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김성주 Nov 10. 2017

도시에게 물었다, 여행이 답했다.

멜버른(Melbourne), 도시에게 던지는 내 질문

 어떤 영화 속 주인공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살아가다 보면 어떻게든 풀리는 법이라고. 그땐 참으로 무책임한 말라고 생각했던 그 말을 후에 수첩 속에서 다시 발견했을 때, 어둠 속에서 옮겨 적은 탓에 삐뚤빼뚤 크기도 제각각인 글씨로 적은 문장을 보며 나는 왈칵 쏟아질 뻔한 눈물을 깨물어 삼켜야 했다.


 낯선 도시는 늘 내게 질문 하나씩을 던졌다. 반짝이는 장면을 눈 앞에 펼쳐 놓고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에 대해 묻는가 하면, 가장 최근의 이별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도 했다. 나를 이루는 감정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한 광장, 잊고 있던 약속들을 수 없이 캐묻던 어느 작은 해변도 있었다.

 나는 늘 당장 답을 하지는 못했지만 질문을 잊은 적은 없었다. 돌아온 후라도 그 답을 찾으면, 어디라도 적은 뒤 귀퉁이를 접어 놓았다. 언제든 날려 보낼 수 있도록. 내가 벌써 삼 년째 여행을 이어가고 있는 원동력이다.


 하나가 더 있다. 반대로 내가 낯선 도시에 던지는 질문. 다만 내 게으름 탓에 매번 새로운 질문을 준비하지는 못하고, 어느 도시에서나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당신 참 행복해 보여요, 비결이 무엇인가요?


 새해 첫 번째 수요일, 영하 30도의 혹한과 그치지 않는 폭설 아래서 붉은 밤의 축제를 즐기는 모스크비치(모스크바 사람들)들을 보며 의아해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 날 안개꽃 다발처럼 풍성한 갈색 머리를 가진 숙녀의 입을 통해 들은 대답은 이랬다. “오늘 이번 겨울 가장 뜨겁고 진하게 우려낸 차를 마셨거든요.”

 이후 여행마다 반복된 내 질문에 도시들의 답은 각각 달랐다. 일 년에 비 오는 날이 닷새가 채 되지 않는 천혜의 날씨, 골목마다 다른 세상에 있는 듯 다양한 문화, 돌아서면 곧 생각나는 맛있는 음식 그리고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해 질 녘 광장의 실루엣 등. 그곳에서 얻은 소중한 답들을 나는 여행 일기의 제목으로 적어둔다.

 하지만 같은 질문을 서울에서 하진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행복하게 하나요?’라고 물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가 행복해 보이나요?’라고 되물었으니까. 애석하게도 이곳의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거나 적어도 본인이 행복하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당장 오늘 만난 이도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사는 게 참 만만치가 않지 않느냐고. 무엇이 요즘 너를 가장 힘들게 하느냐고.


 수요일 밤에 출발한 비행기가 홍콩을 경유해 수요일 오전에 멜버른 공항에 도착했다. 좁은 비행기 좌석에 구겨졌던 몸을 편 것만으로 기지개가 되었던지, 아니면 이제 막 밝아오는 아침 풍경 덕분인지 뜬 눈으로 보낸 장시간 비행의 피로도 잊고 곧장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남반구의 새 햇살을 상쾌함인 첫 속여 나를 떠민 것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넓은 면적의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들 중 하나. 계절이 반대인 적도 아래 남반구 도시. 전 세계 사람들의 버킷 리스트 그레이트 오션 로드. 스테이크와 와인 그리고 커피. 비행기 안에서 보는 책자 속 설명들은 하나같이 매력적이었지만, 가장 강렬한 인상을 것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라는 문장이었다. 세계 주요 도시의 행복 지수를 매긴 지표에서 오 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는 것. 나는 지난 일 년간 낯선 도시에서 했던 내 질문들, 그리고 얻은 대답들은 어쩌면 이곳을 위한 준비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잠시지만 시끄러운 비행기 소음이 순간 들리지 않을 만큼 설레었던 순간이었다.


 하루 중 햇살이 가장 뜨거운 오후 두 시, 카페가 몰려있는 디그레이브 스트리트(Degraves Street)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있는 내 건너편에 한 여성이 앉으며 무언가 말을 걸어왔다. 새까만 머리와 대비돼 창백해 보일 정도로 하얀 피부였지만, 자외선이 강한 날씨 탓에 얼굴 곳곳이 붉고 주근깨가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있던 나는 종이컵을 든 그녀의 손을 보고 그것이 ‘여기에 앉아도 될까요?’ 정도의 질문이라 생각해 ‘물론이요’라는 답과 함께 고개를 살짝 끄덕였지만, 계속 이어지는 입모양에 한쪽 이어폰을 빼고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어디에서 왔어?”


 여행 중 누군가가 먼저 말을 걸어오는 일은 내겐 그저 영화 같은 이야기였던 터라, 이어지는 그녀의 이야기는 나를 점점 더 빠져들게 했다.


“네 생김새에 눈이 간 것이 사실이야. 이 도시에는 한국인이 많지만, 그래도 우리와 다르니까. 카페 앞 테이블에 앉은 내 시선 안에 네가 있기도 했고. 하지만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과 달리 어쩐지 즐거워 보이지 않는 표정이 신경 쓰여서 네 앞에 앉게 됐어. 이곳에서는 그렇게 무표정한 사람이 흔치 않으니까.”


