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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주 Nov 03. 2017

여전히 청춘이므로,
언제든 떠날 수 있다.

홍콩, 어른이 된다는 것

몰라야 할 것들이 생겼어. 잊어야 할 것들이 늘어만 가.

그리운 이의 소식을 찾아보는 것조차 이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되어 버렸어.


겁이 많아졌어. 일부러 외면하는 나를 발견해.

궁금한 것들이 하나 둘 사라지더니, 어떤 날은 어떤 것도 묻지 않고 흘려보냈어.


그렇게 언제까지나 푸르를 것만 같던 내 계절은 조금씩 시들어갔어.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익숙해져 버렸어.


“스타 페리 선착장으로 가 주세요”

 저녁 식사가 끝나자마자 급하게 택시를 불러 세웠다. 계단을 두 개씩 달려 내리느라 거칠어진 숨 사이로 뱉은 목소리가 바르르 떨렸다. 아침부터 종일 이 시간만을 기다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홍콩 섬 남쪽에서 출발한 택시가 가로등과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뿐인 긴 어둠을 지나자 화려한 홍콩의 빌딩 숲이 창 밖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막 숨을 가다듬은 나는 코가 반쯤 찌그러질 만큼 차창에 바짝 붙어 그 끝을 올려다보았다.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 대신 성탄 시즌을 기념하는 네온사인 그림이 반짝였고, 나뭇가지 사이로 스치는 바람 소리 대신 자동차 엔진음과 경적 소리가 들렸다. 홍콩의 야경이 그리웠던 나는 그것들이 도시 속 삼림욕처럼 상쾌했다. 곧이어 다가오는 커다란 관람차의 푸른 조명마저 숲 사이의 호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택시 문을 열고 내리자 숨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성탄절을 며칠 앞둔 12월, 출장으로 홍콩을 찾았다. 전날 밤, 짐 정리를 마치고 ‘미리 크리스마스!’라는 간지러운 문구를 블로그에 남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촉촉한 감상에 젖어 있었지만 도착 직후부터 공항에 돌아오기 직전까지 빼곡하게 채워진 일정표는 ‘일과 여행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친절히 알려줬다. 비에 흠뻑 젖은 홍콩 섬 북쪽 코즈웨이 베이(銅鑼灣)의 축축하고 미지근한 밤공기가 첫날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여유였다.


 성탄 시즌에 맞춰 열린 홍콩 해양 공원(香港海洋公園)의 이벤트를 취재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실내 공연장에선 만화경을 주제로 화려한 아이스 쇼가 펼쳐졌고, 공원 곳곳에 세워진 대형 트리 그리고 겨울 복장을 제대로 갖춰 입은 산타 클로스가 연신 ‘메리 크리스마스’를 내밀고 외쳤다. 덕분에 두툼한 니트 머플러와 오버 사이즈 코트 없이도 제법 성탄 분위기가 났다. 나는 언젠가 들은 남반구 어느 도시의 반바지 입은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떠올렸다. 처음으로 한국의 12월이 근사하게 느껴진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실 오후부터 잔뜩 조바심이 나 있었다. 이대로라면 평소 홍콩을 상상하며 기대했던 야경과 소호, 란 콰이 펑의 거리 풍경을 보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홍콩에서 가장 큰 테마파크를 둘러보는 동안 하루는 우습게 저물고, 미팅을 겸한 저녁 식사가 늦은 시각까지 이어졌다. 아홉 시가 지나서야 홍콩에서의 두 번째 밤이자 마지막 밤이 내 것이 됐고, 나는 망설임 없이 택시에 올랐다. 종일 두르고 있던 ‘어른’을 벗어던지고.


 스타 페리를 타고 침사추이로 건너가는 동안 적당한 배의 흔들림과 낮은 파도 소리가, 잠시 후 가우룽 공중 부두(九龍公眾碼頭)에서 본 빅토리아 하버(維多利亞港)가 내 설렘을 고조시켰다. 화려한 스카이라인과 조명, 빨간 돛을 단 유람선까지 내가 기대했던 홍콩의 낭만 그대로였다. 잠시 후, 부두 2층 난간에 기댄 채 야경에 빠져있던 내 등 뒤로 사람들의 외침이 들렸다. 등 뒤에 펼쳐진 거대한 스크린에 표시된 카운트다운에 맞춘 환호성이었다. 나도 함께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5, 4, 3, 2, 1.


 화려한 3D 라이트 쇼가 빅토리아 하버의 밤하늘 위에 펼쳐졌다. 부두로 달려오는 동안 어느새 소년이 된 나는 밤과 크리스마스를 핑계 삼아 오랜만에 크게 입을 벌려 웃고 환호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부두에 모인 이들 모두가 아이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서른둘의 어느 날, 퇴근길에 사표를 냈다. 그 날 아침까지만 해도 떠올린 적 없는 모습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상사와의 트러블로 인한 충동적인 결정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무렵 나는 꽤나 슬펐던 것 같다. 뱅글뱅글 도는 일상에 그저 관성으로 몸을 맡기며 무수히 많은 원을 그리는 동안 무엇인가 잃고 있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아서였고, 그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였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그것이 청춘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낯선 도시에 홀로 던져져 있었다. 여섯 시간의 시차, 그리고 일만 킬로미터의 거리만큼 떨어져 내게 물은 덕분이었다. 영하 25도의 혹한에도 빨갛게 얼어붙은 볼로 스케이트를 타는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아이들을 보며 나는 언젠가 내게 청춘에 대해 묻던 누군가의 질문을 떠올렸다. 붉은 밤을 밝힌 성탄 조명 아래서 내가 했던 대답은 호기심이었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 빅토리아 하버에서 다시 성탄절을 맞았을 때 나는 전보다 훨씬 푸르른 계절을 살고 있었다.


 두 번의 크리스마스 사이에 몇 번의 여행이, 그리고 아이들의 가르침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따라 짓고 손 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함께 보며, 그리고 때로는 나란히 곁에서 까치발을 들고 문턱 너머의 세상을 보았다. 여행에서 내가 발견한 가장 소중한 것들은 대부분 그때 배운 것이다.


 그 날 나는 자정이 넘어서야 평소 요금의 두 배가 넘는 바가지 택시를 타고 겨우 란 콰이 성을 빠져나왔다. 침사추이에서 소호 그리고 란 콰이 펑으로 이어진 홍콩의 밤거리도, 오랜만에 한아름 품에 안은 동심도 칭다오 맥주 한 병에 모두 잊은 나는 역시나 어른이었다. 그리고 어른은 다시 빠듯한 일정을 마친 후에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러기엔 슬픈 이야기지만 어른이 되는 과정은 상실과 망각의 반복이 아닐까. 내가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순수와 호기심, 생명력 같은 것들을 분명 언젠가 나도 가지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공부를 하고 일과 운동에 매진하는 것도 어쩌면 그 헛헛한 빈자리를 덮기 위한 어른들의 노력이자 자신을 속이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없으니 끝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물론 내 여행 역시 그 몸부림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나마 내 안의 소년과 조우한 것만으로도 내겐 여행을 이어갈 이유가 충분하다. 그리고 내가 종종 청춘의 색을 잃고 어른으로 여행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광장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으로,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쉿’하는 목소리와 두 팔을 활짝 편 실루엣을 빌려 그가 내게 했던 말들을 나는 이제 그 시절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있다.


나는 청춘이 나이가 아닌 마음과 걸음에 있다고 믿는다고.

그래서 나는 어른이지만, 동시에 청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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