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1인 N 역하기.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대형 서점이나 작은 책방이 있는가? 책을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행운아일지도. 책으로 둘러 쌓인 공간에서 마음에 드는 책들을 발견하면 마치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개인이라도 저자나 편집자의 눈으로 본 적은 잘 없을 거다. 나도 그랬다. 책 속에 파묻혀 있는 것만 좋아했지 하나하나 신경 써서 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쓰고 싶다는 로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주제로 어떤 방법으로 써야 할지 참 막막하다. 어렵게만 생각하면 끝까지 막막할 거다. 그래서 좀 쉽게 생각해 보자.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방법, 바로 "독립출판"이다. 출판사와의 계약, 투고 이런 복잡한 과정 없이도 나 혼자서 책을 낼 수 있다. 대신 모든 과정이 독립적이라는 뜻은 내가 그 역할을 모두 감당해야 한다는 것.
작가의 역할
우선 책을 쓰려면 글을 써야 한다. 즉, '어떤 매체'로 글을 써내려 갈 것인지 정해야 한다. 대부분 책을 쓰려면 기획을 하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쓰는 것을 시작했다. 처음엔 손으로 쓰는 일기가 그 시작이었다. 요즘은 수기로 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아날로그의 느낌이 좋긴 하지만 글을 수정하고 문단을 옮기고 이미지를 첨부하기엔 전자기기만 한 게 없다. 대부분 노트북이나 아이패드 같은 휴대 가능한 전자매체를 사용한다. 간편하게는 핸드폰 메모장에 담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일기를 옮기는 과정에서 내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공간은 맥북의 워드였다. 맥북에서는 한글파일을 따로 설치해야 해서 번거로웠고 내 노트북에는 MS마이크로소프트웨어의 워드, 엑셀 파일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단순히 그 이유로 선택했다.
이제 워드라는 글쓰기 공간을 정했다면 판형, 글씨체, 문단, 여백 등은 일단 생각하지 않고 기본으로 설정되어 있는 빈 화면에 글을 죽 적어가야 한다. 작가라는 이름에 충실하게 그저 글을 차근히 써 내려가는 것이다. 거창할 필요도 없고 최대한 문장을 심플하고 담백하게 적어보는 거다. 한 문장, 또 한 문장 그렇게 자연스럽게 문단이 생기고 문단과 문단이 모여서 글이 된다. 일기를 쓸 때와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일기는 나 혼자 보려고 나를 중심으로 기록한다면, 책을 위한 글은 독자들이 함께 보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그래도 최대한 솔직하게 불특정 다수를 생각하며 적어본다.
그런데 여기서 팁이라면, 일단은 편집 내용을 생각 않고 글을 적어 내려가지만 레이아웃은 먼저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레이아웃(사진과 그림의 적절한 배치)에 따라 책의 구성이나 전달력, 통일성 등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내가 정한 레이아웃은 따로 소제목을 적지 않고 드로잉 한 그림을 그대로 실었다. 드로잉+약간의 글/ 글/ 글/ 사진/의 4배치가 기본 구성이었고 중간의 글의 양에 따라 페이지가 늘어날 수 있도록 했다.
편집자의 역할
편집자의 역할은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저자가 쓴 날것의 글을 읽고 글의 흐름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게 목차를 구성한다. 예상 독자를 상상하며 윤문과 교정을 통해 글을 부드럽게 만든다.
1. 목차 구성하기
책을 볼 때 표지를 보고 호기심에 손을 뻗었다면 그다음으로 보는 것은 일반적으로 목차이다. 어떤 작품이든 오프닝과 엔딩이 있는 것처럼 책의 목차는 보통 프롤로그(prologue: 1. 책의 첫머리에 서문 대신 쓴 시.)와 에필로그(epilogue:1. 시가, 소설, 연극 따위의 끝나는 부분.)로 구성되는 것이 기본이다. 잘 모르겠다면 모티브로 하고 싶은 책 몇 권을 정해서 목차를 참고하면 좋다. 우리는 독립출판을 하는 것이므로 저자의 취향대로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하다. 그림으로 목차를 구성해도 되고 심플하게 선으로 또는 일자로 나열해도 된다. 나는 정말 기본 형식으로 시작-실천-의미 남기기로 구성하여 세 가지 섹션으로 크게 나누었다. 첫째, 드로잉 여행의 시작에서는 정의, 준비물, 포인트의 내용을 다루었다. 둘째, 드로잉 여행의 실천에서는 실제로 내가 드로잉 했던 여행지(10곳)의 짧은 글과 그림, 사진을 다뤘다. 셋째, 드로잉 여행의 의미 남기기에서는 작가의 말과 에필로그 속 사진을 자유롭게 배치하여 좀 더 자유롭게 책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목차를 먼저 생각하고 글을 썼다. 대충 어떤 순서로 전개할지 큰 그림을 그리고 세부적으로 접근하는 게 편해서.