 자연스레 대화를 주도하는 그녀의 질문에 맞춰 나는 나는 멋쩍게 웃으며 나의 고향과 하는 일, 이 도시의 첫인상에 대해 말했다. 뜨거웠던 커피를 입을 크게 벌려 머금을 수 있을 만큼 식을 때까지 대화가 계속됐다.


“이 도시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라는 얘기를 들었어.”


“나는 한국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일본 사람들도 무척 행복해 보이던데. 나는 이곳이 행복하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다른 도시의 사람들도 못지않게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해.”


“행복 도시의 시민다운 대답이야.”


그렇게 받아넘긴 나는, 다시 반문이 오기 전에 그녀에게 그 질문을 하기로 했다.

“너도 무척 여유롭고 행복해 보여.”


“응,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비결이 뭐야? 그렇게 행복할 수 있는.”


“너는 뭐라고 생각해? 멜버니안의 행복의 비결이.”


“글쎄, 높은 임금? 자연환경? 아니면 와인?”


 그녀는 대답보다는 질문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 같았다.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조금 전에 호주에 온 나는 비행기에서 본 책자 속 단어들을 던지며 그녀와 스무고개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내 경우에는 날씨야. 이곳에서는 종종 하루에 사계절을 모두 경험할 수 있거든.”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날, 그러니까 내가 멜버른에 도착한 날은 이상기온으로 낮 최고 기온이 40도까지 치솟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한창 시간에 카페 거리 파라솔 아래에 앉아있던 것도 무더위로 일찌감치 고갈된 체력을 충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척 근사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곧 그녀는 미소를 짓게 해 준 자신에게 고마워하라는 말을 남기며 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오기라도 한 듯.


며칠 후,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서 행복의 조건에 대해 또 하나의 답을 들었다. 그녀의 말과는 달리 하필 하루 종일 장마철이었던 날이라 비를 맞으며 그레이트 오션 워크(Great Ocean Walk)를 걸어야 했고, 전망대에 도착할 때까지 비는 그치지 않았다. 자욱한 안개에 12 사도상(Twelve Apostles)의 모습은 신기루처럼 보였고, 회색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마저 사라진 악천후였다. 아마도 다시없을 확률이 높은 그레이트 오션 워크 산책이 구름과 안개에 가린 것을 아쉬워하며 돌아서는 길, 이제 막 전망대에 도착한 노부부와 눈이 마주쳤다. 며칠 새 제법 다양한 표정을 갖게 된 나는 입을 삐죽이며 날씨가 이모양이라 아쉽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빗방울 잔뜩 맺힌 빨간 점퍼에 배낭을 멘 신사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나는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만약 날씨가 며칠 전처럼 화창하고 뜨거웠으면 내 아내와 함께 전망대까지 올 수 없었을지도 몰라요. 그녀는 나처럼 체력이 좋지 못하거든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멜버른에서 한동안 나는 어쩌면 행복이라는 것이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페더레이션 광장(Federation Square)과 퀸 빅토리아 나이트 마켓(Queen Victoria Night Market)에서 만난 멜버니안들은 마치 거저 행복을 얻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혹 그것이 좀 비더라도 도시를 조금만 걷다 보면 금방 송이송이 따다 채울 수 있을 만큼 곳곳이 풍요롭다 느껴지기도 했다. 서울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의 표정과 한탄이 떠오르며 샘이 났다.


 하지만 멜버른에서 머물며 자연스럽게 멜버니안들에게 배운 것들이 조금씩 내 질투심을 사그라들게 했다. 멜버른 시내에서 운행하는 무료 트램을 타고 도시 곳곳을 이동하며 나는 떠나고자 할 때 반드시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광장과 기차역 그리고 크고 작은 골목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대화를 하기 위해 꼭 카페를 약속 장소로 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폐점 시간 후에도 좀처럼 식지 않는 퀸 빅토리아 나이트 마켓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어깨를 들썩이며 하루와 하루의 경계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됐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비틀거나 깨 놓았고, 나는 점점 부러움의 대상이던 멜버니안들처럼 행복한 표정을 짓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여느 날과 같이 야라(Yarra) 강변에서 야경을 즐기는 나는 디그레이브 스트리트에서 만난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을 며칠째 곱씹는 중이었다. 그녀는 네 개의 계절을 누릴 수 있는 하루가 행복의 원천이라는 자신의 대답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다양한 계절’. 그것은 날씨에 대한 이야기면서, 동시에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경험과 기회를 뜻한다고. 두 번째는 내 질문에 답을 하는 자신이 행복하다는 확신이었다. 그녀는 내 질문을 들으며 그녀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고 했다.


어쩌면 행복을 구할 땅은 지구가 아닌 가슴속에 있는지도,
그 어떤 대륙보다 넓은 한 사람의 생에.


 어느새 습관처럼 던지게 됐던 내 질문에 그녀가 준, 마치 거대한 평원 같은 답 한가운데서 나는 그 여행에 ‘생애 일주’라는 제목을 붙였다. 맥주를 살 수 없는 것만 빼면 그야말로 완벽한 여행의 밤이었다.

이전 16화 여전히 청춘이므로, 언제든 떠날 수 있다.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생애일주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