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아메리카, 조지 모츠의 구운 양파 버거
햄버거 교수님이 선택한 뉴욕 스매시버거
뉴욕 최고 버거를 찾는다고? 우선 스매시버거부터 먹어 봐.
아 귀찮아. 아아 어떡하지, 나가기 싫은데.
많이 피곤했었나 봐요. 꿈에 그리던 뉴욕에서의 첫 번째 아침이었는데 말입니다. 자정 넘어 호텔에 도착해 네 시쯤 겨우 잠들었는데 일곱 시도 되기 전에 눈꺼풀이 떨어져 버렸지 뭐예요. 하지만 좀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던(싫었던) 저는 그제야 여행 계획을 짜 보기로 했습니다. #뉴욕가볼만한곳 #뉴욕맛집 #뉴욕핫플. 가이드 북에서 찢은 지도가 생명줄 같았던 시절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여행하기 쉬워졌죠. 뉴욕 관련 인스타그램 계정들을 보이는 대로 팔로우하니 곧장 이 동네 소식으로 피드가 가득 찼습니다. 오늘 소개할 버거집의 정보도 그 사이에 있었고요. 샛노란 배경 위에 그려진 익살스러운 털보 아저씨 그림과 ‘미국 최고의 버거 셀럽이 뉴욕에 버거집을 오픈합니다.’란 설명. 상호명도 글쎄 ‘햄버거 아메리카’랍니다. 이걸 그냥 지나칠 수 있나요. 바로 버거집 리스트에 추가하고 때를 기다렸어요.
위치 & 정보
주소 : 155 W Houston St, New York, NY 10012, United States | https://maps.app.goo.gl/gVeWhvBU1zCyReGq8
메뉴 : $7.25 (클래식 스매시 버거, 싱글) / $11.5(더블)
홈페이지 : https://www.hamburgeramerica.com/ | https://www.instagram.com/hamburger_america/
이 식당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둘입니다. 조지 모츠와 스매시버거. 오너이자 헤드 셰프로 일하는 조지 모츠(George Motz)는 미국 최고의 햄버거 전문가 그리고 ‘햄버거 교수’라는 별명으로 유명합니다. 고전적인 미국 햄버거 가게 8곳을 소개한 다큐멘터리 영화 ‘햄버거 아메리카’를 감독했고, 동명의 책을 통해 미국 햄버거의 역사를 다뤘습니다. Travel Channel의 쇼 ‘버거 랜드’ 진행, 뉴욕대 햄버거 관련 강의 등의 경력을 거쳐 마침내 2023년 뉴욕 소호에 버거집을 오픈했습니다. 상호명이 ‘햄버거 아메리카’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죠. 즉 이곳은 반평생을 버거맨으로 살아온 조지 모츠의 경험과 취향이 담긴 버거를 맛볼 수 있는 곳입니다. 운이 좋으면 그가 직접 만든 버거를 받을 수도 있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Mkpc5Q1Mgdc
다음으로 스매시버거에 대해 알아두면 좋습니다. 뉴욕을 포함한 미국 동부를 대표하는 이 햄버거의 특징은 바싹 구운 얇은 패티입니다. 전통적인 햄버거가 육즙과 풍미를 살리기 위해 상급의 고기를 두툼하게 뭉쳐 패티로 만드는 것과 다르죠. 뭉친 고기를 그릴에 올려놓은 뒤 1-1.5cm 두께로 얇게 눌러 구우면 겉면과 테두리가 갈색으로 변하면서 바삭하게 익는데 이때 고기의 풍미와 감칠맛이 살아납니다. 스테이크 굽는 방법에서 많이 언급되는 마이야르 반응입니다. 김치 부침개를 먹을 때 가장자리부터 손이 가는 이유도 이것입니다. 아, 붕어빵의 꼬리도요. 몇몇 식당에선 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굽는 동안 프레스로 패티를 눌러 놓기도 하는데, 이러면 구워지는 면적을 넓히고 온도를 높게 유지할 수 있겠죠. 대표적인 스매시버거집으로는 미국 3대 또는 5대 버거로 꼽히는, 이제는 한국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쉐이크 쉑이 있습니다. 현지에서는 스매시버거(Smashburger), 7번가 버거(7th street burger), 고담 버거 소셜 클럽(Gotham burger social club) 그리고 햄버거 아메리카를 여러 매체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소호와 그리니치 빌리지의 경계인 식당의 위치는 절묘합니다. 늘 복작대는 소호의 소란에서는 한 발 떨어져 있으면서 뉴요커들이 사랑하는 그리니치 빌리지의 정취를 일부나마 가져다 놓았거든요. 바로 앞에 오거리가 있지만 주변으로 나무가 무성해서인지, 건너편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놀이터 덕분인지 이 빨간 벽돌집 주변은 늘 여유로워 보입니다. 제가 다녀온 버거집들 중에는 막내 격인 식당인데도 겉만 보고 노포로 착각하기 십상인 이유죠. 물론 내부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요란하게 구워지는 패티의 갈색 비명, 주린 이의 정신을 아득하게 하는 연기와 향, 그릴 주변의 바에 둘러앉아 그 광경을 감상하는 사람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식사 시간 즈음 방문해 뉴욕 신상 버거 맛집의 바이브를 느껴보길 추천합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때를 잘 골라야겠죠. 따로 예약을 받지 않는 캐주얼 레스토랑이니까.
