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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Aug 05. 2015

3장. 모스크바 특급열차 아에로 익스프레스

세러미티예보 공항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특급 열차

달려라

모스크바행 특급열차
아에로 익스프레스 터미널, 셰러미티예보 공항

그토록 외웠던 그 것을 한 번 펼쳐볼 시간


제 이번 여행의 유일한 ‘준비’는 셰러미티예보 공항에서 모스크바 시내의 숙소까지 향하는 교통편을 외우고 또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오해와 불통이 난무했던 진땀 나는 러시아 입국 수속을 통과한 후 이제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본격적인 ‘실전, 모스크바!’에 다다른 제게 필요한 것은 마치 수십 번은 온 이 모스크바의 기차 하나 타는 것은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한 '표정', 빠르게 터미널로 가는 이정표를 찾는 ‘눈치' 이렇게 두 개였습니다. 괜히 제 몸통보다 커 보이는 28인치 캐리어를 샀다며 혼자 투덜대면서 아에로 익스프레스 터미널을 찾습니다. -만원밖에 차이 안 난다고 무리했어요-


이 곳 저 곳에서 모아 완성한 계획표가 생각보다 괜찮았던지 공항 바닥과 천장에 표기된 빨간 아에로 익스프레스 터미널 이정표를 수월하게 발견했습니다. 3층을 2층으로 오해해 3개 층을 계속 왕복하며 엘리베이터에 십여 분간 갇혀 있었던 미미한 실수 따위야 아무것도 아니죠. 터미널을 코 앞에 두고 비껴간 길 끝에서 황망한 공항 출구를 발견한 해프닝은 해프닝 축에도 끼지 못합니다. 하하하.

모스크바 여행의 시작

아에로 익스프레스 (Аэроэкспресс)


아에로 익스프레스 열차는 셰레메티예보 공항과 모스크바 시내를 왕복하는 직행 열차입니다. 도착지는 모스크바 중심부에 위치하는 벨라루스카야(Belorusskaya) 역으로 중간에 서는 곳도 없는 직행 열차이니 ‘시내 입성'을 위한 여행객의 고민을 한결 덜어주는 특급 교통수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운행 시간은 약 40분이며 한 시간에 약 세대 정도가 운행되더군요. 여행 가방을 놓을 자리가 열차 양 끝에만 마련되어 있는 점이 아쉽지만 제가 이용하던 시간대에는 좌석이 여유 있어 옆자리에 두셔도 크게 지장이 없겠습니다. -여행객들의 후기를 보니 이 열차가 가득 차는 시간은 거의 없는 것 같더군요- 여행 시작부터 짐을 잃어버리거나 문제가 생기면 곤란하니 가급적이면 넉넉한 좌석을 찾아 곁에 꼭 두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후에 모스크바 지하철을 이용하면서도 느낀 점이지만, 모스크바의 대중 교통 시스템은 서울보다 오히려 더 체계적으로 되어 있고, 사용 편의를 위한 장치도 잘 되어 있습니다. 아에로 익스프레스 역시 티켓 발매기의 숫자나 사용법이 저 같은 Stranger에게도 친절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영어도 지원하고요. 당장 표 한 장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하나 걱정했던 저는 이 장면에서 가슴을 한 번 쓸어내리며 드디어 대망의 첫 루블을 꺼냅니다. -오사카에서 많이 헤맸었거든요-


아에로 익스프레스의 이용 가격은 편도 400 루블로 왕복권을 구입하면 조금 더 저렴합니다. 당시 환율로 8천 원 정도니 조금 비싼 듯하게 느껴지지만, 교통 체증이 심한 버스를 타면 자칫 원치 않는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 공항에서 시내까지 에누리 없이 실어다 주는 이 열차 정도야 작은 사치 정도로 해 두자고요.


영수증 같은 성의 없는 티켓이 나오면 특급열차에 입성할 준비가 끝

-사실 처음엔 저거 버릴 뻔했습니다, 티켓이 따로 나오는 줄 알고요-


아아아, 저는 무사히 아에로 익스프레스 티켓 구매에 성공했습니다.


아에로 익스프레스 자판기는 공항에서 터미널로 진입하는 곳은 물론이고 열차 탑승구 앞에도 다량이 설치되어 있으니 당황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탑승까지 28분 남았습니다

공항에 도착한 시각이 네시 반이니 수속과 티켓 구매까지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네요, -여권 사진만 아니었어도- 생각보다 무난하게 통과했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 있게 플랫폼으로 가렸는데, 무서운 인상의 러시아 아저씨께서 알 수 없는 러시아어를 쏟아내며 저지합니다. 눈치를 보니 다음 열차 시각까지 기다리라는 것 같네요. 표정은 무서웠지만 다행히 손짓으로 시계도 가리켜주시며 친절하게 대해주십니다. '아 이런 게 러시아인의 친절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남은 시간을 계산합니다. 다음 열차가 여섯 시라고 하니  영락없이 여기서 삼십 분을 서 있어야 하는군요.


