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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Aug 03. 2015

1장. 미친여행 Prologue, 왜 모스크바였을까?

서른셋, 한겨울 미친 여행을 시작하다

이 미친 여행으로의 이끌림

모스크바, 러시아

여행은 이미 몇 달이 지나고, 거리 풍경과 시끄러운 지하철 소음도 이제 어렴풋하게, 동화속 풍경같던 건물들과 낯선 얼굴들도 이제는 꿈처럼 아득할 정도로, 그렇게 여행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왜 모스크바였을까?’라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왜 일년 중 가장 춥다는 1월 첫 주에 굳이 그 곳에 ‘극한 체험’을 하러 간 것인지. 그것도 러시아라면 푸틴밖에 모르던 제가 말이에요.

모스크바 붉은광장

겨울이면 한국도 충분히, 아니 과분하게 춥습니다. 매일 아침 영하로 떨어진 기온에 가방보다 무거운 옷가지를 몇 겹씩 겹쳐입기도 하고, 가끔은 추운 날씨에 외출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다행히 저는 추위에 강한 편이긴 합니다. 혹한기 훈련 때도 내복 없이 지냈었고, 뚱뚱보 패딩 점퍼 하나 없이도 겨울을 잘 나니까요. 그렇다고 이 곳의 겨울이 시시해서, ‘진짜 겨울’을 경험하러 그 곳에 향한 건 아닙니다.


러시아와 모스크바의 문화와 유명한 예술가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건 더더욱 아닙니다. 원래 이번 여행의 최초 목적지는 체코 프라하였으니까요.


아무리 이유를 물어본들 그저‘미쳐 있었다’고 할 수 밖에요.


그렇게 저는 뭔가에 홀려 2015년의 시작과 함께 러시아, 모스크바로 10박 12일의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 여행기를 마무리하게 될 때 쯤이면 알게 될까요?

왜‘모스크바’여야 했는지.




'겨울 나라'로 떠날 준비를 하면서


여행 준비는 생각보다 까다로웠지만, 오히려 수월하기도 했습니다. 우선 러시아, 모스크바 여행에 대해 주변의 조언을 전혀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미지의 땅’이었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블로거들의 여행기를 엿보거나 서점에서 관련 책을 구입해서 보는 것 뿐. 그나마도 도쿄, 방콕, 파리, 런던 같은 대표적인 여행지와 달리 모스크바는 그 흔한 가이드북 하나 찾기 힘들었습니다. 갈수록 '이 여행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점점 짙어졌지만, 막상 티켓을 구입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지더군요. ‘이제 뭐 어쩌겠어, 가야지’  

대부분 ‘장소’와 ‘시간’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여행 계획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디를 꼭 가야하고, 무엇을 꼭 봐야하고,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리스트를 만들어 한정된 날짜에 효율적인 동선으로 배치를 하는 것이 혹자는 여행 준비의 백미이자,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하죠. 물론 저도 모스크바의 관광지들의 정보와 위치를 한동안 알아보았습니다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손을 놓게 되더군요. 너무 많은 준비를 하는 것은 미친 여행에 대한 실례라는 제 안의 목소리였던건지, 꼭 보고 싶었던 성 바실리 성당과 붉은 광장, 아르바트 거리를 제외하고는 ‘백지’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머리는 ‘발 닿는대로 느끼는 것이 여행이지’라며 저를 설득하지만, 막막함에 그냥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놓아버린 것이 아니었나 싶어요.


오히려 언어 문제가 갑갑한 제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줬습니다. 제가 러시아어에 능해서였나고요? 물론 아닙니다, 애초에 단기간에 익힐 수 없는 난어인데다 영어도 잘 통하지 않는 도시라는 이야기 덕분에 일찌감치 손짓발짓 하며 땀 흘리게 될 미래를 받아들이게 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이렇게 미친 여행은 아무런 준비 없이 '시베리안 왕따’ 스토리를 향해 치닫습니다.



그럼에도 단 하나 수 없이 외우고 또 외운 것

공항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아에로 익스프레스 열차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반 포기 상태로 출국일만 기다리던 제 여행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씩 읽고 외우며, 스마트폰에도 저장해 간 단 하나는, 도착 후 공항에서 시내 혹은 숙소까지 가는 교통편입니다. 모스크바 셰러메티예보 공항에서 아에로 익스프레스를 타고 시내에 도착해 다시 전철을 타고 숙소에 도착하는 그림 말이죠. 여행지에 도착해서 가장 첫 스케쥴인 ‘이동’이 꼬이면 여행 기간 내내 당황하고 위축되더라구요. -많은 경험에서 얻은 교훈입니다- 거기에 공항, 지하철 등에서 필요한 간단한 회화 정도를 메모해 놓았습니다. 그 덕분인지 여행 첫 날을 별 탈 없이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었고, 이는 열이틀 여행 기간 내내 제 근거 없는 자신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어느 곳을 떠나게 되던지, 저만의 이 ‘철칙’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 환율 

생활비 장전완료!

아시다시피 러시아는 독자 화폐인 루플(RUB)화를 사용합니다. 처음 여행을 계획했을 때 당연히 ‘유로’화를 챙기려던 저를 당황시킨 이 루블화는, 최근 정치적인 이슈와 러시아 경기 불황으로 환율이 그야말로 바닥 가까이 떨어져 있습니다. 일 년 만에 거의 절반이 된 이 말도 안 되는 환율 덕분에 제 여행은 풍족했지만, 현지에서 겪는 경기 불황은 외국인인 저도 체감할 수 있을만한 정도였습니다. 출국 직전 제가 환전할 때의 환율이 1루블당 약 20원에 불과했으니까요. -지금 글을 쓰는 8월 현재는 18원으로 더 떨어졌네요-


저는 10박 12일 생활비로 4만루블(약 80만원)을 환전했고, 저렴한 물가(?) 덕분에 이 중 1만 루블은 다시 가져왔습니다. 돌아와서 더 떨어진 환율을 보니, 차라리 쇼핑으로 다 소진할걸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쨌든 혹독한 날씨를 제외하면 참 좋은 시기였다고 추억합니다. -빅맥이 1600원이라니!-



정상이었던 것은 숙소 하나 뿐


저렴한 환율과 의외의 ‘비수기’ 1월 첫주라는 특수까지 겹쳐 상당히 좋은 숙소를 예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머문 곳은 아르바트 거리와 맞닿은 스몰렌스카야(Cmo)의 골든링 호텔, 그리고 키예브스카야 인근 현지 아파트 렌트 이렇게 두 곳에서 머물렀는데요. 두 곳 모두 모스크바 여행의 행복에 큰 기여를 했을 만큼 만족스러웠지만, 지나고보니 아무래도 천편일률적인 호텔보다는 모스크바인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아파트가 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닷새간 묵었던 아파트는 다음에 다시 모스크바를 찾게 된다면 꼭 다시 예약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이번 여행의 준비는 ‘숙소까지의 교통편’과 ‘숙소 예약’, ‘루블’. 단 세 장으로 끝이 나버렸습니다. 출국 전 날 ‘하루만 더 있었으면’이라고 뒤늦은 후회를 했지만, 하루 더 있었다고 해도 빈 틈 없이 여행 스케쥴을 세우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렇게, 서른 셋의 미친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모스크바로 향하는 하늘 어딘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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