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by 연하

여름이 되었고, 제이는 학교 선배에게도 연락을 한다. 곧 여름방학을 맞이하는 학교 선배는 제이를 만나 살이 많이 빠지고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남자는 아무리 말이 잘 통해도 안 예쁘면 그냥 친구야.” 그는 제이에게 호감을 보였다.


제이는 문득 자신이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좋아했던 연극 동아리 오빠가 이 생각을 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자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 임용 때 샐러드를 먹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단군신화의 웅녀라고 생각하니 그리 버티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겨울에 곰 귀마개를 하고 자신을 웅녀라고 생각하고 독서실을 다녔던 몇 개월을 회상했다.


*


그와 함께 들어온 호텔은 멋졌다.

샴푸, 린스, 바디워시는 모두 다 새것에 고급스러웠다.

나한테 좆같이 굴었던 p사 할머니는 절대 못 받을 대접.


이곳에서 나는 충만하다.

거리를 돌아다녀도 사람들은 나에게 말을 건다. 샐러드 하나로 버틸만하군.


대학생 때부터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에 왜 이렇게 집착하냐고 했지만 돈은 아름다워질 기회를 주기 때문에, 나 같은 여자들에게, 집착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써. 그동안 내가 받던 천대는 이제부턴 없는 것이니까.


재수까지 실패하고 2주 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가 이태원 클럽을 간 날, 잘생긴 남자를 찾는 것을 실패하고 5살 많은 28살 남자와, 군대 휴가를 나온 21살 남자애, 32살 언니와 함께 서로 첫차까지 얘기나 하자고 합의를 봤었다. 그 남자는 내가 시험에 합격하든 안 하든 네가 어떤 남자를 만날 수 있는지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했다. "남자는 여자 직업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네가 1년 동안 그렇게 독서실에서 늙어갈 동안, 너 좋다는 남자한테 돈 받아서 화장품 정도는 살 수 있어. 미용실 가고."


내가 이 남자들을 만나주기만 하면 남자들은 넘쳐흐르는 돈을 가지고 이렇게 날 기쁘게 해 준다니. 그들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싶어졌다.


클럽에 있는 언니도 말했다. "그래. 가치관만 조금 바꾼다면 세상 살기가 쏘 이지 해질 수 있는 거지. 너 진짜 애가 너무 순수하다. 네가 알리지만 않으면 네가 뭐 한 지 아무도 몰라. 교대 나왔다 했지? 공부만 했다더니 세상을 하나도 모르는구나. 똑똑한 애들은 다 이렇게 살아요."


그가 나에게 짓는 표정이며 해주는 것들을 보면 나에게 욕망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나는 그저 아슬아슬하게 말하며 줄타기를 하면 되었다. 조선시대 기생이 하는 역할이 이런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을 살랑살랑하게 만들어주는 신공. 이것도 엄연한 능력이다.


이런 자유로운 세상을 모르고 1년 동안 방 안에 갇혀있었다니, 그동안의 날들이 아쉬웠다.

진실한 사랑 같은 건 나만의 허상이자 착각이었다. 내가 일방적으로 좋아한 남자에겐 아무런 가치도 제공하지 못했다. 그의 기억 한 켠 조차 비집고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잖아. 나는 이 삶이 좋아. 살아있는 기분. 내가 가치 있다고 느껴지니까.


*


제이는 가벼운 것을 홀대하는 세상이 질리기 시작했다. 제이는 올해 초 소개팅 어플에서 두 번 정도 만난 남자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가벼운 사랑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구질구질하고 쿨하지 않잖아요. 그냥 재밌잖아.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이 좋잖아."

"책임감 같은 건 있어요?"

"어떤 책임감을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헤어졌다고 슬픈 노래 듣고 궁상떠는 거, 자기를 속이는 것 같아요. 꼴 보기 싫어요."


"특히 제일 싫어하는 건 글쟁이들.

걔넨 인생을 몸으로 살지 않고 머리로 살잖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무원 시험 보는 애들은 안 만나요.

재미가 없으니까. 다 똑같고 개성이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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