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침데기 여유.
삶은 온전히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당연한 이치다. 그때마다 몸에 힘을 쭉 빼고 흘러가는 대로 맡길 수 있다면.
원하는 무언가를 성취하지 못했을 때 간절함이 부족해서라고 스스로를 자책하곤 했다. 처음 임용시험을 준비할 때 주변으로부터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해야지, 플랜 B가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간절함만이 성공을 이끄는 비결인 줄 알았다. 물론 간절함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아직까지 내가 경험한 인생의 특징은 공든 탑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할 수 없는 영역과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의 사이에서 살고 있으니까. 삶은 절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지금까지 막힘 없이 원하는 대로 이루고 살고 있다고?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앞으로 남은 인생도 같을까? 언젠가 한 번은 만날 것이다. 성취하지 못함에 대한 일도.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다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경우도 허다해서 끝날 때까지 정말로 끝난 게 아니다. 한 순간도 장담하며 살 수 없다. 이런 삶이 괘씸하고 얄밉긴 하지만 알 수 없는 것이 다행인 것은 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되고 예상 밖의 기쁨을 얻기도 한다는 점이다.
내가 2차 최종 시험을 하루 앞두고 합격생 선생님으로부터 현실적인 피드백을 받았는데 뼈를 맞아서 그랬는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너무 잘하려고 하는 욕심을 버리라고. 그 말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열심을 다하면 무조건 좋은 것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욕심이 너무 많았다. 매사에 그랬다. 의욕과다의 부작용은 제한된 시간 동안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다 보니 잡동사니의 지저분한 수업이 되어버렸다. 마치 맛집의 단품음식이 아니라 이도 저도 아니게 담아버린 뷔페 접시처럼 말이다. 그 이야기는 나에게 필요한 조언이었지만 하루 만에 나의 습관을 고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시험장에서도 그런 비슷한 수업을 하고서 나도 아쉽고 평가자도 아쉬웠을 거다. 처절하게 최종 불합을 하고 멘털을 회복하기 어려웠다. 나는 누구보다 간절했고 열심을 다했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거든. 딱 하나만 빼고. 바로 여유. 여유로움이 없었다. 처음 보는 시험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나도 안다. 무경력의 졸업생이 얼마나 떨렸을까. 매 순간 긴장한 얼굴이 표정과 목소리에 그대로 나타났고. 말을 더듬고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다리에 잔뜩 힘을 주고 땀나는 손으로 치마를 그득 움켜쥐며 겨우 버티고 있었다. 준비가 덜 된 마음은 금세 탈로 난다.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 여유를 지니기엔 부족했던 수험생활이었다.
그렇다면 여유로움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가졌을 때다. 성취하기 위해 여유가 필요한데 가졌을 때 여유를 갖는다니? 노하지 마시길. 한국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는 거다. 여유 있게..! 어린아이들도 자기 손에 과자가 없을 땐 내 몫의 과자를 친구에게 나눠줄 여유가 없다. 그런데 내 두 손에 과자가 쥐어지면 남은 과자는 친구에게도 동생에게도 아낌없이 나눠줄 수 있다. 두 손에 쥘 정도의 과자면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는 아이처럼 나의 현재 처한 상황과 필요를 알고 그 필요가 위협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우리도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두 손에 과자를 쥐고 있던 아이가 한 개의 과자를 먹어버렸다고 하자. 자신의 한 손이 비었다. 다시 과자봉지에서 남은 과자를 쥐어주면 금세 웃어 보인다. 또다시 나머지 과자를 지나가던 아줌마에게도 줄 수 있다. 어쩌면 아이는 알고 있다. 내 손에 다시 과자가 비어지더라도 다시 채워진다는 것을 그리고 설령 과자봉지의 과자가 다 떨어져서 더 이상 과자를 손에 쥘 수 없더라도 이미 맛을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서운해 하진 않을 거다.
