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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일주
by 금요일 흐림 Oct 06. 2017

여기, 하카타 우동 한 그릇

후쿠오카, 내게 주는 선물

“사람을 웃게 하는 건 어렵지 않아.

맛있는 우동을 먹이면 되는 거야.

맛있는 거 먹을 땐 다들 웃잖아.”

- 영화 "우동" 中


‘드르륵'


 한 눈에도 그 세월을 알 수 있는 목재 여닫이 문이 이제 이골이 났다는 듯 저항 없이 바깥쪽으로 미끄러진다. 오랜 시간 마모된 나무가 내는 소리엔 반들반들 윤기가 난다. 곧이어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나도 모르게 ‘아’ 하고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근사해, 근사하다.’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노포의 낡은 풍경에 순간 마음을 뺏긴 나는 자리에 앉는 것을 잊고 한동안 내부 곳곳을 두리번거렸다.


 후쿠오카 시 가미고후쿠마치(上呉服町)의, 소박하고 깔끔한 일본 특유의 골목길에서 이 노포의 탁한 외관은 단연 눈에 띄었다. 하지만 까맣게 그을린 벽 아래 닫힌 목재 여닫이 문의 모습이 마치 이를 앙다문 듯해서 선뜻 가게 문을 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얼마 전에 새로 교체한 것으로 보이는 입구의 조명등이 아니었으면 한참을 더 망설였을지도 모르겠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세시, 가게는 손님 없이 한가했다. 가장 안쪽 테이블에 앉아 신문을 보던 남자가 눈을 치켜들어 나를 보더니 손목 힘을 이용해 신문을 안쪽으로 접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경쾌하게 ‘착’ 하고 울린 신문 접는 소리가 환영 인사 같기도, 깨져버린 오후의 여유에 대한 한탄처럼 들리기도 했다. 주섬주섬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굼뜬 것을 보아 후자에 가까웠을지도.


'소바? 우동?’

'우동, 고보우텐(ごぼう天, 우엉 튀김) 오네가이시마스.’

'하잇-'


 짧은 대답 후 낡은 주방으로 돌아간 남자는 국수 망에 면 한 줌을 담아 가마솥에 걸었다. 뒤이어 아침부터 뭉근하게 끓고 있을 가마솥의 물을 국자로 퍼 우동 그릇에 덜고 다시 쏟기를 반복했다. 그릇을 미리 데우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원숙함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아름다움 때문 아니었을까. 몸을 돌린 그와 눈이 마주친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짓고 다시 노포 안을 한 바퀴 돌며 몇 개 되지 않는 테이블, 벽에 붙은 메뉴판, 기름과 물이 만든 자국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훑었다. 이 공간이 정말로 마음에 든다는 나름의 표현이었달까. ’うどん 三百二十円(우동 320엔)’이라고 적힌 메뉴판엔 몇 번이나 종이를 덧대고 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내가 다시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남자가 테이블에 우동을 놓고 신문이 놓인 테이블로 돌아갔다. 몇 걸음 되지 않는 작은 가게에서 까치걸음으로 테이블에 다가가 앉은 나는 눈 앞에 놓인 소박한 우동 한 그릇에 다시 한번 낮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족히 다른 우동의 배는 굵어 보이는 흰 면에 맑은 국물, 그리고 우엉 튀김을 올린 모습이 이 가게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후쿠오카에서 연을 맺은 친구가 늘어놓은 ‘후쿠오카 음식 자랑’은 대단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돈코츠 라멘부터 곱창전골 모츠나베(もつ鍋), 명란젓(めんたいこ) 등 많은 일본 음식들이 이 곳에서 탄생했다는 것인데, 그중에서도 우동의 발상지가 하카타(博多)라는 것은 놀라움에 가까웠다. 그동안 우동의 고향은 사누키(讚岐)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하지만 약 700년 전 하카타의 절 죠우텐지(承天寺)에서 만든 온돈(饂飩)이 바로 우동(うどん)의 시작이란다. 게다가 현재도 후쿠오카 사람들은 라멘보다 우동을 더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로 우동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하카타 스타일의 우동을 먹어 보고자 찾아온 것이 바로 이 노포였다. 그리고 심심한 담음새의 우동 한 그릇은 그런 내 기대를 충족시켰다.


 휴게소나 기차역에서 팔던 가락국수처럼 툭툭 끊어지는, 우동같지 않은 면을 한 입 가득 문 채 우엉 튀김 풀린 간간한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키니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ルメ)의 이노가시라상이 이 테이블에 앉아 했던 평이 절로 떠올랐다. ‘군더더기 없이 맛있군!’ 이대로 귀국 비행기를 타도 여한이 없을 만큼 낡은 노포의 분위기와 우동에서 느껴지는 풍미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음식이 주는 즐거움’을 빼고 여행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마지못해 허기만 달래며 여행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은 장소와 음식 둘로 나눠 여행을 준비할 정도로 그 비중이 크니 말이다. 나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을 여행의 큰 낙으로 여긴다. 타이베이에선 딘 타이 펑(鼎泰豊)의 샤오롱바오(小籠包)를 먹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섰고, 이탈리아에선 도시마다 다른 피자와 파스타 맛에 반해 공복의 틈 없이 여행을 했다. 호주의 스케일을 가늠할 수 있었던 커다란 비프스테이크와 여행 내내 나를 취하게 만든 체코 맥주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까지, 내가 머문 도시들은 적어도 하나씩은 ‘최고의 한 끼’를 남겼고 훗날 그리워할 음식과 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근사한 식당은 그 도시의 축소판과도 같죠.”


