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잠겨버린 거울

첫 번째 소리

by 황웨이



툭-,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무언가 닿았던 것인지, 무언가가 끊어진 것인지,

내 머릿속에선 그 ‘소리’가 조그맣게 울려 퍼졌다.



순간,

내 몸의 모든 감각이 사라졌다.







‘ ’




정신을 차려보니 세상은 사라져 있었다.

주위는 텅 비어 있었다.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에 존재하는 건 나뿐이라는 사실이 서늘하게 각인되었다.


그리고 나밖에 없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내 몸은 어딘가로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하늘로 솟구치며 바다로 잠기는 듯한 모순적인 느낌이 동시에 휘몰아쳤다.

방향도, 이유도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단둘이, 처음으로 술잔을 나누었던 날의 일이었다.






그 당시, 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나와 어울리던 친구들을, 사람들은 ‘겜돌이’라고 불렀다.

매일 피시방에서 밤을 새워서 그런 건지.

그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좋았던, 철없는 학생이었다.


다가오는 시험 기간은 언제나 공포 그 자체였고,

우리는 항상 빈 강의실에 모여 머리를 감싸 쥐었다.


겜돌이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빡대가리’였다.

기초적인 로그나 시그마 같은 것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으니까.

창피함을 무릅쓰고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그게 뭐가 중요해? 그냥 외워.”였다.


시험지를 받아 들 때마다

나는 어떤 문제도 제대로 풀어낼 수 없었다.



군대를 다녀온 뒤 친구들은 철이 들었다.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소외되기 싫었던 나도 모임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책을 뚫어지게 쳐다봐도 머릿속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해가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발표는 항상 엉망이었다.

친구들과의 사이가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여전히 몰려다니며 친하게 지냈지만,

겜돌이들은 학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나를 조금씩 껄끄러워하기 시작했다.

그 분위기를 눈치챈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점점 겉돌기 시작했다.

짐덩어리가 되는 것이 민망하고 미안했던 나는

결국, 휴학계를 냈다.



수업을 들으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매일 집을 나섰다.

부모님에게 받은 용돈으로, 아무 곳이나 떠돌았다.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공원에 혼자 앉아, 가만히 시간을 보냈다.


그저 도망치고 싶었다. 어디든, 무엇이든 좋았다.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눈치를 채셨던 걸까.


어느 날,

아버지는 나를 조용히 동네 고깃집으로 불러내셨다.

조용히 술잔을 채워주신 아버지는, 나에게 가업을 이으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자수성가를 이루신 분이었다.

어머니 손만 잡고, 아무것도 가진 것 하나 없이 상경하신 아버지는

월세 단칸방부터 시작해 아파트에, 번듯한 가게도 차린 훌륭한 사장님이셨다.


우리 가게는 수입도 좋은 편이고,

이 직업은 전망이 괜찮으니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그 무뚝뚝하시던 아버지가 웃는 얼굴로 큰소리를 치셨다.


나에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바람 좀 쐬겠다며 잠시 밖으로 나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부모님의 말씀을 따르며 열심히,

착하게만 살면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믿고 살아왔다.

나의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세상은 비웃으며 손가락질했다.

그 세상 안에는, 나 자신도 있었다.



‘효도... 해야 하는데...’


하.

이따위로 살아놓고 효도라고.


문득 떠오른 생각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나는 속으로 스스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된 거 같냐?’

‘넌 도대체 뭐 하는 놈이냐?’


처음엔 그저 한두 마디였던 생각들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니가 지금까지 한 게 뭐야?'

'남들은 잘만 하는데, 너는 왜 못하는 거야?'

'이렇게 살 거면 왜 태어났냐?'

'부모님은 무슨 죄야?'

'또 도망치는 거냐?'


'그냥 조용히 사라지면 안 되냐?'

'이제 그만 좀 버텨, 넌 그럴 자격도 없어.'


순식간에 머릿속을 가득 채운 목소리들은 나를 거칠게 비난하며 난도질했다.

떠오르는 생각들은 끊임없이 내 모든 것을 부정하려 했고, 분노는 점점 커져만 갔다.


아무거나 붙잡고 깨부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바라볼 부모님의 얼굴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 자신이 한없이 밉고,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졌다.

그날따라 두통은 너무나도 심했고, 머릿속이 조여지는 느낌은 점점 강해졌다.

깨질 것처럼 아파오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들려왔다.

소리였는지 느낌이었는지, 아니면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는지,


툭-, 하고


그것은 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심장은 덜컥 내려앉았고, 머릿속은 하얘졌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주위 사람들은 고개를 돌리며 수군거렸고,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시며, 하지만 창백한 얼굴로 내 손을 잡았다.


“가자.”하고,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은 채로, 묵묵히 걸어 나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