트는 자신의 연애의 역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고등학생 때 첫 연애를 시작해, 각각 4년, 6개월, 2년의 연애를 거쳤다고 했다.
“네가 적당히 좋았으면 부산에서 여기까지 안 왔지.”
"어디서 잘 건데 오늘?"
"이 주변에 잘 곳 많던데? 여기서 하나 골라서 자면 되지."
"저녁 먹을까?"
"그래."
둘은 카페에서 나와 다시 그의 차 안으로 들어갔다. 라디오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둘은 이야기를 한다.
"소설 좋아해?"
"응 소설 많이 읽었었어."
"어떤 거?"
"굿윌헌팅, 미스 스티븐스 이런 거 좋아하지"
"음악은?"
"검정치마 많이 들었던 것 같아."
"오늘 술 마실 거니까 숙소에 주차를 해놓고 가는 게 좋겠어."
남자는 호텔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신분증을 보여주러 모텔 안으로 들어간다. 제이는 그 밖에 멀뚱멀뚱 서있는다.
“거기 서 있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남자는 제이를 향해 말한다.
“그러게” 제이는 남자를 따라 카운터로 들어간다.
“한 명이요.” 흰색니트가 말한다.
그들은 수성못 주변 연어 사시미 가게로 향한다. 아직 추위가 여전하지만 날씨가 오히려 어떠한 애틋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남자가 손을 내민다. 제이는 그 손을 잡는다. 그들은 수성못을 걷는다.
이제 들어갈까?
"점점 잘 생겨 보이는 것 같아요."
"나는 너 처음 봤을 때부터 예뻤는데"
그들은 연어 사시미 가게에 가서 연어를 시킨다. 그는 15분마다 인공눈물을 넣는다.
"라식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들은 맥주를 한 잔씩 시킨다.
날은 무르익어가고 어느덧 10시다. 제이는 계속 시계를 확인한다.
“알람 맞춰놔.”
그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따스한 눈빛으로 보고 있다. 11시 15분이다.
“나 이제 막차 때문에 가야 할 것 같아.”
"지하철 역까지 데려다줄게."
그들은 수성못 역으로 이동한다.
"아 추워"
"추워~" 그는 제이를 안고, 제이는 그에게 안긴다.
가기 전 그가 허리를 약간 숙여 제이와 눈높이를 맞춘다.
제이는 그와 입을 맞추고 그는 제이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든다. 제이는 뒤를 돌아 걸어 간다.
제이는 지하철 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제이는 지하철 창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