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유가오카 가는 기찻길
아침 7시에 나와 밤 11시에 퇴근하는 일상이 계속되는 나날이었다. 자아실현을 위해 일을 하는 건지, 일을 위해 나를 갈아넣는 건지 모를 삶을 살고 있었다(물론 우선은 돈이다). 그만둘 수도 없고 뭘 위해 사는 건지도 모르는 그런 삶. 달리고는 있지만 이 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 건지 확신이 안 서는 기분을 매일 느껴야 했다.
지겹게 일을 하느라 휴가 준비도 못한 여름날이었다. 가깝고 익숙한 도쿄로 행선지를 급하게 정해 숙소를 예약하고, 마음에 드는 여행 책자 한 권만 사놓았다. 국내로 떠나도 되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 여행지는 항상 ‘한국어가 들리지 않는 곳’이어야했다. 전화통에 불이 나도록 통화하고, 눈이 빠져라 하루종일 메일 쓰고 서류 작업을 하다보니 말을 알아 들을 수 없는 곳으로 가야 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 여행을 많이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일 거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오전 반차로 시작한 휴가의 첫 날, “뭐할 거에요?” 묻는 이사님의 질문에 “일본 갈 거에요.”라고 큰 소리 치곤 여행사로 가 “오늘 도쿄 가는 비행기표 주세요.”했다. 그렇다. 비행기표는 여행사에서 사는 시대였다. ‘오늘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당당하게 주문하는 내 모습이 어찌나 쿨하고 멋지던지!
많은 걸 하고 싶지 않아 여행의 컨셉을 ‘산책’으로 정했다. 유명 관광지나 번화가는 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숨겨져 있는 골목을 탐색하고 걸으며 담백한 주택가를 산책하고 싶었다. 나카메구로에 갔다 지유가오카를 들렀다 오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전철에 올라 음악을 틀었다. 플라시보(Placebo)를 켜자 이상하게 귀에 걸리지 않았다. 잠깐 고민하다 선곡을 다시 했다. Free Tempo <Memories> 첫 소절, 드럼 소리가 울려퍼졌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역시 장소에 어울리는 선곡이 있다. 어떤 문화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만든 곡을 그 나라에서 들으면 음악이 한껏 부풀어지며 나를 감싼다. 런던에선 Coldplay의 <Viva La Vida>를 들으며 거리를 걸었다. 노래에 피카리디 서커스, 리젠트 스트리트를 걸었던 감정과 기억이 녹음되었다. 일본에 처음 갔을 땐 아라시의 <冬のニオイ(후유노이노이: 겨울 냄새)>를 들었다.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처음 일본에 갔을 때의 기분이 떠오른다. 맞다. 일본에 오면 일본 음악을 들어야 한다. Free Tempo, 우타다 히카루를 들으니 나를 둘러싼 도쿄의 공기가 조금 더 친숙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꼭 서래마을 같네’.
나카메구로의 첫 인상이었다. 아기자기한 주택가 사이사이에 옷가게며 식당이 오밀조밀하게 끼여 있는 것이 모두 세련됐고, 골목에 여유가 느껴졌다. 잘 사는 부자 동네에 놀러 온 것 같았다. 일하면서 거리 상점들 시장조사 할 일이 많았는데, 그 덕에 새로운 게 보이면 무조건 사진 찍는 버릇이 생겼다. 이전이라면 지나쳤을 간판, 지붕 모양, 상점 밖 디스플레이 등 ……. 모든 게 새롭게 보였다. 거리의 소화전이나 주차금지 고깔 마저 우리나라와 달라 보는 재미가 있었고, 건물 밖 기다란 기둥 한 가운데 큰 시계를 달아놓은 것도 재미있었다. 디테일한 것을 보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이전엔 차마 알지 못했다. 피곤하지만 일을 하면서 배우는 건 있었다.
작은 동네지만 서점, 음식점, 옷가게, 펍, 카페 등등 갖출 건 다 갖춘 나카메구로는 어느 한 군데 촌스러운 구석이 없었다. 나는 골목 구석의 작은 식당에 들어가 아이스티 한 잔 시키고 점심을 먹었다. 그냥 지나치면 식당인 줄도 모르는 이곳은 동네 사람이나 아는 사람만 알음알음 갈 수 있게 숨겨져 있었다. 길거리에 작은 등처럼 세워져 있는 간판만 하나 있고, 입구부터 ‘식당’이라는 표식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작은 풀숲 사이사이 놓여진 받침돌을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일반 가정집 같은 내부는 기대 이상으로 정갈하고 세련됐다. 몇몇 손님들이 있긴 했지만 가게는 매우 조용했다. 맥주 한 잔을 더 시켰다. 다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틀었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과 청량한 음악으로 온몸이 시원해졌다.