2. 교정교열
편집자의 주된 역할 중 하나인 교정과 교열. 글은 인쇄소에 넘기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수정하게 된다. 완벽한 퇴고란 없는 것 같다. 자꾸 글을 뜯어볼수록 비문이 보이고 오타가 보이고 띄어쓰기가 신경 쓰인다. 더 나은 문장이 없나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거기서 멈추기. 일단 쓴 글을 타인에게 보여줘야 한다. 띄어쓰기 같은 경우는 사이트를 검색하면 여러 개 나오는데 프로그램을 돌려서 7~80%는 잡아낼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고 엉뚱한 것을 띄어 쓰게 하기도 한다. 나머지 2~30%는 내가 아무리 정확하게 혼자서 본다고 한들 작가의 눈에는 끝까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내 글이니까 비문도 이해가 되는데 처음 글을 접하는 독자에게는 읽히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최대한 짧은 호흡으로 문장을 끝맺으려 노력했고, 글을 보여주었다. 친구의 도움으로 비문과 지명 이름 등의 오타를 발견하고 띄어쓰기도 많이 고쳤다. 여전히 어려운 작업인 것 같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신뢰할 만한 여러 사람에게 공개하는 것, 잊지 말자.
디자이너의 역할
디자이너의 역할은 책의 판형을 정하고 책의 전반적인 배치를 고려하여 레이아웃을 짜는 일이다. 책의 성격과 어울리는 글꼴을 찾고 여백, 자간, 행간 등을 설정하는 일이다. 이 또한 막막하고 어렵다면 시중에서 내가 쓰고자 하는 주제와 유사한 책이나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을 선정하여 판형과 쪽수, 레이아웃, 목차 등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참고하자. 나는 김지선 여행작가의 <커피 한 잔 값으로 독립출판 책 만들기>라는 독립출판물을 보고 참고하여 판형과 여백, 글꼴 등을 결정했다. 아무래도 아무 관련 없는 책 한 권을 보고 하기보다 독립출판에 관련된 실용서를 참고하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내가 모티브 한 책은 B6(128mm*182mm) 사이즈로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저자의 얇은 책처럼 페이지수가 백장 미만이어도 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
1. 내지 디자인
내지는 사실 쪽번호와 글꼴, 여백, 글과 그림의 배치 또는 디테일한 색감을 통해 디자인한다. 나는 색감이나 그림을 추가하지는 않고 심플하게 갔다. 내가 사용한 글꼴은 눈누폰트라는 상업용 폰트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한 '제주 명조체'이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글꼴은 내 책의 판형과 비율적으로 어울리는 9.5p로 하고(처음에 1차 제본을 떠서 실물을 확인해 보니 9p는 조금 작다는 느낌이 들어 2차 제본 시 0.5p를 키웠다.) 행간은 글꼴의 약 2배 이상으로 설정했다. 들여 쓰기나 쪽번호는 계속 공통적이기 때문에 인디자인에서 기초 값을 설정해 두면 자동으로 생성되어 아주 편리하다.
