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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Jul 05. 2016

#18 타이베이, 특별하지 않음에서 오는 행복

나는 이 도시를 '여행자를 위한 완벽한 조연'이라 부른다. 

여행은 그들의 말처럼 특별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인천-타이베이 어딘가

두어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그나마 덥지 않다는 겨울 무엇보다 티켓이 남은 날짜. 가고 싶은 마음보다 다분히 현실적인 이유에 의해 '준비 되어버린' 여행이었습니다. 몹시도 사랑하는 땅 프라하에 다녀온 후 열흘째 되던 날, 타이베이 송산 공항으로 향하는 중화항공 비행기 안에서 그제야 수첩에 큼지막하게 Taipei라고 그립니다. -그때까지도 무척 낯설었으니 그렸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연속된 여행과 7박 8일의 넉넉한 시간을 핑계 삼았지만 사실 이 도시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 않았던 것이 솔직한 대답입니다.


익히 들어온 후텁지근한 날씨, 기름진 중화권 음식, 다르지만 어딘가 익숙한 아시아 특유의 풍경들은 그동안 제게 매력적이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 7박 8일의 여행 기간 내내 해 한번 비추지 않는 날씨가 계속됐고 오락가락하는 비에 아침이면 으레 우산을 쓸지 비를 맞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마침내는 기상 예보를 보며 비만 오지 않기를 바랄 정도로 달관한 여행. 그 때문인지 이 도시 그리고 여행에서 특별했던 것을 누군가가 묻는다면 한참을 생각하거나 대강 제멋대로인 답을 던지고 나서 이유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대만, 2016

돌아온 후 만난 그는 제게 일주일간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질문을 듣는 순간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작은 마을과 신이 살짝 꼬집어 둔 듯한 해변의 바위, 전세계에 이름을 알린 식당 등 많은 것들을 떠올렸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습니다. 제법 길게 느껴진 몇 초의 침묵 후에 제가 한 대답은 ‘많이 채우고 왔어’였습니다. 물론 그 후 어리둥절한 그에게 한참을 설명해야 했지만 나쁘지 않은 답이었다 생각합니다. 이번 여행 만큼은 도시보다 제게 더 점수를 주고 싶었거든요. 정확히 말하면 낯선 도시에서 찾은 너무나도 익숙한 것들에.



여행이 모든것을 특별하게 한다는 말을 믿은 적이 있습니다.

마치 수퍼스타가 될 것처럼

밤거리 위에 뜬 글자 하나하나며 지하철 카드를 댈 때 나는 청명한 소리, 왕복 8차선을 가득 채운 오토바이 행렬까지 낯선 도시의 이목구비는 한동안 마냥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하루의 경계까지 가득 채우고 나서야 숙소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나흘쯤 흐르니 통하지 않는 언어마저 익숙해져 특별할 것 없는 날들이 찾아왔습니다. 익숙한 언어로 가득했던 지우펀이나 예류, 꼭 가봐야 한다던 핑시선 기차는 한나절을 꼬박 기다려도 그들의 사진과 이야기만큼 아름다운 장면을 발견할 수 없었고 가장 큰 행사중 하나라는 대만 등 축제에서도 압도적인 규모보다는 청계천 연등 축제와의 공통점을 찾으며 심드렁했습니다. 종일 내린 비에 젖은 몸을 원망하던 어느 저녁 식사는 홍대앞 단골 라멘집에서와 너무 닮아 오히려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여행이 즐겁지 않았냐면 아니오, 아주 즐거웠습니다.