나카메구로의 분위기에 취해 바로 지유가오카로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한참 동네를 머물다 역에 가서 노선을 보자 지유가오카는 나카메구로에서 한 정거장 밖에 차이가 안 났다. 산책하러 도쿄까지 왔겠다, 잔잔한 이 기분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천천히 지유가오카까지 걸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두 역 사이에 몇 정거장이 더 있지만 노선엔 대표 정거장만 표시 되어 있던 걸 난 몰랐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실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그 땐 차마 알지 못했다.
철도길 옆으로만 계속 걷다 보면 15~20분 이내로 지유가오카가 나올 것이라 믿고 걸었다. 종각에서 그 정도 걸으면 시청역이 나오고, 강남역에서 그 정도 걸으면 신논현역이 나오니까, 단순 계산으로 한 정거장은 그럴 거라 예상한 것이다. 역에서 조금 걸어가자 나카메구로와는 다르게 서민적인 느낌의 동네가 나왔다. 방금 전 나카메구로에서 본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촌스러운 옷가게와 마치 8~90년대 지어졌을 것 같은 세탁소, 옛날 금은방 가게 등이 골목에 자리잡고 있었다. 게다가 한참을 걸어 새로 나온 역은 지유가오카가 아니었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스믈스믈 기어 올랐다. 그러나 나의 이상한 인내심과 끈기 역시 이 타이밍에 발동되었다. ‘이왕 시작한 거, 멈출 순 없다’는 고집이 자리를 잡고 비키질 않았다. 새로운 정거장이 나오자, 난 ‘지유가오카’역이 나올 때까지 걸을 작정을 하는 내 자신을 눈치채고 기함했다. 오늘도 고달프겠구나……. 어차피 나카메구로에서 지유가오카는 한 노선이므로 ‘언젠간’ 나올 것이 분명하다. 걷고 걸으면 언젠가 나오겠지, 언젠간!
다행히 철로를 따라 걷는 길은 지루하지 않았다. 골목골목 집들이 모여 있다가 흩어지고, 길이 연결되었다 끊어지기도 했다. 공원이 나왔고, 동네 서점이 나왔다. 작은 연못을 앞에 두고 쉬는 사람들이 나왔고, 슈퍼카 정비소, 골프 연습장이 나왔다. 정치가들의 강연 포스터가 나왔고, 자판기가 나왔다. 주차에 도움을 주는 볼록렌즈가 나왔고 육교가 나왔다. 그 중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철로를 따라 그려진 그래피티였다. 처음 걷기 시작했을 때, 높은 철로 기둥에 눈에 띄는 그림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스텐실로 작업한 양복을 입은 해골이었다. 그림을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누가 저런 그림을 저 높은 곳에 그릴 생각을 했을까. 겉으론 번지르르한 옷을 입고 있지만 사실 살이 썩어가고 있는 해골바가지. 저것이야말로 진정한 현대인의 모습 아닌가. 이 곳 도쿄에도 치열하게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표식이었다. 해골을 보고 나서 이 길을 계속 가야겠단 생각을 더 하게 되었다. 무언가에 이끌린 듯 난 계속 길을 걸었다.
그래피티는 계속 나왔다. 도시 정화를 위해 공들여 그린 그래피티가 아니었다. 누군가 몰래 말그대로 ‘낙서’한 자국들이었다. 그림인지 글씨인지 모를 뭉개진 그래피티도 있었고, 이집트 상형문자처럼 알 수 없는 기호들이 나열된 그래피티도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골프 연습을 하는 큰 골프연습장 앞 철로엔 벽 한 가득 알록달록 알파벳을 낙서해놓기도 했다. 골프하는 사람들은 평생 알지 못하는 그림이었다. 항상 번쩍번쩍 빛나는 도쿄의 큰 건물만 보다 동네 구석의 그래피티를 보자 도쿄와 좀 더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하루를 충실히 보낸 친구들과 퇴근하고 맥주 한 잔 하며 털어놓는 삶의 이야기를 본 듯한 느낌이랄까.
발바닥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다리가 빠질 것 같이 아팠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길 위에 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멈출 수 없었다. 그저 가고 또 갈 뿐이었다. 오르막길이 나왔다. 헉헉대고 오르막길을 오르다 갑자기 내가 동화 속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제목은 <새끼 오리의 여행이야기>. ‘길 떠난 새끼 오리는 육교도 만나고 대로도 만나고 여러 험난한 길을 마주쳤어요. 어떤 땐 올라가야 하고 길을 건너기도 하고 돌아가야 하기도 했어요.’ 땀은 주룩주룩 흐르고 나는 얼굴을 훔치며 계속 걸었다. 일그러지는 얼굴을 누가 볼까 선글라스를 꼈다. 귀엔 여전히 FreeTempo의 <Memories>가 흘러 나왔다. 겨우 오르막길을 다 올랐다. 그러자, 길이 끊겨 있었다. 새끼 오리는 이제 찻길도 건너야 했다. 아오 맙소사.