2. 표지 디자인
표지는 가장 마지막에 디자인 및 제작했다. 책의 내용이 어느 정도 가다듬어졌을 때 책의 페이지 수에 따라 책 등 높이도 계산할 수 있고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 책의 제목과 표지 전체를 디자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운데 책등을 기준으로 앞면과 뒷면이 있는 3등분이 기본 구성이다. 여기에 조금 더 신경을 쓴다면 책날개(우리가 책갈피처럼 사용하는)를 추가한다. 책날개 앞쪽에는 보통 작가 소개가 들어간다. 나는 내 이름을 상징하는 하늘과 여름의 대표적인 꽃인 해바라기를 대표 사진으로 소개했다. 표지 그림에도 들어가서 통일감도 주고, 아주 좋아하는 그림이다. 책은 5면을 선대로 나누지 않고 걸쳐서 디자인했다. 책 표지 만드는 것은 크기가 다른 면들을 이어 붙여야 하므로 인디자인을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다른 문서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책등 계산법은 평량으로 구하는 방법과 내지 두께로 구하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총 페이지수*내지평량*0.5=책등(mm) 또는 총 페이지수*내지 두께(g)*0.6/1000=책등(mm) 이다. 종이 종류에 따라 평량이 다르므로 평량 값은 인터넷을 검색하여 참고한다. 나는 내지 두께를 이용해 구해보겠다. 내 책은 96p이며 모조지 100g을 사용했으므로 96*100*0.6/1000=5.76mm이다. 여기에 접지 등의 오차 범위를 생각하여 반올림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내 책등은 6mm로 설정하면 된다. 여기에 더 여유 있게 6.5mm로 했던 것 같다. 책날개는 책 표지 가로길이의 2/3 정도가 적당하여 128mm의 2/3인 85mm로 설정했다. 이 또한 디자인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길이를 자유롭게 설정하면 된다.
선택사항인 ISBN발급받기
ISBN이란 국제표준 도서번호를 뜻하는 것으로, 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의 약자이다. 사실 일반적으로 책 뒤표지에 실리는 바코드 표기는 사업자등록을 한 출판사 또는 1인 출판사를 차린 개인만이 ISBN교육을 이수하면 발급받아 등록할 수 있다. 기성 출판을 계획하는 사람이 아닌 독립출판을 하는 개인이 사업자 등록이 부담스럽지만 바코드를 발급하고 싶다면 위탁 형식으로 발급받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는 독립 책방에만 입고할 생각으로 생략했다. 듣기로는 ISBN을 발급받으면 국립중앙도서관에 2권을 샘플로 납본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ISBN이 있으면 좋은 점은 대형서점(교보문고, 영풍문고, yes24 등)에 계약을 체결하여 납품할 수 있다. 보다 많은 부수를 제작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책을 소개할 수 있고 택배나 포장 부분에 있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여러 장점이 있다.
인쇄하기
충무로는 인쇄소의 메카로 알려져 있다. 잘 모를 땐 유명한 곳을 찾게 된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내가 추구하는 비슷한 방식으로 독립출판을 계획하고 실행한 작가의 사례를 참고하여 추천해 준 인쇄소로 곧장 달려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인쇄만 주로 하는 곳보다 출판사의 영역까지 아는, 전체적인 컨설팅을 해주는 곳을 추천한다. 직접 종이 종류를 만져보고 색감이나 재질 등을 비교해 볼 수 있으며 다른 샘플들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출판의 전체적인 부분에 경험이 있으신 사장님을 만난다면 나처럼 출판 영역에 무지한 경우, 더 많은 조언을 얻지 않을까 한다. 여러 인쇄소에서 견적을 받는 것도 추천. 단가가 저렴한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어떤 인쇄방식(인디고, 옵셋, 디지털 등)과 어떤 기계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파본의 개수가 달라질 수도 있음을 주의한다. 우선은 샘플 1권을 받아보고 수정할 부분들을 점검한 뒤, 진행 여부를 결정한다. 나는 샘플이 너무 만족스러워서 처음 상담한 인쇄소에서 진행했다.
종이의 평량이나 재질에 대해 안다! 하는 사람은 직접 인쇄소에 가지 않고 인터넷으로 간편히(?) 원하는 부수와 크기, 재질의 값을 적어 인쇄를 맡길 수도 있다. 선택은 자유! 인디자인으로 수정작업까지 모두 마쳤다면 pdf파일로 내보내기 하여 인쇄소에 원고를 넘기면 끝!
여기까지 왔다면 책을 쓰는 것은 마무리가 됐다. 마케팅의 영역인 텀블벅으로 넘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