매순간 놀랍지 않으니 여행이 피곤하지 않았고 평범함 혹은 묘한 익숙함 속에서 '이 도시'보다는 '내 여행'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것은 곱씹을수록 잠시 눈을 즐겁게 하는 관광지의 풍경보다 몇배는 더 맛깔나게 느껴져 점점 더 닮은 것들을 찾게 만들었죠. 좋아하는 사진 한 장 건지지 못한 궂은 날씨를 더 이상 원망하지 않게 된 것과 우연히 들어선 이름모를 골목길을 기억하고 싶어진 것, 혼자 차지한 테이블에서 남은 시간 그리고 끼니 수를 아쉬워하게 된 것도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국보다 외국에 있는 시간이 많은 어느 여행가의 말과 여행하지 않는 삶이 마치 낭비인 양 떠드는 책, 이 땅에서 청춘은 번데기에 갇힌 유충밖에 될 수 없다는 TV 프로그램들을 보며 저 역시 막연히 여행이 무엇이든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실제로 그 후 몇몇 여행에서 저는 떠나지 않았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보석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타이베이에서 만난 순간들은 그 생각을 크게 바꿔 놓았고 이제는 최소한 그 맹목적인 믿음에서만큼은 조금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들의 특별한 여행 속 저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어요.

누군가처럼 저도 타이베이 여행을 앞두고 그 이름들을 들었고 사진으로 미리 훑어 보았습니다. 첫번째 밤에 교통편이며 경비 등을 정리하며 늘 그렇듯 그들의 추천보다 긴 시간 머물러 보기로 했습니다. 지우펀의 하루, 예류의 아침 그리고 밤. 제목이야 그럴듯 했죠. 여차하면 지우펀 꼭대기 민박집에서 하루 묵고 오겠다는 야심찬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지우펀, 대만

지우펀을 위해 비워둔 하루 어쩌면 이틀은 그치지 않는 비가 왔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되었다던 그 유명한 홍등가와 가옥은 가까이 다가가니 영락없는 상점과 카페의 모습이었고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등보다 많은 우산을 헤치고, 알싸한 취두부 향을 피해 골목을 전전하며 해가 지길 기다렸습니다. 그것이 이 여행을 그나마 구제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면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저처럼 해가 지길 기다린 사람이 무척 많았고 그들은 여전히 우산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 날의 행운이라면 돌아오는 버스에 앉을 자리가 있었다는 것과 백화점 지하식당의 철판구이가 무척 맛있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예류 지질공원, 대만

많은 분들이 손꼽아 이야기 해 준 예류 지질공원에서는 왕복 버스보다 짧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얇은 파랑 우비를 찢을만큼 거센 비바람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오묘한 형태의 바위가 사실 제게 줄 수 있는 것이 없었거든요. 공주라는 이름이 붙은 바위 앞에 줄 선 삼사십명 사이에 낄 자신도 없었습니다. ‘왔다, 봤다, 됐지?’ 이 세 마디는 아무리 천천히 말해도 곧 끝이 나기 마련입니다.


덩그러니 빈 시간은 타이베이 101에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그리 즐겁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날 저녁 처음으로 대만 맥주를 마시며 날씨와 인파를 원망했습니다. 기대한 여행이 내 뜻대로 되지 않자 어린아이처럼 땡깡을 부렸나 봅니다. 왼손에 쥔 스마트폰 화면은 비와 구름으로 채워져 있었고 남은 여행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저녁식사였습니다. 돌아오는 길, 비까지 맞고 가는 제 모습이 무척 쓸쓸해 보여 상점의 유리벽도 보지 않았습니다.



핑시선 기차 안은 더없이 쓸쓸 했지만,

그것이 전에 없이 많은 것들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감성’이라는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제게 핑시선 기차 열차는 보기좋게 낡은 기차의 덜컹거림 이상의 설렘은 주지 못했습니다. 기차가 설 때마다 펼쳐지는 서로다른 풍경들 덕분에 그날 만큼은 유로스타가 부럽지 않았지만 그래서 날씨에 대한 원망이 더욱 컸습니다.