 바르셀로나 포트 벨(Port Vell)의 레스토랑에서 지중해의 오월 풍경에 푹 빠져있는 내 앞으로 해산물 파에야(Paella)를 내려놓으며 남자가 말했다. 나는 헤 벌렸던 입을 다물고 남자를 보고 멋쩍게 웃었다. 손에 주문서를 든 남자는 술을 한 잔 걸친 것처럼 얼굴이 붉게 상기돼 있었다. ‘아마도 따가운 이곳 해 때문이겠지.’ 하얀 머리색 때문에 붉은 얼굴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한 끼 식사는 여행 전체와 바꿔도 아깝지 않답니다.”


 식당에 대한 자랑에 평소 철학을 버무려 파에야 못지않게 맛깔난 문장을 놓고 돌아선 그의 뒷모습에서 나는 또 한 번 아름다움을 느꼈다. 원숙함만이 줄 수 있는 환한 빛 같은 아름다움을. 



 그 후 나는 여러 도시의 현지 분위기 물씬 풍기는 식당과 펍에서, 향신료의 향과 사람들의 소음에 둘러싸여 포트 벨의 레스토랑 지배인이 내게 해 준 문장들을 기억해 냈다. 낯선 식당에 들어서 생소한 음식들을 주문하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큰 소리로 대화를 하거나 혹은 운 좋게 친화력 좋은 이들과 잔을 부딪히는 경험, 그리고 생소함과 익숙함을 넘나드는 음식들의 맛과 향은 이방인이 낯선 도시에서 발견하는 모든 것들에 비견될 만큼 다채로웠다. 마치 한 끼 식사가 여행의 축소판인 것처럼. 식민지 지배 시절 강대국이 세워놓고 떠난 교회나 성당, 혹은 화려한 빌딩 숲 사이를 거니는 것보다 짠내 풍기는 현지 식당에서 나는 종종 그 도시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발견하곤 했다. 다만 길을 걸을 때와 다른 것이 있었다면, 음식의 맛과 포만감이 주는 행복 덕분에 꼭 내게 근사한 선물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리고 그 경험은 매 끼니 마다는 아니지만 도시마다 반복됐다.



 요즘 두세 채널 건너 여행 관련 TV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나는 대체로 남의 여행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부러워서?라고 물어도 할 말은 없다- 여행지 소개 없이 일박 이일 동안 현지 음식을 먹기만 하는 프로그램은 즐겨 보고 있다. 연신 입맛을 다시며 보다 보면 새삼 여행이 저렇게 즐거운 것이지, 라는 생각이 든다. TV 속 마터호른(Matterhorn)의 절경이나 오로라(Aurora)의 신비한 움직임보단 이쪽이 내겐 더 설렘을 안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동경이랄까.


 그리고 가끔 실행에 옮기는 곳이 규슈, 그리고 후쿠오카다. 400엔짜리 우동 한 그릇에 반한 것이 그 시작인데, 훌쩍 떠나고 싶지만 너무 멀지 않은 거리에 봐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이 많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까지 많아서 긴 원고를 마친 내게 선물처럼 안긴 것이 그 시작이다. 그 후로 일 년에 두어 번은 방문해 ‘돈코츠 라멘 투어’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 익숙해진 하카타와 텐진 시내를 걷다 보면 여행 같지 않은 가벼운 여행에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하긴, 여행이란 게 매번 너무 뜨겁고 무거우면 즐겁지 않다. 사는 것도 그렇다. 늘 힘 잔뜩 주고, 무거운 것만 들고 매다 보면 얼마 안가 지치기 마련이다. 이곳 그리고 이곳의 음식들은 나를 위한 선물이자 쉼표인 셈이다. 


 용건 없이는 좀처럼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폐쇄적인 성격 탓에 지인들은 내가 적어도 일 년의 사 분의 일 정도는 해외에 있다고 오해하곤 한다. 그래서 가끔 만나는 내게 언제나 여행 이야기를 묻는데, 그들에게 나는 종종 이런 농을 던지곤 한다. 너와 내가 함께 좋아하는 오이시 라멘 먹으러 이번 주말에 오사카에 가지 않겠냐고. 바르셀로나에서 하몽 몇 점에 와인 한 잔 하고 곧장 돌아오는 건 어떻겠냐고. 열에 아홉은 꿈같은 이야기라며 손사래를 치거나 웃음을 터뜨린다. 또 그중 네댓 명은 고개를 들어 잠시나마 행복한 상상에 빠져있기도 한다. 나도 함께 웃고 상상하면 별 힘 들이지 않고 모임이 즐거워진다. 역시 음식은 가장 매력적인 주제다.


 하지만 못내 아쉽다, 나는 진심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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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난 통장 잔고보다 고갈되고 있는 호기심이 더 걱정인 어른. 
여전히 청춘이므로,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인생이 쓸 때, 모스크바 (위즈덤하우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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