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 잠겨버린 거울

어설픈 호의

by 황웨이

여름이었다.

햇살은 너무나 따스했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매일같이 분수대 옆에 모여 물장난을 치고 있었고,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며 환한 미소와 함께 수다삼매경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휴학계를 내고 방황하던 나는, 한 여자에게 빠져있었다.


매일같이 지하철을 타고 안양으로 향했다.

심리학 공부를 한다던 그녀는, 나에게 몇 가지 설문지를 작성해 달라며 말을 걸어왔었다.

그녀의 미소는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눈빛은 한없이 다정했다.

그녀와 함께하는 평범한 순간들은 그때의 나에겐 유일한 숨 쉴 공간이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나와 역 앞을 지나칠 때마다, 한 노숙자 아저씨가 늘 같은 자리에 앉아계셨다.

텅 빈 눈으로 조용히,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아저씨. 처음엔 그냥 스쳐 지나갔지만, 매일같이 앉아있는 그 아저씨의 모습을 바라보며, 무언가가 자꾸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그녀와의 관계는 점점 가까워졌고,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는 날이 찾아왔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이 기뻤고, 내 마음은 날아갈 것처럼 둥둥 떠다녔다. 그녀와 헤어지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그리고 그날도 어김없이, 역 앞에 앉아 계신 그 아저씨를 마주쳤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근처 작은 음식점에 들어가 김밥 몇 줄과 음료수 몇 개를 사들고 나왔다.

그리고 아저씨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요"


그 아저씨는 내가 건넨 음식들을 말없이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그게 전부였고, 그다음 날부터, 역 앞에서 그 아저씨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날, 내가 나도 모르게 건넨 호의는 그 아저씨에게 어떻게 다가갔을까.

자리를 털고 일어날 힘이 되었을까, 동정을 받은 자신에 대한 절망감을 느꼈을까.


사실은, 가끔 그때가 떠오를 때마다 많이 반성한다.

그저 내 기분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분에게 내 감정을 강요한 건 아닐까 하고.


진심으로,

그분에게 힘이 되었다면 좋겠는데.

아니, 상처는 아니었다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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