어쩌면 여유는 경험일 것이다. 여유롭지 못했던 시간들에서 느꼈던 경험. 그 아쉬움을 알아야 한다. 거기에서부터 출발해서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나아진 마음이 여유다. 여유는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터득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약간은 예상이 될 때 사람은 여유를 갖는다. 이미 가봤던 길이고,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고, 이미 먹어봤던 음식일 때 사람은 여유 있게 상대방을, 또 그 상황을 즐긴다. 그래서 우리는 모의시험이라는 걸 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실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으려고. 실수를 줄이려고.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 나를 보다 여유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경험이라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게도 해주고 삶의 지혜 같은 걸 알려주기도 하는데 거기다 여유를 준다니. 정말 좋은 녀석 같다.
내가 느낀 또 하나의 여유는 거리두기다. 마음을 온전히 집중해서 푹 빠져있는 게 아니라 한 발짝, 딱 한 발짝만큼만 떨어져 보는 거다. 완전히 객관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너무 주관적인 건 아니고 그 사이에 있는 거다. 너무 가까우면 시야가 좁고 안보이니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볼 수 있는 것 그게 여유다.
도깨비 드라마에서 촬영한 뒤 유명해진 한미서점이 있다. 공유랑 김고은이 들렀던 공간으로 유명하다. 특히 노란색 외벽이 참 예쁘다. 국내외 관광객들이 이 노란 배경을 뒤로하고 사진을 많이도 찍고 갔을 거다. 나도 책방골목 걷는걸 워낙 좋아했고 노란색 서점은 인상 깊었기에 한 번쯤 가보고 싶었다. 실제로 노란 벽 앞에 서니 정말 귀여워서 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었다. 벽 앞으로 가까이 바짝 붙어 서서 여러 번 셔터를 눌렀다. 아무래도 사진이 서점 전체를 담을 수가 없었다. 여기가 서점인지 그냥 노란 배경인지 분간이 안 갔다. 어떻게 찍어야 하지? 고민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환경미화원 아저씨께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끌던 수레마저 내려놓고 다가오셨다. “사진 찍어줄까요?”
다시 벽 앞에 섰다. 그러니 한 발 앞으로 나오라고 하셨다. 더 앞으로, 또 앞으로. 자꾸 앞으로 나오라고 하시니까 슬슬 걱정이 되었다. 이래서 사진이 어떻게 나오는 걸까. 카메라를 건네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면 대부분 카메라 버튼이 어딘지만 물었다. 찰칵, 찰칵. 손가락으로 동그란 버튼을 한 두 번 누를 뿐이다. 그런데 길 옆을 지나가던 환경미화원 아저씨는 한 발짝 앞으로 나오라고 요청했다. 그의 말대로 한 발짝 앞에 서니, 정말 놀랍게도 사진의 전체 건물과 내가 적절한 비율로 담겨있었다. 감사의 인사를 연거푸 드리고 사진을 건져다면 신나 했던 기억이 있다. 그분은 정말 여유 있는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거봐 내 말대로 했더니 사진이 잘 나오지?’하는 표정이었다.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이 포토스폿에서 어떤 지점이 사진을 잘 나오게 하는지 아시는 분이었다. 너무 배경 가까이에 붙으면 사진으로 전체를 담을 수 없다고 했다. 역시 여유를 아는 사람은 달랐다.
너무 간절해서 탈이 날 때가 있다. 유리잔에 음료수를 많이 마시겠다고 컵의 끝부분이 넘칠 때까지 꽉 차게 따라본 적 있는가? 그 상태로 컵을 들어 올렸다간 주르륵 쏟아져버릴 것이다. 아니 빨대를 넣을 자리 조차 없을 것이다. 차라리 쏟아져서 음료수를 일부를 버릴 바에 양을 조절해서 잔에 덜 담고 빨대까지 꽂아서 흘림 없이 음료수를 즐기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過猶不及(과유불급). 지나친 것은 미치치 못한 것과 같다는 말이다. 내가 그렇게 원할 땐 얻을 수 없었다. 나의 욕심이 과했고 마음을 비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한 것도 미련도 아니고 빨대 넣을 자리 정도만 살짝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너 아니어도 돼.'라는 새침데기 같은 얼굴을 하고 살짝 딴생각도 하면서 바람을 쐬어줄 때, 여유가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고 나면 정말 자연스럽게 원하던걸 얻게 됐던 것 같다. 혹시 지금까지 너무 간절히 바라던 일들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속상한 분이 있다면 여유가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는 중에 있다고 보면 되겠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 언젠가 가장 좋은 때에 분명 얻게 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