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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영 Oct 22. 2022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받는 위로가 가장 따뜻하다

레모네이드와 블루베리 잼

 몸이 으실으실 아플 때면 시원한 레모네이드와 블루베리 잼이 생각난다. 딱히 먹고 싶진 않지만 생각만으로도 몸이 나아질 것 같은, 나의 힐링 음식 레모네이드, 블루베리 잼. 


 레모네이드


 사막에 다녀온 후, 열병에 걸려 며칠을 고생했다. 내내 식은 땀이 났고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었다. 함께 여행한 윤화 언니는 나에게 뭐라도 먹이려고 고속버스 휴게소에서 고기가 들어간 빵을 사와 나에게 들이 밀었다. 내가 손으로 빵을 밀어내자 언니는 내 상태의 심각함을 인지했다. 그동안 못 먹은 거 없이 뭐든 입에 넣던 내가 처음으로 음식을 거부한 것이다. 다정다감하고 조용한 언니는 하자는 대로 다 따라주는 천사같은 사람이었으나 그 때 처음으로 내게 단호했다. 

 “먹어. 먹어야 나아.” 

 언니의 말에 난 빵을 다시 집었으나 채 몇 입 먹지 못하고 고기빵은 그대로 다시 비닐봉지로 들어갔다. 카이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내내 잤다. 한참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니 사막의 모래를 아직까지 뒤집어 쓴 채였다. 씻기 위해 화장실에 가 오랜만에 거울을 봤다. 얼굴이 새카맸다. 햇빛에 그을려서가 아니라 아픈 사람의 얼굴이었다. 무거운 몸을 겨우 움직여 샤워를 하고 다시 쓰러졌다. 아침에 조식으로 나온 빵과 잼이 입에 썼다. 몇 입 먹지 못하고 내려놓자 언니가 날 걱정스레 바라봤다. 

 침대에서 일어나 외출을 간 건 기념품을 사러 시장에 가기 위해서였다. 카이로를 떠날 때가 다가왔다. 일어나 걸을 수 있는 정도가 되긴 했지만 어지러운 건 여전했다.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은 ‘조르디의 상점’이었다. 그곳에서 ‘카르투시’를 맞출 예정이었다. ‘카르투시’는 왕이나 신의 이름을 상형문자로 기록한 타원형 문양이다. 왕의 석상이나 히에로글리프(그림으로 만들어진 고대 이집트 문자)에서 이 ‘카르투시’를 발견할 수 있다. 조르디 상점에선 알파벳으로 이름을 적어주면 카르투시로 변환해 팬턴트나 반지를 맞춰줬는데 기념품으로 인기가 아주 좋았다. 조르디의 상점이 있는 칸 엘 칼릴리 시장으로 향했다. 어마어마하게 넓고 복잡한 시장에 들어섰는데도 주변 풍경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꼬불꼬불 엉켜있는 길을 걸었다. 온몸에서 후끈후끈 열기가 올라왔다. 어질어질해 걷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내 앞에 가는 사람들을 놓치지 않으려 뒷모습에 눈을 고정시키려 노력했다. 

 조르디의 상점은 긴 네모 모양의 좁은 공간이었다. 사방이 기념품으로 가득찼고, 카운터 맞은편엔 손님이 앉는 긴 의자가 벽에 기대어 있었다. 우린 카르투시를 맞추고 기념품이 완성될 동안 상점 안의 물건들을 구경했다. 그러나 몸이 채 성치 않은 나는 은으로 된 반지를 하나 고른 후 긴 의자에 뻗어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어 나를 챙기지 못했다. 양념된 나물처럼 축 쳐진 나를 누군가가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조르디였다. 그는 아저씨와 할아버지 사이의 나이대였는데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치곤 아주 차분했다. 조르디는 카운터에서 손님을 대하며 맞은편에 거의 눕다시피한 나를 간간히 눈여겨 봤다. 손님이 떠나자 조르디는 어딘가로 전화했다. 

