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의 맥주
나에겐 여행지에서 운명처럼 만난 친구들이 몇 있다. 여행가서 친구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마음 맞는 동행을 찾는 것도 쉽지 않고, 현지인 친구를 만든다는 건 더더욱 우연보단 운명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 일정이 맞아 며칠을 함께 다닐 수는 있지만, 계속해서 연을 이어가는 사람 역시 몇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누구보다도 길게 연을 이어가게 되기도 한다. 페드라는 나의 독일 친구다. 우리는 가끔 SNS로 안부를 물으며 지낸다. 인연의 시작은 몇 해를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 9월. 독일 함부르크.
[함부르크에 온 걸 환영해! 우리 이따 융페른슈티그 역 앞에서 만나. 거기 커다란 애플 스토어가 있으니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함부르크 왔으니 성 미카엘 성당 꼭 가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거든. 성당이 정말 멋져. 그럼 이따 만나자!]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나는 예비 신랑을 루마니아에 사는 동생 부부에게 인사시키기 위해 유럽 여행을 가게 되었다. 조금 긴 신혼여행을 간다 생각하고 루마니아 외에 갈 몇 나라를 정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페드라가 생각났다. 우린 굳이 경유해서 가야 하는 함부르크를 일정에 넣었다.
함부르크는 궂은 날이 많다고 하는데, 우리가 도착한 이후로 계속 해가 뜨고 날씨가 아주 좋았다. 페드라는 우리가 도착하기 며칠 전부터 계속 우리가 오기를 기다렸다.
성 미카엘 성당을 둘러보고 천천히 걸어 알스터 호수까지 갔다. 함부르크는 독일 북부 맨 꼭대기에 있어 바다와 인접해 있는 몇 안되는 도시다. 바다와 이어져 있어 도시 곳곳에 운하가 흐르는 점이 이색적이었다. 도시 한가운데엔 알스터 호수가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함부르크 시내는 운하를 둘러싼 최신식 건물들이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 부유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알스터 호수는 넓고 근사했다. 백조들이 떠다니며 사람들이 가끔 던져주는 빵 쪼가리를 물었고, 사람들은 호숫가에 앉아 점심을 먹거나 휴식을 즐겼다. 호수를 둘러싼 주변 건물들은 오래되어 보였지만 19세기 최대 번화가답게 하나같이 고급스럽고 근사했다. 페드라와 만나기로 한 융페른슈티그 거리는 독일 최초의 포장 도로라고 한다. 독일 최고의 부르주아들이 이곳에서 쇼핑을 하고 식사를 하고 비즈니스를 한 역사적인 거리인 것이다. 그 길 한가운데 애플 스토어가 있고, 역으로 들어가는 출구가 바로 옆에 있었다. 페드라는 출구 앞에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우린 반가움에 한참 동안 포옹을 나누었다.
“성당 멋지지? 자, 우선 가자. 우리 이제 배 타러 갈거야.”
“배?”
페드라는 우리를 위해 알스터 호수 유람선표를 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페드라도 알스터 호수를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을 보면 이 호수는 함부르크의 자랑이자 명소임에 틀림없었다. 마치 서울 사람이 “서울에서 가장 먼저 무엇을 보라고 하겠어요?” 질문에 “한강”이라고 답을 하듯이 말이다. 생각지도 못한 유람선 투어에 흥분이 되었다.
“날씨가 정말 좋다.”
“그치? 이런 날이 정말 없어. 일년에 3주~4주 정도만 해가 나고 맑아. 평소엔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 많거든.”
“우와, 우리 정말 운이 좋구나.”
해 뜨고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훨씬 많다는 함부르크. 일년의 대부분은 해가 쨍쨍한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상상이 안 되는 기후였다. 호수 곳곳엔 요트와 보트가 즐비했고, 맑은 날을 마음껏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사람들은 보트에서 노를 젓거나 요트를 타거나 호숫가에서 조깅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벤치에 앉아 물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우리도 늦도록 떠 있는 해를 마음껏 즐기며 한참 호수 위를 유랑했다.
배에서 내리니 배가 고팠다. 우리는 10분 정도 걸어 근처의 레스토랑에 갔다. 넓은 잔디밭이 깔린 공원이 바로 옆에 있어 여유로워 보였다. 야외에 테이블이 한 가득 모여 있고, 테이블마다 일을 마치고 한 잔 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와 남편은 꼭 먹어보고 싶었던 독일식 족발, 슈바인학세를, 페드라는 소시지 요리를 주문했다. 거기에 시원한 맥주까지! 짭쪼름하고 바삭한 슈바인학세와 함께하는 맥주 한 잔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페드라가 시킨 바이스부르스트(Weisswurst)라고 하는 하얀 소시지는 특이하게 물에 담겨 나왔다. 우리가 기존에 많이 맛보던 간이 강한 소시지와는 달리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야외에서 독일 맥주와 요리를 즐기니 옥토버페스타가 부럽지 않았다. 해가 지는 야외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도 볕을 받으며 퇴근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결혼 진짜 축하해. 너희 둘 정말 보기 좋아.”
“고마워.”
식당 뒤로 해가 지며 마지막 강한 빛을 잔디밭에 뿌려 놓았다. 맥주 한 잔에 얼굴이 벌개진 우리는 알딸딸한 기분으로 축제같은 분위기를 만끽했다. 페드라와 난 마주보며 흥겨움에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함께 취한 건 5개월 만이었다.
2016년 4월. 서울 홍대.
페드라가 한국에 오자 난 바빠졌다. 일 때문에 몇 날 며칠을 가이드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하루 정도는 정말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페드라와 이것저것 수다를 떨다 저녁 메뉴를 제안했다.
“우리 저녁에 삼겹살 먹는 거 어때?”