한참을 돌아 겨우 반대편 길로 건너갔다. 길을 건너 한숨 돌리니 그제야 내가 올라온 길 아래 쪽 철로의 그래피티가 보였다. 그 그래피티를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SEE YOU NEXT PLACE.”
신은 가끔 이렇게 장난을 친다. 장난꾸러기 지니 같은 캐릭터가 개구진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이렇게 많이 걸었지만 넌 좀 더 걸어야 해. 우리 다음 장소에서 만나자.’ 지니가 그렇게 말을 하는 듯 했다. 힘든데도 웃음이 나는 건 모험은 가끔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기적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걸었다. 나카메구로를 출발한 지 2시간 만에 난 드디어 지유가오카에 도착했다.
내가 사는 현실과 이 길은 너무 닮아 있다. 지난하고 도착지를 모르지만 계속 걷게 되는 길. 이런 과정을 견딘다는 건 지루하고 힘들지만 또 재밌기도 하다. 한 남자가 생각났다.
혼자 월미도에 간 적이 있다. 주말이면 디스코 팡팡과 바이킹 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가득 메우겠지만 평일 대낮의 월미도는 황량하리 만큼 조용했다. 그래도 바다는 여전해서, 끼룩끼룩 우는 갈매기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멍하니 누런 물을 바라 보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펼쳤다. 잠시 후 누군가 옆에 앉는 게 느껴졌다.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었고, 비어있는 벤치도 많은데 굳이 내 옆에 앉은 게 수상했다. 나는 살짝 긴장한 채 옆 사람을 애써 무시했다. 책에 집중하려고 하는 찰나, 그 사람이 나를 살포시 건드리며 말을 걸었다.
“저기요.”
이어폰을 빼고 옆 사람을 바라봤다. 젊은 남자였다. 애써 웃고 있었지만 긴장한 표정이었다. 내가 마음에 들어서 말을 건 분위기는 아니었다.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남자가 말을 꺼냈다.
“저… 제 이야기 좀 들어주실 수 있으세요?”
남자는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에 다니던 대학도 그만두고 자기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자신 있는 사업을 구상했고, 그걸 시작하려고 한단다. 그가 나에게 뭔가를 제안하거나 팔려고 하는 건 아닌지 이야기를 듣는 내내 긴장했다. 난 그 비슷한 말이 나오면 바로 거절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가 마지막에 꺼낸 말은 영업이 아니었다.
“전 진짜 자신있거든요. 정말로 잘 해내서 성공할 거에요. 그 다짐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그는 자신이 성공할거라 선언하고 있었다. 머리를 딩하게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주변 그 누구도 ‘나는 어떤 일을 할 것이고 꼭 성공할거’라고 다짐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한탄과 호소는 할지언정, 스스로 해낼 것이라 자신있게 말하는 건 꼭 겸손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자기가 해낼 것이라고 말하면서 점점 얼굴 표정까지 밝아졌다. 당당하게 자신의 꿈을 낯선 이에게 말하는 그 사람이 정말로 멋져보였다. 응원해달라는 그의 말에 얼떨떨하게 응원을 해주자 그는 신이 나서 고맙단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뒤 다시 다가와 한 마디 더했다.
“제 이름은 000에요! 꼭 기억해주세요! 10년 뒤 전 성공해 있을 거에요!”
뒤돌아 가던 그의 밝은 염색머리가 기억난다. 그러나 기억해달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름은 곧 잊어버렸다. 그의 다짐이 어찌나 인상깊던지, 그 날 일기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그였다.
철길을 걸으며 월미도에서 만난 남자가 생각난 것은 그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했을까, 라는 생각에서였다. 멈출 수 없는 길을 가며 얼마나 좌절하고 쓰러졌을까. 그러나 난 그가 정말로 성공했으리라 믿는다. 매일의 같은 일상을 매번 힘내고 즐기며. 때론 햇빛을 받고 때론 비바람을 맞으며 서서히 자라는 과일처럼 조금씩 익어가면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꿈을 선언하는 사람치고 이루지 못한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멈출 수 없는 인생 한가운데 있는 느낌을 받았던 도쿄의 철길. 길을 걸으며 힘들었지만 언젠간 끝이 날 걸 알았기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지유가오카는 모험을 끝내는 종착지로는 아주 적격이었다. 그렇게 걷고 나서 아름다운 찻집 다다미방에서 다리를 쭉 펴고 꿀 같은 휴식을 맛 봤으니 말이다. 아직도 FreeTempo의 <Memories>를 들으면 뜨거운 열기 속 철로를 가득 메운 그래피티가 떠오른다. 우리는 모두 밝은 날의 햇빛을 받으며 익어가는 중이었다. 월미도의 청년도, 나도, 그리고 그래피티를 그린 일본의 청년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