 찻집 배달은 언제, 어디에서 유래된 것일까. 이집트에서 차를 배달시켜 마시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조르디가 전화한 곳은 어느 찻집이었다. 음료를 주문하면 몇 분 있다 찻집에서 아름다운 쟁반과 잔에 음료를 담아 가게로 가지고 왔다. 그는 몇 가지 음료를 주문해 우리에게 마시라고 권했다. 방문한 손님들에게 음료를 대접하는 건 조르디 상점만의 서비스 같았다. 다른 사람들에겐 주문을 받은 것 같았지만 나에겐 그럴 틈이 없어서 그는 따뜻한 차를 주문했다. 조르디는 차를 잔에 따르곤 나에게 마시라고 권했다. 실눈을 뜨고 조르디가 하는 행동을 간간이 보던 나는 몸을 일으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계피차였다. 따뜻한 계피향이 솔솔 입안을 채웠다. 그러나 몸에 열이나 뜨거운 음료를 더 이상 마실 수 없었다. 한국에서 걸리던 감기 몸살은 춥고 오들오들 떨려 따뜻한 걸 마시는 게 도움이 됐는데, 이 병은 도대체 어떤 병인지 몸살 같으면서도 몸에서 나는 열을 어찌하지 못해 따뜻한 걸 먹지 못했다. 차를 몇 모금 마시지도 못한 채 난 다시 의자에 쓰러졌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아직도 카르투시는 완성되지 않았고, 같이 간 동행들은 기념품 구경에 삼매경이었다. 사막에 있을 때에 비해 몸이 많이 나아졌어도 여전히 난 병자였고 이대로 집에 멀쩡히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카운터 앞에서 일을 보고 있는 조르디가 보였다 사라졌다 반복했다. 다시 차를 마실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뜨거운 걸 또 먹고 싶지 않았다. 난 긴 의자에 옆으로 기대 거의 누워있었다. 두꺼운 겨울 외투를 이불과 베개처럼 폭신하게 다듬고 거기에 잠자는 새처럼 파묻혔다. 상점엔 카르투시를 맞추러 오는 사람들이 간간이 있었고, 다른 기념품도 여럿 사갔다. 시장에선 꽤나 구석진 장소에 있는데도 외국인들은 입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손님이 북적이진 않았지만 없는 때는 없었다. 조르디는 친절하고 사려깊은 사람이었다. 손님들에게 물건을 강매하지도 않았고 바가지를 씌우지도 않았다. 소문에는 이 근방에서 외국인에게 정찰제를 처음으로 시행한 장사꾼이라고 했다. 바가지 씌우는 게 기본인 이집트에서 그렇게 장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덕에 그는 이런 호황을 누렸다. 

 조르디가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이번엔 찻집에서 한 잔의 유리잔을 쟁반에 담아 가지고 왔다. 옅은 레몬색의 음료가 유리잔 안에서 찰랑였다. 조르디는 잔을 받아 들고 나를 바라봤다. 

 “마셔요.” 

 몸을 일으켜 천천히 조르디가 권한 잔을 받아 마셨다. 레모네이드였다. 온몸의 열을 내려주는 것처럼 시원했다. 레몬의 시큼하고 달콤한 맛이 입맛을 돋게 했다. 한 모금 마시니 “아!” 절로 탄성이 나왔다. 그제서야 사막의 열병이 가시는 듯했다. 나를 괴롭힌 것은 으슬으슬한 몸살 감기가 아니라 사막이 내게 전해 준 열기였다고, 나는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생각했다.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조르디도 조용히 미소지었다. 


 블루베리 잼


 시기쇼아라의 작은 도시에서 우린 웨딩 촬영을 했다. 빌려간 카메라로 동생이 사진을 찍어 주었고, 이제 3살 된 조카는 신이 나 뛰어다니며 간간이 우리의 사진에 등장했다. 난 흰 원피스에 스니커즈, 예비 신랑은 하늘색 셔츠에 보타이를 메고 찢어진 청바지에 베레모를 썼다. 파스텔톤 건물들이 인상적인 고대 도시는 아름다웠다. 꽃집에서 산 꽃다발을 부케 삼아 거리를 걸었다. 꽃송이가 주먹만한 꽃들이 딱 세 송이 묶여 있는 다발이었다. 꽃이 매우 아름답고 탐스러웠는데 향은 없었다. 우리는 잠시 야외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사진을 찍고, 도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교회에 올라가면서도 사진을 찍었다. 덕분에 우리 사진엔 노란색, 파란색의 집벽과 아기자기한 돌길이 배경이 되어주었다. 우린 신나게 거리를 누볐다. 

 흥이 난 채 성채를 누비고 다녔지만 사실 아침부터 불안했다. 몸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가끔 몸에 염증 반응이 나타날 때가 있었다. 그 때마다 병원에서 항생제를 처방받곤 했는데 이곳엔 아는 병원이 없을 뿐더러 영어를 사용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핸드폰 번역기로 약국에서 소염제를 구매해 임시로 먹으며 버텼다. 우리가 있던 곳은 시기쇼아라의 역사 지구, 루마니아 중부에 있는 시타델이었다. 시타델(Citadel), 즉 성채(城砦)는 성과 요새를 뜻하는 말로 성 건물을 포함해 하나의 마을 혹은 도시가 요새처럼 품어져 있는 곳을 뜻한다. 시기쇼아라는 세계에 남아 있는 중세 요새 도시 중 유일하게 아직까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그리고 드라큐라 백작으로 유명한 블라드 체페슈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시기쇼아라 가는 길은 멀다. 수도 부쿠레슈티가 있는 루마니아 남쪽에서 중부 시기쇼아라까지 가는 길은 오직 하나다. 하나의 길로 주욱 뻗어 있는 도로를 따라 네다섯 시간을 가면 시기쇼아라가 나왔다. 길은 어렵지 않았고, 차는 거의 없었다. 그런 먼곳에서 아프게 되니 더욱 불안했다. 

 본격적으로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한 건 웨딩촬영을 끝내고 동생 가족이 부쿠레슈티로 돌아간 후였다. 긴장이 풀리면서 염증이 몸에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해가 지자 이상하게 기분이 가라앉았다. 예비신랑이 없었으면 낯선 타국에서 더 고립된 기분을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몸이 안 좋으니 한국어가 듣고 싶었다. 우리는 유튜브에서 한국 영화를 하나 골라 잠이 들기 전까지 봤다. 약국에서 산 약으로 버티면서 부쿠레슈티까지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빌었다. 

