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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중입니다.

한때 완벽주의자가 깨달은 것.

by 하늘

완벽주의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약간의 실패다. 100%를 채워야 완벽한데, 딱 0.001%가 부족해도 불안한 거다. 100에 도달하지 못했으니까. 여전히 99.999%라는 그 불안함. 나는 완벽하지 않으면서 완벽을 추구했다. 사실 완벽하지 않아서 완벽을 추구했다. 내가 불완전하고 부족함 투성이라 결과물을 통해 그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늘 계획했다. 꼼꼼하다는 칭찬을 들으며 어디서나 준비된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계획하고 실행했을 때 성취감도 느꼈다. 하지만 성취하지 못한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정말 많았다. 고3 땐 EBS 공부의 왕도 같은 걸 보고 공부법 따라 한다고 국어 8칸 노트를 사서 하루를 30분 단위로 나누며 공부계획표를 세웠던 기억이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멋있다며 나를 따라 했던 친구도 있었지. 그래 봤자 공부는 중간이었다. 사실 내 재능은 공부보다 공부 외의 것에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쭉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음 초등학교까진 잘했던 것 같다.(웃음) 내 성적표를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나 듣던 무성한 소문. 이미지가 범생이어서 그랬을 거다. 늘 나에게 엄격했기 때문에 생겨버린 이미지. 학년 말 롤링페이퍼에는 '너는 공부를 참 잘한다, 공부 열심히 하는 것 같다, 뭘 해도 성공할 것 같다'는 말이 매년 빠지지 않았다. 굳이 타인의 말에 반박하고 싶진 않아서 그냥 나를 그 말에 맞춰갔다. 정말 남들 기대만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현실은 아닌데 자꾸만 나를 속여왔다. 결국 수능시험에서 들통이 났다. 공부를 잘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을.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공부 잘한다는 엉뚱한 소리를 한다. 공부는 솔직히 나랑 안 맞다. 핑계를 좀 대자면 우리 집안에서 공부 쪽으로 성공한 사람은 별로 없다.


아무리 애쓰고 애써도 늘 부족했기 때문에 나에게 더욱 엄격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완벽하려고 해도 실수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이것을 몰랐을 땐 생각보다 덜 행복했다. 의식적으로 긍정적이려고 했지만 늘 내 안에 불만이 쌓였다. 어느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깨달았다. 나는 늘 열심히 살아왔는데 뭐하나 제대로 성취한 게 없었다. 너무 허무했고 슬펐다. 착하게만 살면 안 되는 세상이구나 세상을 탓했다. 그런데 세상은 내 맘대로 할 수도 없고, 그렇게 되지도 않지만 나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내가 한 것은 이전까지의 나의 습관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먼저 계획을 버렸다. 계획대로 되지도 않는 인생. 이걸 깨닫기까지 스물 몇 해가 걸렸다. 그래도 서른 전에 나를 놓아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흘러가는 삶에 나를 맡긴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지만 그냥 눈 한 번 꼭 감고 믿어주자. 언젠가 생각지 못한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겠지. 가끔은 최악일 수도 있지만 웃어 넘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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