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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주 Nov 17. 2017

여섯 시 사십사 분, 지중해의 아침

지구 어딘가. 생이라는 항해 (1/2)

 눈을 뜬 후에도 세상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한동안은 착각인 것만 같아 연신 눈꺼풀을 닫았다 힘껏 열어 보았지만 암흑은 그대로였다. 몇 번 더 빛 탐색에 실패한 후에야 나는 다시 눈을 감고 몸 전체에 전해지는 움직임에 집중하기로 했다. 앞뒤로 반복되는 리드미컬한 진자 운동이 머리, 그리고 발 끝으로 번갈아가며 전해졌다. 철썩이는 마찰음이 움직임에 맞춰 귓가에 닿았다 곧 멀어졌다. 나는 이대로 다시 잠에 빠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요람에 있는 아이의 느낌이 이런 것일까, 라면서.


 다시 눈을 떴을 때, 시야는 이전보다 확연히 밝아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빛 방향으로 걸터앉았다. 담요처럼 두터운 암막 커튼 끝이 벌어진 틈으로 푸른색과 붉은색이 섞인 오묘한 빛이 흘러 들어와 바닥 카펫을 적시기 시작했다. 나는 홀린 듯 일어나 빛이 있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미처 가시지 않은 어둠 속을 더듬어 탁자 위 카메라를 집어 들고, 다른 팔로 커튼을 왼쪽으로 당겼다. 커다란 유리문을 통해 와락 쏟아진 새벽빛이 미색의 벽지와 벽걸이 텔레비전의 귀퉁이를 물들이고 내 뺨에 튀었다. 다음 장면에서 나는 망설임 없이 그 푸르고 붉은빛으로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흠뻑 젖었고, 완전히 잠겨 버렸다.



 찰칵찰칵 셔터 소리와 파도 소리뿐인 새벽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푸른색과 붉은색이 반씩 섞여있던 지중해의 여명은 매 초마다 조금씩 붉어져 곧 타는 듯 새빨갛게 하늘과 바다를 물들였고, 객실과 이어진 작은 발코니에서 오롯이 홀로 그 새벽을 마주하는 감격에 흠뻑 젖은 나는 조금씩 차오르는 숨을 달랬다. 눈 깜빡이는 시간이 야속하다는  진부한 표현이 더없이 어울리는 아침 풍경이었다.


 새벽이 더 이상 붉어질 수 없다는 확신이 들고 나서야 나는 두 뼘 남짓한 작은 원형 탁자에 카메라를 내려놓을 여유가 생겼다. 밤새 차갑게 식은 철제 난간에 기대 지금이 몇 시인지, 이곳이 지구 어디쯤인지 잠시 생각해 봤지만 곧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리문에 비친 까치집 머리, 끔찍한 분홍색 반바지 차림의 내 몰골도. 대신 발코니에 들어선 순간부터 시작된 한 남자에 대한 생각이 목구멍에 걸려있는 상태였다. 나는 좀처럼 떨쳐지지 않는 그리움의 주인공, 분명 어딘가에서 이 여명을 보고 있을 그에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


보고 있죠? 당신도.

 스페인 바르셀로나(Barcelona) 항에 정박해 있는 길이 1000피트, 총 19층 높이의 거대한 선박은 차라리 거대한 건축물에 가까웠다. 미동도 없는 거대한 저 배가 3500명의 사람을 싣고 대륙과 대륙 사이를 건넌단다. 나도 그중 한 명이 되려는 참이었다. 택시에서 내려 트렁크를 끌고 승선장으로 향하는 내내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배가 물에 뜬단 말야?’ 그렇게 시작된 놀라움은 승선 후 배 곳곳에서 탄성과 환호로 이어졌다. 선박 내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3층 규모의 중앙 홀이 시작이었고, 수영장과 대형 스크린이 있는 갑판 위에 오른 순간 절정이었다. 중앙홀 주변으로 즐비한 카페와 펍, 그리고 창 바다를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을 둘러보며 나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일주일간의 항해가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한 공간은 14층 객실 끝에 마련된 작은 발코니였다. 두, 세 사람이 설 수 있는 작은 공간이지만 원하면 언제든 지중해의 풍경을 홀로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 것이 매력이었다. 나는 종종 발코니의 작은 의자에서 육중한 파도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하루의 일을 수첩에 정리하곤 했다. 일주일간 내게 그만큼 아름다운 음악은 없었다.