그래도 다행히 공항 내에 스타벅스부터 던킨 도넛, 버거킹 등 시간을 보낼 곳이 많이 있습니다. 세계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저 셋은 여행객들에게 정말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죠. 


아에로 익스프레스 티켓

이 티켓에 대체 무슨 말들이 쓰여 있는 걸까

왜 글씨가 제대로 인쇄가 안 되었을까

이제 경비가 얼마 남은 거지

이 표는 저 아저씨한테 두 손으로 드리면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며 여섯 시를 기다립니다.

출발, 특급열차!

플랫폼에 도착하기 전 또 다시 작은 해프닝이 있었지만 -티켓을 넣는 방식이 아니라 QR코드를 찍는 방식이더라고요, 다른 분들은 다 카드 쓰시길래..- 당황하지 않고 무사히 열차를 향해 갑니다. 빨간색 열차에는 친절하게 AERO EXPRESS라고 영어로 씌여 있어서, 그리고 다들 그 쪽으로 가기 때문에 손쉽게 승차합니다. 짧지만 깊이 정들었던 공항과 이제 잠시 안녕이네요, 걱정마 금방 다시 올 테니까.


열차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쾌적했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후에 모스크바 지하철 메트로를 이용하며 더욱 굳어집니다. 걱정했던 ‘숙소행’ 미션을 절반쯤 완성하고 열차에 앉아있으니 이제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과 안도감이 함께 몰려오면서 오늘은 숙소에서 일단 잠부터 자고 내일부터 여행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은 이제 막 여섯 시지만, 모스크바의 겨울은 여섯 시면 이미 한밤중이니까요. 게다가 생각해보니 저는 오늘 아침 한국에서 출발했습니다. 서울은 이제 열 두시가 되어가고 있으니 저는 어느덧 24시간 가까이 깨어 있군요.


다행히 열차에 사람이 많지 않아서 원하는 자리에 앉아 가방을 잘 거치(?)시키고 열차를 둘러볼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여행객은 잘 보이지 않고 -더욱이 아시안은 저 뿐이었던 듯- 여행 후 돌아오는 듯한 러시아인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시계를 보니 이제 여섯 시,

이제 저는 모스크바행 특급열차와 함께 달립니다.


'어서와, 이제 왔으니 뭐 어쩌겠어'라고 들리는 건 그저 제 기분 탓이겠지요?

모든 모스크바 여행객의 첫 목적지, 벨라루스카야(Белорусская) 역

벨로루스카야(Белорусская) 역에서 내려, 모스크바에서의 첫 사진.

40분간을 걸려 도착한 아에로 익스프레스의 목적지는 벨라루스카야(Белорусская) 역입니다. 모든 모스크바 여행객이 아마 가장 먼저 보게 되는 모스크바 풍경이 되겠죠. 같은 영하 7,8도라도 확연히 체감이 모스크바의 겨울 바람, 그리고 어딘지 불청객이 된 듯 아프게 때리는 눈발. 이 것이 제가 처음으로 밟은 모스크바 땅에서의 기억입니다.


여행객을 비롯해서 러시아인들도 많이 이용하는데요, 땅이 워낙 넓은 나라다 보니 국내 여행이나 혹은 출퇴근을 위해서도 사용되지 않나 싶습니다.


아에로 익스프레스의 종착역인 벨로루스카야역은 동명의 전철역과 나란히 붙어 있어 메트로를 통해 모스크바 시내의 숙소나 관광지로 바로 갈 수 있습니다. 출발 전 가장 걱정했었던 이 '공항에서의 교통편'이 이렇게 수월할 줄이야. 아에로 익스프레스 시스템은 여행객에게는 정말 좋은 교통 수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무사히, 모스크바에서의 첫 날 밤

혼자서 묵는 주니어 스위트룸.  좋을 줄 알았는데, 휑하고 외로웠어요

스트레스 가득했던 아침 공항 버스의 풍경과 열 시간의 비행이 마치 며칠 전 일인 것처럼, 여행 첫 날은 참으로 길었고 모스크바에서의 첫 밤은 그렇게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간단히 저녁을 먹고 숙소에 짐을 푼 시각이 이미 아홉 시였으니까요. 모스크바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눈 호텔 로비 직원과의 영어와 러시아어, 한국어가 섞인 3개 국어 배틀이 생각보다 피곤했던 탓일까요? 원수 같은 28인치 캐리어를 해체하고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운 호텔 앞 풍경을 따라 잠시 산책을 하며 미친 여행의 첫 날이 마무리됩니다.


칼바람에 속도가 붙은 눈이 뺨을 할퀴었던 날카로운 저녁 산책의 기억, 이 쯤 되면 이 미친 여행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질 만도 하지만


'아 모스크바가 역시 춥긴 춥네’라며 무던하게 알 수 없는 글자들 속으로 걷습니다.


모스크바와의 첫날밤, 호텔 창밖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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