공간과 경험
제가 방문한 날은 2023년 11월 29일. 뉴욕에 온 지 일주일쯤 지나서였습니다. 전에 다녀온 사람들이 다들 그리니치 빌리지를 추천하길래 햄버거 아메리카에서 밥부터 먹고 가기로 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보던 식당이 눈앞에 있다는 감격에 벽돌집 사진을 몇 장 찍고 들어서는데 웬걸, 가게 안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찬 것 아니겠어요? 하마터면 다시 문 밖으로 튕겨 나갈 뻔했습니다. 그릴 주변 자리가 가득 찬 것은 물론이고 그 뒤로 서 있거나 가게 벽에 붙어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홀을 가득 채웠더군요. 게다가 그 사이를 방송용 카메라를 어깨에 멘 촬영 기사와 마이크 든 기자들이 오가는 통에 서 있을 자리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날이 정식 오픈하는 날이었더라고요. 덕분에 미국 아니 세계 최고 버거 셀럽이 버거 굽는 모습을 직접 보고 어느 방송사와 짧은 인터뷰도 했으니 운이 좋았다고 해도 되겠죠. “나 이거 먹으러 서울에서 날아왔어요!” 앞서 말했다시피 이 집을 알게 된 건 뉴욕에 온 이후입니다. 그래도 거짓말까진 아니고 시즈닝이 좀 과했다고 하렵니다. 서울, 날아왔다, 이거, 먹으러. 순서만 바뀌었지 틀린 말은 없으니까요.
햄버거 아메리카의 가장 큰 즐거움은 역시 조지 모츠 그리고 그가 패티 굽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주걱으로 납작하게 누른 패티, 치즈를 올린 뒤 뚜껑을 덮어 녹이는 과정, 손님들과 이야기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 사진으로만 봤던 버거 셀럽은 백발의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때문인지 단연 눈에 띄었습니다.
간판이 있는 네모난 건물은 작지만 옆 건물의 1층 벽을 터서 홀로 사용하기 때문에 가게 내부는 꽤 넓습니다. 낮은 계단으로 구분되는 복층과 비슷한 구조로 정문 앞에는 오픈 키친과 바 테이블이 있고 안쪽으로 소파 좌석과 작은 테이블들이 있습니다. 벽에 걸린 조지 모츠의 활동상과 구석에 놓인 머그컵, 티셔츠 등의 상품들에서 그의 유명세를 느낄 수 있었어요.
메뉴
https://www.hamburgeramerica.com/menus/
대표 메뉴는 조지 모츠의 구운 양파 버거(GEORGE MOTZ'S FRIED ONION BURGER). 그의 이름을 딴 버거로 얇게 구운 패티와 구운 양파, 아메리칸 치즈, 번의 간단한 구성입니다. 전형적인 뉴욕식 스매시버거도 판매하는데 구운 양파 버거에서 구운 양파를 생양파로 바꾸고 머스터드와 피클을 추가했습니다. 두 가지 버거 모두 패티 수를 기준으로 싱글은 7.5달러, 더블은 12달러에 판매됩니다. 이밖에도 다양한 파생 메뉴와 칠리도그 등을 시즌 메뉴로 선보이고 있다고 하네요.