 첫날 저녁, 배가 바르셀로나를 출발해 첫 번째 기항지 카르타헤나(Cartagena)로 향하는 동안 5층 중앙 홀에선 승객들을 환영하는 공연이 펼쳐졌다. 홀에 놓인 테이블은 물론 6,7층의 난간과 나선형 계단까지 가득 채운 승객들은 먹고 마시며 이제 막 시작된 일주일간의 항해를 기념했다. 대부분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들의 표정에는 하나같이 여유가 가득했고, 이따금씩 귀에 들리는 대화들에는 품격이 느껴졌다. 난생처음 참석한 호화로운 파티가 어색했던 나도 이내 그들과 동화돼 밴드의 연주에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여행 전야와는 사뭇 다른 항해 초야의 설렘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6층 면세점 코너 쪽에 있는 작은 문을 열고 갑판으로 나가야 했다. 왼쪽 귀가 또 말썽을 일으킨 탓이다. 보통 사람보다 소리에 예민한 나는 사람이 많은 광장이나 공연장 같은 곳에서 종종 싸구려 스피커가 내는 파열음 같은 소리와 이어지는 두통에 시달리곤 한다. 이제 막 무르익기 시작한 그날의 파티도 내겐 유리벽 너머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다행히 갑판 너머 펼쳐진 지중해의 석양은 도망 온 내게 큰 위로가 됐다. 수평선 주변을 간신히 밝히는 손가락 한 마디 너비의 빛이 내 부끄러움을 가렸고, 배가 바다를 가르며 내는 소리는 귀를 편안하게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직선이 규칙적으로 교차하는 난간의 실루엣을 어그러뜨리는 남자의 실루엣도 마음을 한결 놓이게 했다. 만약 갑판 위에 아무도 없었다면 나는 금지 구역에 온 것이 아닌지 눈치를 봤을 테니까.


 그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다시 배 안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나는 남자와 몇 발짝 떨어진 난간에 다가가 말없이 바다를 보다가, 목에 건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되도록 조용히. 곁눈질로 본 남자는 다행히 이쪽을 의식하지 않았다. 나보다 키가 큰 그는 밤바람에 어울리지 않은 얇은 베이지색 점퍼 차림으로 미동 없이 바다를 바라볼 뿐이었다. 흩날리는 중간 길이의 흰색 머리칼이 유일한 움직임처럼 느껴졌다. 그가 몸을 내 쪽으로 돌려 말을 걸어온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나는 혼자 승선했다네. 일주일 동안 혼자 여행할 예정이야.”


 출신 도시와 배의 첫인상 등 평범한 대화 후,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지난해 부인과의 마지막 여행으로 이 배의 객실을 예약했다고 했다. 오십여 년의 시간을 함께 걸어온 자신과 그녀에게 주는 선물로. 하지만 당시에도 건강이 좋지 못했던 부인이 몇 달 전 세상을 떠났고, 그녀를 보내는 동안 그는 다가오는 승선일을 까맣게 잊었다고 했다. 남자는 고민 끝에 홀로 배에 오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녀와 내가 함께 그린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내게 남겨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쉽지 않다고 했다. 당장 오늘 밤도 화려한 파티에 낄 자신이 없어 결국 이 갑판 위로 도망쳐 나왔다고. 아직 혼자 머무는 객실이 편치 않아 배를 좀 둘러보고 돌아갈 생각이라는 말을 덧붙인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비쳤다. 몇 분 전부터 탄식만 하고 있는 내게 먼저 악수를 청한 것도 그의 손이었다. 그가 문을 열고 배 안으로 들어간 후에도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몸을 돌려 바다를 볼 수도, 배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지중해 한복판, 어느 대륙에도 속하지 않는 바다 위에서 맞는 이 특별한 새벽 그리고 여명을 분명 그는 놓치지 않고 이 배 어디에선가 바라보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밤잠 이루지 못하고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지난밤 그의 옅은 미소에서 내가 느낀 감정이 틀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엔 오직 한 사람만이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 그가 그녀에게 어떤 말을 했을지 짐작해 보았지만, 곧 그 깊이를 가늠이나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는 걸 깨달았다. 대신 수평선 위로 완전히 떠오른 아침에게 기도했다. 그가 어제보다 조금 더 밝은 미소를 짓고 있기를.


 삶이 항해와 같다는, 혹은 인생의 축약판이라는 이야기를 한 사람들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목적지를 자아실현에, 항해에서 만나는 풍파를 고난에 비유하며 ‘올바른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를 통해 나는 또 다른 의미의 ‘생이라는 항해’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녀와 함께 그려온 그림을 홀로 마무리하기 위해 배에 오른 그에게 이번 항해의 진짜 배경은 그가 품은 세상일 테니. 이를테면 약속이라는 도시에서 그리움이라는 바다를 건너 그대라는 대륙으로. 종종 한 사람의 생이 품은 거대한 세상을 엿보는 이런 순간을 나는 여행의 진짜 기적이라 부른다.


 그, 그리고 그녀에겐 어쩌면 생애 가장 열망했던 이 아침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는 동안에도 배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가로질러 낯선 도시로 향하고 있었다. 내 생애 평생 잊지 못할 엿새간의 항해는 그렇게 시작됐다.



다음 편에 계속.


이전 17화 도시에게 물었다, 여행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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