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세유(Marseille), 여행자의 습관 혹은 버릇
“오빠-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하나의 단어와 두 문장으로 이뤄진 지극히 평범한 인사말에 대답 대신 풋 하고 웃음이 터진 건 그녀만의 음계 탓이다. 파(F)와 솔(G) 사이, 그러니까 파 샵(F#)쯤에서 시작해 마지막 음절 ‘요?’에 이르러서는 시(B) 언저리까지 음이 높아지는 것이 어찌나 듣기 경쾌한지. 게다가 녹음해 둔 것을 튼 것처럼 언제나 한결같아서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가 않다.
“우리 얼굴 본 게 일 년 넘었죠 아마?”
“아마 그럴 거예요.”
용건 없이는 누구에게든 좀처럼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내게 그녀가 안부 메시지를 보냈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 점심 식사를 함께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가능한 한 빨리. 메시지보다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 좋아지고 있는 걸 보니 구닥다리가 되어가고 있나 보다. 다음날 점심시간, 서울 스퀘어의 지하 식당가에서 그녀를 만났다.
“곧 또 떠나겠네요?”
“네, 다음 달에. 이탈리아에 가요.”
“아- 이탈리아 정말 좋았는데.”
티타임을 기다리지 못하고 밥을 오물대며 떠드는 이야기는 역시나 여행에 관한 것이다. 시끄러운 점심시간의 푸드 코트에서는 빨리 허기를 채우고 일어나야 하는 걸 알면서도 반가운 도시들의 이름에 자꾸만 입술이 실룩거렸다. 이래서 처음 인연을 맺은 계기가 중요하다.
이 년 전 알게 된 그녀는 내가 아는 여행자 중 가장 이야깃거리가 많은 사람이다.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이름, 한 해를 허투루 넘길 수 없는 20대의 방황과 도전 중 일부가 내가 아는 전부지만 그것만으로도 샘이 날 정도로 풍성하달까.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도시를 배경으로 풀어내는 그녀만의 이야기들이다. 그녀는 여행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뭐예요?”
직장인의 점심시간은 어찌나 빠르게 지나는지, 결국 지하 식당가를 채 벗어나지 못하고 근처에 있는 카페에 걸음이 묶여버렸다. 그녀의 말은 어제 점심 약속을 하며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요.’라고 넌지시 건넨 내 말에 대한 되물음이었다.
“네 맞아요, 이번에도 꼭 엽서를 보낼 거예요. 맥도널드요? 물론 가야죠.”
여행지마다 반복되는 그녀만의 특별한 습관에 대해 묻는 내 질문에 그녀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이유는 아마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그걸 용케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아니면 그게 왜 궁금한지.
기억 속 그녀는 여행지에서 해야 하는 숙제가 제법 많았다. 특별한 디자인의 코카-콜라 캔을 찾아다녔고, 그 나라의 맥도널드를 방문하는 것을 낙으로 생각했다. 그중 내 눈에 띈 것은 한국 주소로 엽서를 보내는 것이었다. 수취인은 그녀 자신.
“요즘은 아예 도착하면 근처 우체국부터 미리 찾아놔요.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니까.”
흔쾌히 엽서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녀의 입꼬리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십 년 전 인도 여행이 시작이었어요. 두 달간 여행하면서 쓴 일기장을 집으로 보냈어요. 글쎄요, 막연하지만 들고 돌아가는 것보다 우편으로 받으면 더 특별할 거라고 기대했던 걸까? 잘 모르겠어요. 중간에 사라질까 걱정하지 않았냐고요? 아니요, 언젠가 꼭 올 거라 믿었어요. 한 달이 훨씬 넘게 지나서야 도착하긴 했지만. 그럼요, 좋았죠. 그 후로 여행을 갈 때마다 빠짐없이 제게 엽서를 보내고 있어요. 내용은 음... 주로 여행지에서의 감상,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이에요. 아, 거기에 세 가지 정도의 희망사항을 함께 적어요. 얼마 전 파리에서는 다음엔 꼭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겠다는 다짐을 적었어요.”