“삼겹살? 그게 뭐야?”
“코리안 바비큐야. 돼지고기. 맛있어.”
“그래! 좋아!”
페드라와 무얼 할까 고민하던 나는 내가 평소에 하던 아주 평범한 걸 같이 하기로 결심했다. 삼겹살은 나에겐 익숙했지만 페드라에겐 낯설 메뉴였다. 우린 삼겹살 가게로 향했다. 익숙하게 삼겹살과 소주를 주문하는 나를 페드라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모든 것이 재밌는 눈치였다.
“한국 왔으니 소주 한 잔 해야지.”
“하하. 이거 술이야?”
“응. 삼겹살 먹을 땐 마셔야 해!”
난 투명한 소주를 잔에 똘똘똘 따라 주었다. 짠 하고 건배한 후 한 입 마시자 페드라는 어깨를 으쓱하며 나쁘지 않단 표정을 지었다. 상추, 깻잎에 고기를 올리고 쌈장과 마늘, 파무침을 올려놓는 걸 페드라에게 보여주었다.
“이렇게 싸서 먹어.”
“오호.”
“어때?”
페드라가 입에 쌈을 넣는 걸 보고 물었다.
“맛있어!”
가게에 삼겹살 굽는 연기가 자욱했다. 소주 한 잔에 취기가 오르고, 배가 불러오며 행복감도 자욱하게 몰려들었다. 페드라는 행복한 얼굴이었다. 나는 준비한 선물을 주었다. 한국식 놋수저 세트와 테이블보였다.
“젓가락질 할 수 있어? 이거 좀 무겁긴 한데, 선물로 주고 싶었어.”
“와! 멋진데? 고마워!”
처음보는 놋수저에 페드라의 큰 눈이 더욱 커졌다. 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신기한 인연. 우리가 정말 서울에서 만나다니. 말한마디에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난 상상도 하지 못했다.
2015년 9월. 포르투갈 포르투
페드라와 나는 포르투 뒷골목의 작은 식당에서 만났다. 나는 동생 가족과 스페인, 포르투갈을 여행하다 리스본에서 헤어진 참이었다. 오랜만에 모처럼 혼자 여행을 하게 되어 자유를 만끽했지만 동시에 쓸쓸하기도 했다. 포르투의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거리를 걷다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가도, 끼니를 해결해야 할 때가 되면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어 심심했다.
하루종일 시내 구경을 하다 저녁 때가 되자, 나는 도루 강 근처 식당가를 어슬렁 거렸다. 골목에 야외테이블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적당히 맛있어 보이는 식당을 골라 자리를 잡고, 이것저것 맛있어 보이는 음식과 포르투의 명물 포트 와인을 한 잔 시켰다. 포트 와인은 브랜디가 들어간 와인으로 일반 와인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높다. 중세 시대 때 와인을 배에 싣고 영국까지 이동할 때 상하지 말라고 브랜디를 조금 넣었던 게 유래가 되었단다. 어쩐지, 와인에서 브랜디 향기가 나는 게 향기로웠다.
살짝 취기가 올랐다. 음식도 맛있고, 깜깜한 밤을 밝히는 노란 조명도 맘에 들었다. 자리가 다 찬 게 아니어서 웨이터들이 여유있게 서빙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웨이터가 내 옆자리에 음식을 가져다주고 손님과 몇 마디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얼핏 듣기에도 아주 활기차고 밝은 목소리였다.
“정말 고마워요. 음식이 진짜 맛있어요.”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말을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커다란 파란 눈에 미소가 어린 여자였다.
“안녕”
“안녕”
우린 서로 홀로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아봤다. 페드라는 누구와도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옆자리에 앉았어도 즐거운 저녁 식사를 했을 것이다. 우리는 여행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빠져들듯 대화를 나누었다. 페드라는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걸 탐색하는 걸 즐겼다.
“나는 여행하면서도 항상 다음엔 어디 갈까 생각해.”
“나도 그래.”
우린 서로 여행한 나라들을 공유했다. 페드라는 몇몇 아시아 나라에 가봤지만 한국은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나도 유럽의 이 나라 저 나라를 가봤지만 독일은 가보지 못했다. 우린 서로의 나라를 내심 궁금해하며 눈빛을 밝혔다.
“지금도 내년에 어디 갈까 고민 중이야.”
페드라의 말에 머리보다 입이 먼저 움직였다.
“한국 와!”
무슨 생각이었는지, 난 곧장 한국으로 오란 말을 꺼냈다.
“그래?”
“응! 서울 정말 멋진 도시거든.”
페드라의 아름다운 파란 눈이 반짝였다. 그렇게 이듬해 페드라는 정말로 한국에 왔다.
우리 인연의 시작은 평범했지만 그 평범함이 우리를 계속 이어지게 만들었다. 내가 평소에 잘 알던 것이 특별한 것임을 난 페드라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삼겹살과 소주를 그렇게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페드라의 크고 밝은 눈으로 보게 된 새로운 면이었다. 페드라 역시 그에게 가장 편하고 익숙한 걸 나에게 소개해주었다. 페드라가 선물로 준 독일식 빵이 생각난다. 아침식사로 그 빵을 먹었다. 낯선 도시에서 먹었던 현지인의 식사는 독특한 경험으로 나에게 남았다.
우린 아직도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요즘 잘 지내는지, 여행은 갈 건지, 간다면 어디로 갈 건지……. 처음 만난 그 때와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둘 다 아기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다. 당분간은 둘 다 여행을 기대할 처지가 아니지만 서로를 이해할 만한 공통점이 또 하나 생겼다는 것이 기쁘다. 다음에 페드라를 만난다면 내가 지금 경험하는 보통 한국인의 아주 평범한 것을 소개해주고 싶다. 그건 바로, 키즈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