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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얼굴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표지가 결정되기까지.

by 하늘

책을 구입하기까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마도 표지이다.

적어도 나는 그래 왔다. 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책 표지가 예쁘면 우선 집고 본다.

제목마저 사랑스럽다면 내용도 멋질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어느새 결제를 끝낸 채 손에 들려있다.


꽤나 감각적인 카페만 가봐도 느낄 수 있겠지만 책이나 잡지를 사진 또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한다.

그래서인지 특히나 감각에 예민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디자인적인 요소는 날로 중요해지는 것 같다.

나는 그냥 소장하고 싶어서 표지가 예쁜 책을 사기도 한다. 다른 이유는 없다.

다른 때는 신중하게 표지를 보고 고르면서 정작 내 책의 표지를 디자인할 때는 깊이 고민하지 않고 결정해버렸다.


인쇄소 대표님과 컨설팅을 하러 충무로에 갔을 때, 책 표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내용 구성과 목차에 대한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하고 싶었고 사실 무작정 찾아간 것이라 그랬다.

대충 어떤 느낌일지 보여드리고 싶어서 전날 급하게 수정한 제목을 캘리그래피로 적어서 스캔을 뜬 이미지를 첨부했다. 인디자인도 아니었고 워드에 엉망진창으로 써 내려간 파일이었다.

내지의 첫 페이지를 보시더니,


"이거 그대로 표지로 가도 괜찮겠는데요?"라고 하셨다.


개인적으로 캘리그래피의 손글씨 느낌을 좋아하신 댔다. 본문에도 드로잉과 손글씨 작업이 들어갔으니 잘 어울리겠다고 하셨다. 여기에 덧붙여서 내 얼굴을 드로잉하고 돼지꼬리로 화살표를 그리고 작가 이름을 밝히는 건 어떻냐고 의견을 주셨다. 사실 속으로 그건 한참 지난 유행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내 얼굴이 표지로 들어가는 게 부담스럽고 싫었다. 그래서 "얼굴이 그려지는 건 싫은데요.."라고 솔직하게 말했더니 자세히 그리지 않아도 측면도 좋다고 하셨다. 책이라는 딱딱한 느낌보다 명함처럼 나를 알리는 느낌으로 그렇게 시도해봐도 좋을 것이라고 하면서. 당시에는 크게 와 닿지 않았지만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화제를 전환해 다른 작가들의 독립출판 책들을 보고 싶다고 했다. 샘플로 보여주신 책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빛났다. 홀로그램의 반짝이는 테두리도 있었고 자신의 뒷모습을 넣은 책, 그러데이션을 입힌 책, 심플한 단색으로만 채운 표지 등 다양했다. 책을 보여주시면서 그동안 본인이 여러 작가들과 책 작업을 하고서 인쇄된 표지에 대한 느낌을 나눠주셨는데 듣고 나니 많은 부분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색에 대한 고집은 내려놓지를 못하고 있었다. 여름이니까 쨍하고 밝은 컬러의 바탕색을 쓰고 싶었고 시원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표지를 고르고 디자인하는 일이 제일 어려웠다.




비치색, 하늘색, 청록색 이런 쪽으로 바탕색을 좁혀가던 즈음, 명함처럼 나를 알리자는 것도 좋은 취지라고 생각됐고 인쇄소 대표님 의견대로 내 얼굴을 스케치한 그림을 넣기로 했다. 일단 시간을 거슬러 사진첩을 휘리릭 훑어봤다. 사진 속에 나의 취향이 묻어났다.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참 좋아했고 대학생 땐 친구랑 서울 근교로 출사도 자주 나갔다. 그런 나를 찍어준 사진이 눈에 띄었다.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싶었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이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기에 좋을 것 같았다.


그동안 여행을 하며 랜드마크나 풍경만 드로잉 해봤지 내 얼굴을 드로잉 해본 적은 없었다. 드로잉은 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하게 한다. 선과 선을 연결하다 보면 지나칠만한 사소한 부분까지 발견하게 되니까. 사진 속 내 얼굴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며 직접 드로잉 하는데 뭔가 낯설고 기분이 묘했다. 대학생인 나는 이런 모습이었구나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지금의 나와 너무 다르면 안 될 텐데.. 하며 걱정스럽기도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최대한 사진 속 느낌과 비슷하게 담아보려고 애썼다. 샘플 본을 넘겼을 때 인쇄소 대표님은 굉장히 만족스러워하셨다. 본인의 의견을 반영한 표지라 예뻐라 하셨겠지. 그래서인지 실물보다 덜 예쁘게 그렸다면서 농담도 하셨다.


보통은 표지를 정할 때 비슷한 종류의 책들을 시장 조사하며 요즘의 트렌드가 어떤지 혹은 장르만의 취향이 있는지를 살펴보겠지만 나는 내 느낌 그대로를 고집했다. 그러다 친구가 드로잉 관련된 책들은 대부분 흰색 책이라는 고급? 정보를 알려주었다. 아마도 하얀 스케치북 같은 느낌으로 드로잉의 느낌을 살리기 위한 것일 거다. 그래서 나도 과감히 바탕색을 뺐다. 그림이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대신 여름을 알 수 있는 반팔 옷차림과 여름의 꽃인 해바라기를 표지의 대표 이미지로 골랐다. 색을 대신해 이렇게라도 여름의 느낌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렇게 내 책은 심플하게 해바라기와 측면을 한 내 모습 이 두 가지 이미지로 끝났다. 이미지를 많이 넣지 않으려고 레이아웃을 걸쳐서 배치했다. 책은 앞면뿐만 아니라 뒷면과 책등 그리고 책 안쪽으로 접히는 날개까지 모두 표지의 영역이므로 다섯 면을 하나로 보고 배치했다. 디자인을 전공한 친구는 이 부분을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돼지꼬리를 한 화살표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약간 유행을 지난 느낌은 없잖아 있지만 깔끔하고 괜찮았다. 텀블벅을 통해 목업 파일을 올리면서 표지를 공개했을 때 반응도 괜찮았다. 표지부터 예쁘다는 칭찬도 꽤 들었다. 역시 유경험자의 의견을 참고하는 건 적어도 중간은 가는 것 같다.


책의 얼굴은 SNS를 타고 멀리멀리 퍼져갔다. 전국의 책방으로. 누군가의 손으로. 가끔 생각 없이 SNS를 보다가 내 얼굴이 튀어나오면 깜짝 놀라기도 하는데, 다시 보면 친근하고 반갑다. 얼굴을 그린일은 정말 명함 같은 역할에 도움이 되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꽤 괜찮았던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내 청첩장을 만들 때가 온다면 미래의 우리 부부 얼굴을 직접 드로잉 하려고 했었는데, 그 사이에 또 내 얼굴을 드로잉 할 날이 다시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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