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등학교 시절
그때 연우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다혜야 넌 기숙사 살아?”
“응 너는?”
“자취해. 기숙사는 불편해서”
누구는 편해서 기숙사 사는 줄 아나. 다 자취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자취를 하는 걸 보면 집에 돈이 많나 봐. 갑자기 방 안에서 머리를 말리고 바로 치우지 않고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인 날도 창문을 다 열어놓고 가는 룸메이트가 떠올라 화가 솟구쳤다. 그가 악의를 가지고 말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역시 나는 꼬였다는 생각으로 일단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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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종훈이는 독서실 계단에서 김밥 한 줄 먹고 다시 독서실로 들어가서 공부해서 6개월 만에 붙었다더라.” 엄마는 나랑 동갑인 사촌 얘기를 꺼냈다.
“아니 엄마, 난 공부할 마음이 없다고. 나도 마음만 먹으면 한다고.” 나는 백번도 더 말한 말을 또 했다.
“그러니까 마음을 좀 먹으라고”
“알아서 한다고” 오랜만에 전화 와서 하는 얘기가 시험 얘기라니. 짜증이 나서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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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시험 같은 걸 보기 싫은 이유,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는 고등학생 때 기억을 모래사장에서 잃어버린 반지를 더듬 듯 떠올려봤다. 나에게 그곳은 어떠한 추억도 없고, 벗어나야 할 장소일 뿐이었다. 떠나기 위해 3년을 견뎠다. 아빠는 서울대가 아니면 대구에 있으라고 했다.
“어중간한 서울 4년제 갈 바에는 대구에 있는 곳 다니면서 돈 아껴라.
“뭐만 하면 돈 아끼래” 나는 방문을 쾅 닫으며 들어갔다. 내 방문은 평균 삼 개월에 한 번씩 고장이 났다. 원서 1 지망, 2 지망 그 어떤 칸에도 쓰지 않았던 기피 학교였던 그 학교는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배정되었다.
처음 목표는 3년 동안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은 채 조용히 이 도시를 떠나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도록 최대한 거슬리지 않게 거기 있는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다 했다.
8시까지 도착해서 오후 11시까지, 같은 공간 안에 있는 시끄러운 사람들을 견디면서, 앉으라고 하는 곳에 앉았다. 2학년 때 선생은 불편하게 3명의 책상을 붙여놓았고, 자습시간에 애들이 떠드는데 조용히 시키지도 않았다. 주변이 조용할 때는 세계사를 외웠고 시끄러우면 수학문제를 풀었다.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쉬는 시간이든 석식시간이든 공부만 하던 나는 이기적인 애로 안보이려고 원래 성격을 숨기고 묻는 말에 하나하나 대답을 해주고, 물 달라는 것도 다 주는 등 가족이 알면 놀랄 만한 행동에 정성을 다했다.
그 덕에 500ml 물통에 담아 온 물이 한 교시 만에 없어지곤 했는데, 이런 성격에 맞지 않는 노력은 2주 만에 사람들의 은근한 무시만 가져왔을 뿐 어떠한 이득도 가져오지 않았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이 든 무렵, 나는 추락한 내 이미지에 확실하게 방점을 찍은 후 반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실이 시끄러울 때를 대비해 이어폰을 가지고 다녔는데, 하복과 춘추복을 혼용해서 입던 중간고사를 일주일 남겨놓은 어느 날, 똑같은 노래를 계속 들으니 질리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소리에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나는 보고 있던 한국사 책을 덮고 책상에 치면서 일어났다. 두께가 꽤 되어서 그런지 소리는 꽤 컸고 반에 있던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좀 조용히 하자고.“
그 후로 애들이 조용해지고 더 이상 내가 떠온 물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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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는 악습이 참 많았는데, 그중 한 가지는 성적에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라며 1번부터 33번까지 학생의 성적이 들어있는 A4용지를 반 전체에 돌리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내 성적은 반 전체에 공개가 되었다.
“나는 내가 인정하는 애들한테는 질투 안 해” 이주현이 나에게 말했다.
“내신 높다고 진짜 똑똑한 건 아니거든. 박채영은 인정.”
우리 학교에는 박채영이라는 애가 있는데 놀지 않고 공부하는 범생이 이미지의 나와 달리, 학교에서도 줄곧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주말에 애들이랑 놀러 다니면서도 나와 전교 1 ,2등을 다퉜던 애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먕 이주현이 오늘 그 말을 하기 전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애였다.
’아니 애초에 우리 집에 공부머리가 없는데 박채영처럼 놀 거 다 놀면서 성적까지 다 잘 나오는 게 되겠냐고’
이주현은 점심시간만 되면 남자친구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녀가 일주일 전 사귀기 시작했던 남자친구인 정연우를 좋아하고 있었고 그를 보러 쉬는 시간마다 복도로 나갔기에 그녀도 알고 있었다.
정연우도 포기한 마당에 이제 다른 것쯤은 포기해도 별로 타격이 없었다. 당장 방송실로 가서 마이크를 켜고 나는 가진 게 하나도 없는데 왜 나를 질투하냐고, 다 빼앗겼으니 성적표만이라도 챙기겠다고 전교에 방송을 하고 싶었다.
어쨌는 그 사건은 전투력을 불태우기에는 충분한 사유가 되었다. 이제 그를 보러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 나갈 필요가 없었고, 이 학교에 남아있던 마지막 애정까지도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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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번째 악습. 문과 전교 4등, 이과 전교 4등까지 짜장면을 사주는 독특한 풍습이 있었는데 나는 그 카르텔에 반강제적으로 의도치 않게 소속되게 되었다.
오후 자습을 마치고 간 짜장면 집에는 교장과 진로교사가 있었다. 진로 교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학교 특징이 성적 나눠먹기를 해요.”
성적 나눠먹기? 그게 뭐야
“작년에는 한 사람이 1.0, 1.2등급 이렇게 받아갔었는데, 올해는 다 1.5씩 받아가요.” 그는 허허 웃으며 사실 너네 인생이니 별로 상관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게 짜장면을 얻어먹고는 다시 야자를 하러 들어갔다. 그때 정유진이 말을 걸었다.
“다혜야, 교장쌤이랑 뭐 했어?”
“공부 잘하는 애들 다 몰려서 가던데.” 이주현이 끼어들며 말했다.
“아 걍 열심히 하라고” 나는 사실 그대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