내노라할 애묘인은 못 되는 제가 고양이 마을 허우통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찍은 사진들을 지인들에게 보여주거나 고양이가 그려진 물건을 선물로 사는 것, 유독 이곳에서만큼은 찬밥인 강아지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일 정도였습니다. 한국에 더 많이 알려진 풍등 마을 스펀에서는 제법 오랜 시간을 머물렀습니다. 철길따라 길게 늘어선 가게 앞에서 그들이 손수 적은 것들의 의미을 유추해 보는 것도 즐거웠고 날아오르는 등을 보며 몇몇은 이미 이뤄진 것 같은 표정 역시 열차 서너대가 지나도록 저를 붙잡아 둘 정도로 매력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해진 구도와 횟수로 사진을 찍어 내고 빈 손이 된 손님을 되도록 빨리 들여 보내려는 이들의 고충이 크게 보였습니다. 가족, 친구, 연인 그리고 나에 대한 소망으로 네 면을 채워 풍등을 날려 보려던 어떤 리스트도 뒤돌아 슥슥 지웠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 반짝였던 순간 덕분에 저는 이 날 핑시선 기차 여행을 무척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핑시선의 종착역 징통에서 돌아오는 기차 안, 유난히 덜컹이는 텅 빈 객차에서 실패에 가까운 반나절을 곱씹던 곱씹던 제게 창 밖 마을이랄 것도 없는 이름없는 풍경이 한참 펼쳐지는데 별 것 아니면서도 그것이 꽤나 근사해 보였습니다. 그것이 제게 막연하지만 분명히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별 것 아닌 것의 위대함 같은 것이었달까요? 아아, 아무래도 글자로 설명 하라면 차라리 착각이었다 해버리고 말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렇게 다음 역까지 가만히 창 밖 풍경을 바라보는 열차 안에서 저는 쭉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침보다 날씨는 더 어둡고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는데 말이죠.



용산사, 그 뜨거운 울림을 지금도 종종 떠올립니다.

용산사, 타이베이

핑시선 기차 안에서 아스라이 눈에 띈 것을 갈구하던 걸음이 해질녘쯤 작은 사찰 용산사에 닿았습니다. 십분이면 돌아볼 수 있는 작은 공간에서 경험한 것들은 지나보면 거짓말처럼 절묘한 만남이었습니다.


현대 타이베이의 빌딩 숲 사이에 자리잡은 작은 사찰은 비현실처럼 붉은 빛으로 가득 채워졌고양 손에 세개씩 쥐고 모인 향에 이내 시야가 자욱해졌습니다. 낯선 공간 안에 일렁이는 기운은 이전에 느낀 적 없는 것이라 낯설었습니다. 그것이 들킬까 두려워 그들을 흉내내 잠시 기도를 하고 향을 꽂았습니다. 다행히 저 역시 문을 들어서며 향을 세 개 받았거든요.



향을 두고 돌아선 제 앞의 풍경은 이전과 사뭇 달랐고 연기가 걷힌듯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습니다. 제단 앞에서 꿇은 무릎, 모은 손으로 예를 표하는 사람들은 제례를 위해 특별한 의복을 갖추지 않았고 향 앞에 둘러 모인 사람들은 소란스레 원하는 것을 부르짖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 도시에서 가장 특별한 공간에서 그들이 보인 것은 유별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제 하루를 붙든 고민에 좋은 답이 되었습니다. 생활 속에 녹아든 신앙, 삼백여년동안 이어진 관성을 보며 평범한 것도 이토록 뜨거울 수 있구나 생각했거든요. 대만의 자금성이니, 화려함의 극치라는 수식어는 적어도 저에게만큼은 이 곳에 모인 사람들의 뜨거운 입김만큼 높은 가치가 되지 못했습니다. 해가 지고 깊은 밤이 될 때까지 그들을 따라 다니며 또 옆에 서서 그 울림을 한참동안 즐겼습니다.


용산사, 타이베이

아홉시가 넘은 시각, 용산사를 나서며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처음으로 흉내 대신 저만의 몸짓으로, 어느 때보다 정중하게.