따끈따끈한 신상 맛집을 그것도 오픈한 날 왔으니 바에 앉아 패티 굽는 모습, 버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일일이 보고 싶었습니다만 대기줄을 보니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직원에게 예상 대기 시간을 물어보니 ‘보시다시피…’라며 멋쩍게 웃을 뿐이었습니다. 테이크 아웃은 바로 주문이 가능하다기에 대표 메뉴인 구운 양파 버거를 싱글로 주문했습니다. 경험상 더블 스매시버거는 육향이 너무 강하고 기름져서 차라리 싱글 두 개를 먹는 게 낫더라고요. 주문한 지 몇 분 되지 않아 버거가 나왔고 바로 옆에 작은 놀이터 벤치에 앉아서 먹었습니다.
버거의 맛
버거 교수님이 만든 버거는 어떤 맛일까. 모두가 그것을 가장 궁금해할 것입니다. 벤치에 앉자마자 종이봉투에서 버거를 꺼냈습니다. 음식의 모양새는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접시에 담겨 나오는 버거와 종이에 싼 버거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겠죠. 거기에 내용물이 간소하고 번이 부드러워서 봉투에서 꺼낼 때부터 이미 찌그러져 있더라고요. 딱히 여기저기 찍을 필요도 없었던 못생긴 버거였습니다.
먹기 전에 뚜껑을 열어 보니 속이 새까맸습니다. 오래 구워 캐러멜라이즈 된 양파, 진갈색으로 굽다 못해 가장자리가 조금씩 탄 패티 때문입니다. 싸다고 좋아했더니 좋아할 게 아니었나,라고 투덜대며 한 입 무는데 오? 오?? 저도 모르게 눈이 감겼습니다. 감자번의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 입 안 가득 퍼지는 고기와 치즈의 고소 고소 컬래버레이션. 마이야르의 힘이란 참으로 강력했습니다. 한 입 가득 베어 무니 버거는 삼분의 일이 사라졌고 손에는 기름이 번들번들, 코 언저리엔 소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패티가 기름지고 육향이 강한데 이것이 호불호가 갈릴 수 있어서 향보다는 냄새라는 표현이 어울리겠더라고요. 재료들이 다들 부드러워서 씹는 둥 마는 둥 버거 하나 먹는 데 일 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무척 즐거웠습니다. 대단할 것 없는 재료지만 이것들이 모여서 이토록 입을 즐겁게 하니 과연 사랑받을 만합니다.
저는 이 집의 감자번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항 없이 부드럽게 씹히면서 입 안에서 뭉쳤을 때는 쫄깃하게 씹히는 게 감자 옹심이나 감자떡을 씹을 때가 떠오르더라고요. 물론 쫄깃함만 따지면 1/10도 되지 못합니다만. 다양한 뉴욕 버거를 먹으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저렴한 버거집에서 부드러운 브리오슈 번, 감자 번을 많이 사용하고 가격이 비쌀수록 퍽퍽한 호밀번을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건강에 좋은 식재료를 높게 치는 이 동네 사람들의 요구에 맞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행인지 저의 번 취향은 부드럽고 쫄깃한 쪽이라 저렴한 스매시버거들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제가 느낀 스매시버거의 최대 장점은 맛있는 버거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소 낮은 등급의 고기를 사용하더라도 시즈닝과 마이야르 반응을 이용해 충분히 입을 즐겁게 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제가 먹어 본 스매시버거들의 가격은 대부분 10달러 미만이었습니다. 물가 비싼 뉴욕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데 이것 역시 큰 힘이 됐을 것입니다. 조지 모츠가 스매시버거를 선택한 배경에 같은 이유가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그의 경험과 취향이 반영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그와 상관없이 햄버거 아메리카는 뉴욕 어느 버거집 못지않은 경험을 단돈 7달러에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최고의 버거를 기대하기보단 뉴욕 그리고 뉴욕 버거를 즐긴다는 기분으로 다녀와 보세요.
번 : ★★★
패티 : ★★★
구성 : ★★
가격 : ★★★★☆
분위기 : ★★★☆
뉴욕 냄새 풀풀 나는 버거가 궁금하다면 간식 삼아 잡솨 봐요.
혹시 알아요? 스매시버거가 입에 꼭 맞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