나라면 뭘 적을까, 생각하다 내 일기장을 지구의 우편 시스템에 맡기는 것을 상상하니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는 못해! 십 년 차 다운 숙련된 프로세스다, 라는 생각이 다음으로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엽서라.. 스물넷 남미 여행에서 보낸 것이었어요.”
스물넷, 그래 나도 그때쯤 청춘이 실은 참 무거운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웃기지도 않는 얘기지만.
“페루였던가, 아 볼리비아에서! 그 여행이 가장 힘들었거든요. 짐을 도둑맞고, 몸까지 좋지 않아서. 귀국하고 한 달만에 엽서가 도착했는데, 그때도 한국에서 좋지 않은 일을 겪고 있었어요. 여행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엽서 안에 불평불만이 가득한데, 그게 또 묘하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수성펜으로 쓴 글씨가 군데군데 번져있는 것까지.”
그래, 아마 마주 앉아 서로의 불평을 늘어놓으며 공감하고, 위로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 도시의 냄새가 났어요. 네, 확실히.”
‘그 도시의 냄새가 났다고요?’라고 재차 되묻는 내게 그녀는 고개까지 끄덕이며 대답했다.
‘흙냄새 비슷한 걸까.’ 꿈같은 일이지만,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싶었다.
“그럼 또 봐요, 오빠!”
사실 내가 이 년만에 그녀의 습관에 대해 물어본 것은 얘기를 털어놓은 그녀가 본전 생각이 들지 않을만한 내 이야기가 이제야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말이 끝나면 답례로 내 얘기를 할 생각이었다. 당신처럼 특별하지도, 우체국을 찾는 정도의 수고도 없지만 나 역시 여행마다 빠지지 않고 반복하고 있으며 내 인생에 이런저런 영향을 주는 내 습관을. 하지만 직장인의 점심시간은 너무 짧았다.
‘작별 인사도 어쩜, 녹음한 듯 똑같네.’
제 이야기만 늘어놓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 다시 풋, 하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이 년 전, 프라하의 어느 우체국 앞 우체통에 엽서를 넣는 그녀의 뒷모습이 내심 부러웠던 나는 한동안 여행자로서의 내 버릇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그다지 계획적인 편이 못 되는 내가 여행이라고 특별한 룰을 만들 리 없었다. 여행 일정을 짜는 것조차 현지에 도착한 뒤에야 밀린 리포트 하듯 해치우는 것이 부지기수인데. 물론 지난 몇 번의 여행에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각 나라의 전통 인형에 유독 관심이 많은 나는 전통 시장과 인형 가게를 구경하는 것이 유독 즐거웠다. 모스크바에서 구입한 마트료시카(Матрёшка)는 지금도 내 책장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 뒤로는 프라하에서 큰 맘먹고 여행 경비의 삼분의 일을 털어 산 마리오네트(Marionette)가 걸려있다. 일본, 홍콩 그리고 그 외 몇 개 도시에서도 나는 전통 인형들을 사 왔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취향의 영역이지 ‘미션’은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인형이 없어 빈손으로 돌아온 도시도 있으니까.
하지만 역시 내 안의 발견은 우연한 기회로 찾아오는 법이다. 그리고 그 배경이 어둡고 축축할수록 더 빛이 난다. 잔뜩 찌푸린 날의 프랑스 마르세유 구 항구(Vieux port de Marseille)는 그런 면에서 더없이 좋은 배경이었다. 어렴풋하게나마 떠오르는 짠내 머금은 바람과 항구의 소음, 설탕이 자근자근 씹히는 에스프레소 중 어느 하나라도 없었다면 여전히 나는 습관 같은 건 없어,라고 말하고 다닐 거라 확신할 정도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마르세유의 시작은 기원전 600년 그리스인들이 세운 마살리아(Μασσαλία)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포카이아인들의 교역항으로 이용되던 도시는 그리스와 로마 통치를 거쳐 15세기 프랑스 편입 후에도 무역의 중심지와 군사 거점으로 꾸준히 발전했다고 한다. 현재는 지중해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이자 파리 다음으로 큰 프랑스의 대도시로 자리 잡은 마르세유는 일 년 내내 온화한 날씨로 여행지로도 인기라고 하는데, 생 장 요새(Fort Saint-Jean)에서 배들로 꽉 들어찬 구 항구의 전경을 보고 있으면 죽기 전에 한 번쯤 보러 올만하지 않겠냐는 말이 자연스레 나온다. 도시 어디에서나 보이는 언덕 위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Basilique Notre-Dame de la Garde) 역시 어릴 적부터 들어온 익숙한 이름 때문인지 막연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아 축구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마르세유는 낯설지 않은 이름일 것이다. 프랑스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의 고향이자 프랑스 1부 리그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Olympique de Marseille)의 연고지가 바로 이곳이다. 하나 더, 영화 택시의 배경지를 떠올리면 마르세유만의 독특한 감성을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낡고 거친, 하지만 풍만한 감성이 있는.