몇가지는 분명 거짓말처럼 달라졌습니다.

시먼, 타이베이

그 후부터 여행이 바뀌었습니다. 인파를 피해 현장 학습처럼 관광지를 다니던 제가 아침 열시부터 딘 타이 펑의 오픈 시간을 기다리게 됐고 늦은 밤 귀가길엔 편의점 점원과 케이 팝 가수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더 이상 일기 예보를 확인하지 않게 된 것은 물론, 구글맵과 카카오톡 그리고 아이팟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저녁이면 늘 밀린 숙제하듯 다음날 일정을 채우던 수첩엔 오늘의 일, 지금의 감정들이 날 것 그대로 담기기 시작했습니다.

용산사에 다녀온 다음날, 제게 텅 빈 일정표를 선물로 건넸습니다. 실선뿐인 종이에 마음에 드는 이름의 지하철 역, 사람 없는 골목길의 풍경을 그렸고 인심 좋아 보이는 식당 아저씨의 형편없는 음식 솜씨에 대한 험담을 적었습니다. 제법 커 보이는 서점에선 마음에 드는 모양의 수첩을 하나 더 샀고 해가 저문 후엔 인파 없는 늦은 중정 기념당 앞에서 그들이 잃지 않고자 했던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중정기념당, 타이베이

특별히 할 것 없는 하루는 무척 넉넉했습니다. 종일 무엇을 했냐는 그녀와의 질문에 그저 이것저것이라 답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전화를 받는 왼손에는 빵을 담은 검정 비닐봉지가, 오른쪽 손과 어깨에는 우산과 카메라가 매달려 있었지만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별 볼 일 없던 여행의 말미에 대만 등 축제도 있었습니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으레 타오위안 공원으로 모이는 대만 사람들, 그 반복되는 일상에 저도 한 번 끼어 보기로 한 것이죠. 낯선 무인 티켓 발급기에선 실수로 입석표를 끊었고, 나오는 길엔 하루 식비와 맞먹는 거스름돈을 두고 왔습니다. 입석칸 인파에 끼어 겨우 도착한 축제는 역시나 비와 인파로 상상처럼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 돌아오는 길엔 엄청난 대기줄이 역사 바깥까지 이어졌죠.


하지만 11번 입석칸에 겨우 올라타 타오위안 역까지 남은 시간을 세던 늦은 오후부터 운 좋게 빈 자리에 앉아 타이베이 역으로 돌아오는 시간까지 쭉 즐거웠습니다. 아마 어느 대만인의 하루도 오늘같지 않았겠냐며, 이 장면들에 섞여 있다는 것이 제게 은은한 흥분을 선사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마지막 아침, 거짓말처럼 해가 떴습니다.

예상은 고사하고 기대한 적도 없는 아침이었습니다. 어느새 일기 예보조차 확인하지 않게된 여행 마지막 날, 공용 화장실에 가던 복도를 반짝이게 한 낯선 햇살이 걸음을 멈추고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습니다. 머리는 감는 둥 마는 둥, 귀 뒤에 묻은 비누도 제대로 닦아내지 못하고 옷을 챙겨 입으면서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습니다.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단수이 워런마터우까지 그 노래가 이어졌으니 족히 사오십 곡쯤 되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었던 것 같습니다. 폭우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여행 둘째날 오후까지 그런대로 괜찮은 2번 트랙이 됐습니다.

그림같은 하늘에 쏟아지는 색에 순간 아득해져 버스 앞에 한참을 서 있어야 했습니다. 끝까지 걸을 엄두가 나지 않던 큰 항구엔 이 소중한 오후를 만끽하기 위해 모인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하나같이 신이 나 입이 씰룩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 당신도 이 날을 아주 오래 기다렸죠?


- 그럼요, 결국 못보고 돌아가야 할 줄 알았어요.


