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지금이야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고민할 수 있지만,
내 유년 시절은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할아버지 대에는 우리 집도 꽤 잘 나가는 집안이었다고 들었지만,
아버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든 걸 내려놓고 단 한 푼도 없이,
어머니와 손을 잡고 상경하셨다.
그리고 정말 바닥에서부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셨다.
성남 어느 단칸방에 자리 잡은 부모님은, 막일부터 시작하셨다.
이 현장, 저 현장 찾아다니시며 일거리를 구했고,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셨다.
온갖 모진 대우들을 버텨내시며 그렇게, 누나와 나를 키워내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환경, 엄두도 안나는 생활이었다.
부모님은 언제나 근검절약을 강조하셨고,
어릴 적의 나는
오락실에 가서 넣는 100원짜리 동전 하나,
문방구에서 파는 500원짜리 장난감 하나 집는 것도
부모님의 불호령을 걱정하며 벌벌 떨었었다.
아껴 써야 한다,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다.
지금까지도 부모님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조언들이다.
그런 피눈물 나는 절약정신 덕분일까.
시간이 흐르고, 해가 지날수록 집안 살림살이는
눈에 띄게 나아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던 단칸방은 거실과 방이 있는 빌라로,
너무나 비좁았던 빌라는 주차장이 있는 아파트로 탈바꿈했다.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바쁘셨던 부모님은
3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기술자,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업을 일구어낸 사장님이 되셨다.
그래서 나에게 부모님이란 존경할 수밖에 없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괴물 같은 어른들이다.
상경하기 전 그날,
아버지는 대체 어떤 마음이셨을까.
그 질문을, 나는 아직도 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