노트르담 성당과 롱셩 공원(Palais Longchamp), 원조 부야베스 요리까지 마르세유는 유독 기대가 컸던 도시였지만 내 여행이 늘 그렇듯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일 년 중 흐린 날을 손에 꼽는다는 도시가 하필 그날은 아침부터 우중충하고 해 한 번 비치지 않았으니. 저녁 배를 타고 다시 떠날 때까지 짧은 하루를 나는 대부분 구 항구 주변에서 보냈다. 날씨 탓에 김이 빠져버렸다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 여행 준비 역시 턱없이 부족한 것이 더 큰 이유였다. 노트르담 성당은 지도에서 본 것보다 훨씬 멀고 까마득하게 높이 있었다. 콧대 높은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로 길을 묻는 내 질문을 외면하고 지나쳤고, 나는 결국 성당 행을 포기하고 구 항구 주변을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다행히 마르세유 구 항구 주변만으로도 하루 볼거리가 충분했다. 생 장 요새에서 내려다보는 그림 같은 구 항구 풍경과 낮보다 밤이 더 기대되는 지중해 위 유럽 지중해 문명 박물관(Mucem),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이 도시의 랜드마크 중 하나겠거니 싶은 항구 앞 대관람차까지. 그 북쪽으로 펼쳐진 거리 풍경 역시 활기가 넘쳤다. 무역 중심 도시답게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사는 이 도시의 거리 풍경은 한 장의 캡처만으로 프랑스의 다양성을 충분히 보여줬고, 전통 시장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빼빼 마른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기타 소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그렇게 '별 것 없는 여행’으로 오후가 채워졌다.
오후 네 시, 나는 구 항구가 보이는 카페테라스에 앉아 지중해와 배를 맞댄 선착장에 우뚝 솟은 커다란 관람차가 뿜어내는 묘한 분위기를 어떤 단어로 정의할지 고민하느라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1유로 라바짜(Lavazza) 커피의 남은 얼룩은 까맣게 말라붙은 지 오래였다. 이번 여행용으로 챙긴 빨간색 수첩의 중간쯤, 빈 페이지에 시작할 제목을 결국 정하지 못하고 다음 장을 넘겨 오늘 하루의 일들을 적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종종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던 것이 무색하게도 일기는 날씨에 대한 불평으로 시작해 노트르담 성당과 롱셩 공원에 대한 아쉬움, 게으른 나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생각이 주렁주렁 열매들을 맺다 보니 결국 여느 때처럼 요즘 내 고민들을 하나 둘 털어놓게 됐다. 돌아가면 다시 시작될 먹고사는 걱정, 무언가에 끊임없이 쫓기는 마음, 대책 없는 내 게으름과 노총각의 불안함 등. 사라지지는 않고 자꾸 쌓이기만 하니 어느새 제법 많고 무거워졌다. 내 여행 수첩은 주로 이런 용도다. 불평, 불만 그리고 화풀이.
생각보다 턱없이 느린 손을 놀리며 수첩을 채우느라 손목이 곧 뻐근해졌다. 한바탕 분풀이가 끝난 후 손목을 빙글빙글 돌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나마 조금 후련해진 기분으로 건너편 테이블의 유쾌한 수다를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그때 등 뒤로 ‘빠앙-’ 하는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눈이 닿은 마르세유, 언덕 위 노트르담 성당과 관람차 그리고 구 항구의 풍경이 함께 보이는 풍경이 조금 전보다 편안하게 느껴졌다. 생소한 도시에서 느낀 익숙함, 돌아보면 그것은 일종의 기시감(deja vu)이었던 것 같다. 모스크바 성 바실리 대성당(Собор Василия Блаженого), 싱가포르 멀라이언(Merlion),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ília)까지. 이렇게 도시를 배경 삼아 길고 짧은 메모들을 적던 순간들이 하나씩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비워둔 앞장을 다시 펴고 이 날 여행의 제목을 적었다.