제법 긴 오후, 따가운 햇살에 등 떠밀려, 인파에 쓸려 사랑의 다리를 건넜고 방파제 길을 따라 빨간 등대까지 걸었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목 뒤로 스칠 때쯤 사람들은 약속한 듯 기다란 나무복도 위에 모여 앉았습니다. 아무도 이야기 해주지 않았지만 저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그들 사이에서 노부부의 사진촬영 부탁을 받았고 앙증맞은 아이의 손에 어깨를 맞고 웃기도 했습니다. 지난 일주일만큼이나 긴 기다림 끝에 만난 노을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을 일어설 수 없게 했습니다. 노부부가 고맙다며 주고 간 맥주 한 캔 덕분인지 뒷통수까지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7박 8일, 별 볼 일 없는 날이 반복되는 동안 바란 것은 전에 없던 특별한 순간이 아닌 별 것 아닌 이 하루였습니다. 제게 단 한 번 허락된 일몰이 그토록 감동적이었던 것은 그 곳이 단수이 워런마터우였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여행은 그렇게, 뜨거운 커튼콜을 받으며 마무리 됐습니다.


워런마터우, 단수이


아, 타이베이
거기 내가 잘 아는데 말야


먼저 다녀온 이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오래 갈 필요 없는데'라고 했고, 다녀온 후 저는 그들에게 '정말 그렇네'라고 답했습니다. 크지 않은 섬나라 대만 그리고 서울보다 작은 도시 타이베이. 너무 많은 정보들이 이미 알려진 이 곳에서 그들이 알려준 주요 관광지를 속성으로 훑는 데에는 7박 8일이 지루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여행기간동안 그리 바쁘게 다니지 않았음에도 제가 원하던 타이베이와 인근의 유명 관광지를 대부분 둘러 보았을 정도니까요.


아쉽게도 그것들 역시 그리 놀랍지 않았습니다. 해 한번 비치지 않는 날씨가 계속됐고 여러 명소들은 작가들의 멋진 사진이나 인터넷에서 본 영상보다 시시했거든요. 낯설지 않은 음식과 익숙한 생김새의 사람들 역시 그 동안 제가 믿어온 여행의 힘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니 오히려 그것이 고마웠던 여행입니다. 해 한번 보기 힘든 궂은 날씨와 인파로 가득차 별볼 것 없던 관광지, 말은 통하지 않지만 내가 있던 곳과 다름없이 환하게 웃으며 친절을 베풀어준 사람들이 여행은 사실 그리 다를 것도, 특별할 것도 없다는 것을 친절하게 알려줬거든요. 덕분에 일주일간 이 도시를 조연으로 저는 오랜만에 여행의 주인공이 된 기분을 만끽했습니다. 그 무대는 지우펀의 유명한 찻집 앞이 아닌 그 곳까지 걸어가는 시장 골목이었고 예류 지질공원으로 향하는 버스 안, 비를 피해 서 있던 어느 편의점 문 앞과 저녁 식사 후 어머니와 통화하며 들어선 이름모를 공원이었습니다. 중샤오 푸싱 뒷골목 창문 하나 없는 호텔방으로 향하는 무거운 걸음마저 주인공만은 온전히 저였기에 잊지 않고 기록 해두려 합니다.


타이베이의 밤

특유의 소박함과 그것으로부터 오는 새삼스런 행복. 다른 도시, 이전의 여행에 없었던 타이베이의 매력은 저를 매료시켰고 저는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완벽한 조연’이라 여행 수첩을 맺으며 화답했습니다. 가파른 각도로 오르는 비행기 창 밖, 어느새 친근해진 타이베이 101 타워를 보며 약속했습니다. 언젠가 내가 너무 많은 특별함에 지치는 날 다시 이 새삼스런 것들을 주워 담으러 오겠다고. 물론 그 때는 제 상대역이 되어줄 히로인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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