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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에 대한 갈망

선택이라는 길목에서

by 하늘

2년 전, 같이 임용 스터디를 했던 대학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최종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꼭 만나고 싶다는 연락. 까마득히 잊었단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그간 희로애락 했던 임용으로부터 생각을 단단히 접어두어서인지 깜빡 잊고 지냈다. 맞다, 후배도 계속해서 준비하고 있었지. 그렇게 만날 날을 잡고는 갑자기 마음 한편이 저릿한 것을 느꼈다. 계속하니까 결국 되는구나. 나에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그렇게 단념했건만.


최종에서 떨어졌다. 2차 시험날 나를 향해 인자한 미소로 웃어주던 장학사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너무도 큰 배신감과 나 자신에 대한 괴로움에 미칠 것만 같았다. 나도 남들과 똑같이 노력하고 이를 악물고 했는데 왜 나는 합격자 명단에 없는 걸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누구 탓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현실 앞에 눈을 감아버렸다. 아주 기억 저편으로 이 일들을 깊숙이 밀어 넣고 정신없이 일을 구했다. 그래서 정말 괜찮아졌고 다 잊은 줄 알았다. 비록 계약직이었지만 그토록 바라던 병설에서 일을 시작했다. 교문을 지나 출퇴근할 때면 마음이 설레고 너무 좋았다. 매일을 감사하며 기쁘게 일했다. 정말 가까이서 내가 몇 년을 매진했던 임용에 합격한 선생님들과 함께 일하면서 때론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내 안에 온전한 기쁨이 없음을 느꼈다. 대학 때도 나름 8학기 중 5학기는 장학금을 받았고 교수님께서도 인정해주시는 모범생이었다. 나는 유아교육이 싫었지만 내 적성에는 딱인 직업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학과도 잘 맞아서 휴학 없이 그냥 달려왔을 정도로. 어느 순간 기쁘지 않은 나를 발견했다. 그때만 해도 주변에 기쁘지 않다는 이야길 하면 네가 합격하면 또 마음이 다를 거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 줄만 알았다.


코로나로 시간이 떴고 나는 책을 썼다. 그 몇 개월이 너무 꿈같이 행복했다. 열정으로 반짝이는 내 눈을 보시고 담임선생님이 말했다. 교사로서 의욕이 없어 보인다고. 그땐 난생처음 듣는 말이어서 큰 충격이었다. 괜히 서운하고 속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 말이 정확히 맞았다. 난 교사의 일에 생각보다 의욕이 없었다. 좀 더 면밀하게 말하자면 의지가 없었다. 그 당시 책을 내서 더 비교됐을지 모르지만 사실이었다. 아이들 자체가 좋은 것과 별개로 교사로 아이들을 대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이 싫었다. 그저 창작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하고 글을 쓰는 일이 더 좋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문서 작업하는 게 내 적성에 더 맞았다. 철딱서니 없는 생각일 수 있지만 나는 앞으로 내 삶을 쭉 늘여서 생각해볼 때 행복하지 않은 교사가 될 것 같았다. 교사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을까? 물론 복지나 환경은 만족할 만큼 좋다. 그러나 기쁨이 없다. 마음이 텅 빈 느낌. 그저 일로서 아이들을 바라보게 되고 모두의 눈치를 보며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사실 이 모든 건 핑계다. 나는 교사보다 책이라는 분야에 관심이 더 많았기에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이 아닌 곳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최근 인기몰이 중인 디즈니•픽사의 합작 <소울>을 보았다. 주인공의 불꽃은 재즈였다.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면서도 현실로 돌아가고 싶게 한 그것은 그날 밤의 재즈 공연이었다. 멋진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그가 느낀 것은 허무함이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꿈을 이루고 난 뒤 사실 특별함 같은 건 없다. 짜릿한 성취감은 그때뿐. 도대체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나 허탈하기까지 하다. 반대로 세상에 태어나는 건 죽기보다 싫었던 22호는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햇살, 긴장을 줄여준 막대사탕,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불꽃을 느꼈다. 흘러가면서도 주어진 삶을 즐기는 것만이 행복을 오래도록 느끼는 것일 테다.


사실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이 그토록 바라던 꿈이었더라도 성취한 이후에는 별것 아닌 것이 되어버릴 수 있다. 다만 그것을 하고 있는 나의 마음가짐, 태도 같은 것이 훨씬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하루, 오늘 하루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결국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에이브라함 링컨의 명언이다.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왼쪽을 향해 있고 하나는 오른쪽을 향해 갈라져 있다. 두 갈래 길 앞에서 어떤 길을 향해 발을 뻗을 것인가.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은 알 수 없다. 자연스레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갈망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마음을 먹었다면 후회 없이 가던 길을 가보자. 혹시라도 후회가 든다면 늦지 않았으니 다시 돌아가도 괜찮고. 그러나 타인에 의한 것이 아닌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가자. 그것이 후회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어떤 이는 너의 용기와 도전이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무척 불안하다. 28살의 절반을 지나온 지금,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나 자신이 못나 보이기도 하다. 난 한 순간도 꿈을 포기해본 적이 없는데. 지나치게 이상이 높은 걸까. 그런 것도 아닌데. 도대체 세상은 왜 나를 몰라봐주는 건지. 이렇게 생각하면 끝도 없이 속이 상한다. 수없이 많은 도전과 실패 그 모든 것이 내게 자산이 된다지만 열정만 앞세우기엔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다. 그래도 어찌하나. 나는 이런 사람인 것을. 불안해도 가던 길을 묵묵히 그리고 꾸준히 가면 된다. 언젠가 나의 열심이 빛을 발하는 날이 오겠지. 나는 오늘도 이렇게 나의 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며 행복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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