사람들의 시선으로 점수를 매기면 그 날 여행은 낙제점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전경도, 롱셩 공원에서 잔뜩 폼을 잡고 찍은 인증샷도 없으니 ‘마르세유에서 뭘 했냐.’는 질문이라도 받게 된다면 그저 생 장 요새에서 찍은 구 항구 사진만 몇 장 넘겨 보이며 답을 대신해야 할 수밖에. 날씨 탓에 그마저도 SNS에 넘쳐나는 것만 못하다.
하지만 마르세유 구 항구가 보이는 이름 모를 카페테라스에서 내 묵은 버릇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히 특별한 오후, 그리고 하루였다. 흐린 날씨에도 그런대로 제 멋을 뽐낸 노트르담 성당과 대관람차의 실루엣과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들의 말소리, 항구 특유의 짭짤한 냄새 그리고 메모를 적는 동안 손등을 간질이고 머리를 헝클었던 지중해의 봄바람까지. 그 멋진 장소에서 나는 온전히 주인공이 되어, 저녁 배를 타기까지 나만의 여행을 마저 즐겼다. 어쩌면 나는 멋진 배경을 구하러 여행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라고 생각하며.
그날의 발견이 남은 여행 그리고 이후의 일상에 아무 변화를 주지 못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지 않을까. 내 습관에 대해 알게 된 후 랜드마크에서 골목으로, 책자와 블로그의 추천 식당보다 이름 모를 노포로 여행의 배경이 바뀌었다. 남이 만든 리스트에서 자유로워지니 시간에 쫓기지 않게 된 것은 물론이고, 도시의 맛을 천천히 그리고 진하게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큰 즐거움은 여행 후의 변화였다. 늘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던 내 안에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생기니 좋아하는 브랜드의 옷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고, 자랑으로 가득 찬 TV 속 연예인들의 여행 대신 책을 찾게 됐다. 무엇보다 여전히 불안하고 돈 안 되는 내 일, 이 사회에선 늦은 결혼 등에 대해 연민 어린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좀 전보다 당당하게 대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나는 내 방식대로 여행하는 중이니까.
내 멋대로 만든, 아니 그 항구에서 배워 온 일종의 주문인 셈이다.
그녀의 엽서 이야기 이후, 다른 몇 명의 여행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그들의 답에는 자석 기념품 쇼핑 같은 보편적인 것부터 손가락만 한 캐릭터 인형을 랜드 마크에 놓고 간지러운 사진을 찍는 것 같은, 언젠가 SNS에서 본 것 같은 기획도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마음을 움직인 것은 없었다. 오히려 듣고 나면 같은 강의를 반복해서 듣는 것처럼 피곤해졌다. 아마도 그 여행들이 얼굴과 목소리만 다를 뿐 똑같이 반복되고 있고, 주체 역시 본인의 가슴이 아닌 타인의 눈인 것이 그 이유가 아니었을까? 자신만의 여행을 하면 좀 더 행복한 여행이 될 텐데, 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물론 나도 지금보다 좀 더 특별하고 근사한 습관을 갖고 싶은 욕심이 있다. 가장 구미가 당기는 것은 ‘책’에 관한 것인데, 언젠가부터 여행마다 일부러 두껍지 않은 책을 챙겼지만 절반은커녕 그 반을 넘긴 것도 드물 정도로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평소에 읽고 싶었던 혹은 좀처럼 진도가 나지 않는 책을 여행지에서 마무리하는 훈련을 할 계획이다. 버릇도 때로는 훈련이 필요하기에. 언젠가 이번 여행의 목적을 묻는 질문에 손에 쥔 책을 가리키며 ‘이 책을 마무리하려고.’라고 답할 수 있다면? 아아,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근사한 일이다.
멋진 이야기 나눠줘서 고맙습니다, @엄지사진관
근사한 이탈리아 여행 얘기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