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둘째라서 그랬을까

절대로 첫째가 될 수 없는 숙명

by 하늘

나는 1남 1녀의 장녀로 둘째이다.

자유로운 것,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었던 건 내 성향인 줄만 알았다. 한 때 나다움이라는 키워드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각종 TV 프로그램, 영화, 책, 강연들에서 결론은 나다움이었고 사람들은 그에 열광했다. 지금도 그 인기는 여전하지만 나는 나다움에 대해 조금 잘못 생각했다. 내가 생각했던 나다움은 온전히 ‘내’가 주체였다. ‘나’밖에 없었다. 남에게 피해만 안 끼치면 약간은 이기적이어도 된다는 그런 것이었다. 내 스타일이고 내 취향이면 그래도 되는 거라고. 그래서 현실은 뒤로한 채 철 없이 자유, 여유 같은 이상을 꿈꾸며 주변에게 너도 하고 싶은 걸 해봐, 자유를 찾아,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고 함부로 떠들고 다녔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협한 시각에서 나는 하고 싶은 걸 다했고 내 주변에는 무책임했던 것이다. 아.. 부끄러운 지날 날들이여. 둘째라서 그랬다고 변명을 해본다.


누구나 나답게 살기를 원한다.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대로 다 누리며 살길 원한다. 하지만 아무리 권력과 재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대로만 삶을 살아가는 건 그 누구도 불가능하고,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의 생이다. 누군가 나를 부러워할 때면 ‘너도 하면 되지! 부러워 말아.’라는 말이 내 딴에는 희망이고 응원이었는데, 첫째에게는 원망이고 배부른 소리였을 거다.


내가 본 우리 오빠 즉, 첫째는 무조건적으로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내가 오히려 첫째가 아닌데 첫째의 몫을 한다고 아주 대단한 착각을 했었다. 그래도 난 영원한 둘째이고 첫째의 부담감은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우리 오빠도 내가 볼 땐 철이 없지만 결국 집안의 큰일이 있을 때 첫째는 첫째였다. 엄마가 오빠의 입맛을 맞춘 반찬을 하고 오빠의 컨디션에 따라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이 흘러가도 큰 불만은 없었지만 아쉽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도대체 먼저 태어났다는 첫째가 뭐길래. 하지만 첫째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존재들이었다. 일종의 첫째만의 스트레스에 대한 대가 같은 것이지.


나는 정말로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 당장은 나만 생각했다. 부모님의 나의 보호자였고 영원하지 않을 거란 건 알지만 아직까진 유효하니까 그 책임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원래 책임은 누군가가 져주는 게 아니라 오롯이 내 몫이라고 여겼다. 적어도 어른이 되면. 하지만 건강한 어른일 때, 내가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할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얘기다. 나도 언젠가 할머니가 되어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기대며 살아야 할 날이 올 테다. 오늘도 조금씩 늙어감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요즘은 어른이 되어간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건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늘어나는 것이었다. 일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고. 생각보다 다양한 이유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포함해서 타인을 책임져야 한다. 노후에 늙으신 부모님을 생각하고 자신의 배우자를 또 훗날 만나게 될 어린 자식들.. 이제 막 태어나고 지는 삶에 대해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한다. 결국 누군가를 책임지기 위해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물론 혼자 사는 프로그램처럼 점점 개별주의 독신의 삶이 도래하는 시기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라는 체계 안에 소속되어 있고 이것은 우리가 삶은 다하는 그 날까지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책임이라는 것은 분명 무겁다. 그래도 첫째들에게 그 무게를 조금 덜어주고 싶은 것은, 첫째만이 할 수 있는건 생각보다 별로 없다는 점이다. 옛날처럼 장남에게만 모든 기대를 거는 시대는 지나고 있으니. 첫째라는 타이틀이 아닌 자식으로서의 도리일 뿐이다.


엄마와 내내 수다 떨며 쇼핑하는 건 아무래도 여자끼리 더 잘 통한다. 애교 그런 거 나도 잘 못하지만 오빠보단 내가 나을 것 같아서 내가 담당하면 되고, 집에 분위기 메이커도 입담이 좋은 사람이 자처하면 된다. 서로 자신의 몫을 갖고 태어나지만 그 역할을 분담하는 건 결국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 첫째는 첫째로서의 몫, 둘째는 둘째로서의 몫이라는 게 없진 않겠지만 같은 자식으로 함께 분담하며 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젠 누군가에게 나의 생각을 얘기할 때 조심스럽다. 각자의 처한 상황이 너무 달라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우리는 아무리 입장 바꿔 생각해보더라도 결국 자신의 입장에서 결론을 짓기 마련이다. 이 또한 당연한 거라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첫째의 부담을 조금은 덜어주고 싶다. 첫째가 좀 망가져도 둘째가 잘 서포트할 수도 있으니까. 이건 불변의 진리인거 같은데, 어느 집이든 형제가 있는 집이라면 첫째든 둘째든 누구 한 명은 집안의 기대주이고 한 명은 자유로운 영혼인 것 같다. 내가 편하다면 누군가는 부담을 안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무조건 첫째라고 하는 부담은 내려놓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