 시기쇼아라를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오면서 봤던 무너진 성을 다시 보게 되었다. 시기쇼아라 가던 길, 넓은 평야를 달리던 우리의 눈에 저 멀리 높은 언덕 위 낡은 성채가 눈에 들어왔다. 버려진 성처럼 한쪽이 무너져 내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다. 

 “도대체 저건 뭐지?”

 아래로 마을이 낮게 깔려있고 오래된 무너진 성 하나만 우뚝 솟아 있는 풍경. 장관이었다. 그곳을 다시 지나가게 되니 한쪽이 매몰된 흙색 성곽이 나의 마음을 끌었다. 

 “저기서 우리끼리 사진 한 번 더 찍을까?”

 “괜찮겠어?”
  “음……그래도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까”

 넓다란 찻길을 따라 올라가니 성곽은 그 동네의 관광지였다. 루피아 요새라 불리는 이곳은 루마니아에서 고고학적으로 꽤 오래된 요새라는 것 외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었다. 가까이에서 본 요새는 성 자체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장관이었다. 적의 침입이나 마을의 상황을 파악하기엔 최적의 위치였다.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한 후, 카메라 앞에서 우린 장난스레 포즈를 취하고 웃긴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찍었다. 맑은 가을 하늘은 요새를 더욱 찬란하게 비추고 있었다. 

 무리를 한 탓일까. 촬영을 마치고 나니 4~5시간이면 갈 거리를 더 이상 갈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안 좋아졌다. 우린 시기쇼아라 갈 때와 마찬가지로 넓은 평야,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나 중남부 지역까지 내려왔다. 스위스의 작은 마을처럼 높다란 산맥이 마을을 둘러싼 곳이었다. 겨울이면 스키타러 오는 관광객들로 인기인 곳이라지만 아직은 눈이 없어 푸르렀다. 이미 반 정도 왔지만 부큐레슈티까지 가기 힘들 것 같아 우리는 마을에서 하룻밤을 머물기로 결정했다. 아는 숙소가 없었다. 차를 타고 빙빙 마을을 돌자 게스트 하우스 간판이 보이는 집들이 있었다. 한 집의 정원에 숙소 주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나와 있었다. 인상이 푸근한 아주머니였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미소 지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아주머니는 우리를 깔끔한 방으로 안내했다. 

 밤새 몸은 더 안 좋아졌다. 끙끙 앓으며 밤을 보낸 뒤, 난 병원에 가야할 것 같아 부큐레슈티에 있는 동생 가족에게 연락해 병원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얼굴은 퉁퉁 붓고, 몰골은 초췌했다. 아침을 먹고 바로 출발하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갔다. 어제 만난 아주머니는 한가한 식당 가운데 자리에 우리를 안내했다. 

 루마니아는 음식이 맛이 없었다. 어딜가도 기똥차게 맛이 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풍족한 식재료가 나는 나라인데도 요리 방법에 한계가 있고, 야채나 과일은 대체로 생으로 먹었다. 우리의 테이블엔 빈약해 보이는 접시 하나가 놓였다. 오이 몇 조각, 당근 몇 조각, 과일 몇 조각이 간단히 올려져 있고 가운데 오므라이스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간단한 데코레이션도 없는 심플한 상차림이었다. 생각했던 맛 이상이하도 아니었다. 한 가지,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음식이 있었다. 잼이었다. 빵에 곁들여 나온 잼은 다른 어떤 음식보다도 신선하고 달콤했다. 얼굴이 푸석푸석한 채로 아침을 먹던 나는 잼을 한 입 먹고 얼굴이 조금 펴졌다. 이제까지 루마니아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에게 물어봤다. 

 “이거 뭐에요?”

 “블루베리 잼이에요.”

 “정말 맛있네요.”

 맛있다는 말에 아주머니는 푸근한 미소를 짓더니 자랑스럽게 말했다.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아 그래요? 정말 맛있어요.”

 기분 좋은 웃음을 머금은 아주머니는 내 아픈 몰골을 잠시 바라본 뒤 사라졌다.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삐그덩한 몸짓으로 엉거주춤 걸어나가는 나를 아주머니가 불러 세웠다. 그의 손엔 조그만 병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나에게 쥐어주었다. 

 “가져가요.”

 블루베리 잼이었다. 아플 때 누군가의 호의만큼 눈물나게 고마운 게 있을까. 통증이 극심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 마음이 달콤함으로 가득찼다. 

 “고맙습니다.”

 난 주인 아주머니를 포옹했다. 아주머니는 따뜻하게 날 안아주었다. 우린 곧장 부큐레슈티의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좋은 의사를 만나 처치를 받고 내 몸은 바로 좋아졌다. 동생의 집에 도착해 짐을 풀었을 때 비닐봉지를 보고 올케가 물었다. 

 “이건 뭐야?”

 “블루베리 잼” 이라고 말했지만 난 속으로 사랑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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