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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Sep 24. 2015

#10 밟다 보면 보이는 것들

걷는 여행자의 자전거 유랑(流浪)

가끔은 조금 빠르게 걸어봅니다
그럼 다른 것들이 보이거든요



걷는 여행자에겐 걷는 게 가장 큰 낙이지만 그렇다고 매일 걷기만 하냐면 그건 아닙니다. 가끔은 한걸음 한 걸음씩 딛는 게 답답할 때가 있거든요. 멀리 있는 풍경에 단숨에 다가가고 싶거나 세상을 정지화면 보다는 움직이는 영상으로 보고 싶을 때, 조금 빠르게 걷는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몇 가지 방법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자전거'가 있습니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걷는 느낌까지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까요.



빠른 걸로 치자면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있고 하늘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비행기나 파도 위에 설 수 있는 배까지 참으로 다양한 수단이 있겠지만, 걸음과 가장 닮은 수단을 꼽자면 역시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풍경 사이로 스치는 자전거가 제격입니다. 게다가 비록 속도는 비교할 수 없지만 페달을 밟으며 빠른 걸음으로 걷는 느낌을 받거든요. 걷는 것과 많이 다르면서 또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페달 걸음의 매력입니다.


비록 주말이나 휴일에만 간혹 허락된 짧은 유랑, 혹은 유람이지만 자전거로 걷는 길엔 확실히 직접 걷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빠르게 달리며 걷는 것보다 훨씬 많은 장면들과 마주할 수 있고, 이때다 싶으면 즉시 브레이크를 밟아 세울 수 있으니까요. 한 때 그만의 즐거움의 즐거움에 빠져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고 제 옷보다 자전거 용품을 사모은 적까지 있었습니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심지어 같은 곳에서도 걸음의 속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여행은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여행 속에서 발견한 장면과 남긴 기록들 역시  그동안의 것들과 다릅니다. 오늘은 걷다 알게 된 것들 대신, 밟다 보면 보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그동안의 걸음보다는 가볍고 경쾌한 페달처럼, 잠시 편하게 재잘재잘 떠는 수다가 될까요?



여름방학처럼 빠르게 지나는 풍경

그 속에서 한 장을 낚는 짜릿함


벚꽃 필 무렵, 여의도 | 2015년 봄


빠릅니다, 장면 하나하나를 감상하며 걷던  그동안의 것과는 확실히 비교할 수 없이 빠른 걸음입니다. 자동차나 오토바이에는 비할 수 없지만 자전거 역시 빠르면 일 분만에 수 킬로미터를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거든요.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들도 분명 다릅니다. 종류는 물론 그 다양함 역시 큰 차이가 있죠. 많은 분들의 라이딩이 '이동' 혹은 '운동'에 있다면 제가 자전거를 타며 주로 하는 것은 단연 '경치 감상'입니다. 가까이로는 일초에도 수없이 스쳐 지나는 장면들이 있고 멀리엔 아무리 밟아도 다가갈 수 없을 것 같은 풍경 하나가 있거든요.



걸어서 하는 여행이 가만히 바라보는 '응시' 같다면 자전거로 하는 여행은 끊임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탐색'에 가깝습니다. 장점을 꼽는다면 정말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갈 수 있는 곳도 많아서 종일 걸어야 할 수 있는 서울 여행을 불과 몇 시간만에 해치우기도(?) 합니다. 물론 그 '깊이'를 논한다면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다채롭게 즐기기는 이만한 것을 찾기 힘듭니다.


자전거로 하는 여행은 자동차와 오토바이로 달리는 것보다 주변을 둘러보기 쉬워서 좋습니다. 원할 땐 언제든지 멈출 수  있을뿐더러 종종 두 손을 놓고도 탈 수 있죠. 그래서 종종 자전거를 타고 집 앞 하천길과 한강변 자전거 도로를 무작정 달리곤 합니다. 안장 뒤에 작은 카메라를 하나 챙겨서 달리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 나타나면 즉시 자전거를 세워 카메라를 꺼내 사진 몇 장을 빠르게 찍습니다. 가방에서 카메라를 찾아 꺼내고 전원을 켜고 사진을 찍은 후에 다시 가방에 넣는 일련의 과정이 귀찮기도 하지만 다녀와서 나홀로 오늘 유랑의 후기를 남기다 보면 그래도 잘했다 싶습니다. 걸을 때는 볼 수 없던 이 '다른 장소, 다른 속도'가 만들어준 장면이 꽤 매력적이거든요. 분명히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길 위 완벽하게 새로운 풍경




앞서 이야기한 것들이 저를 이 자전거 유랑으로 이끄는 이유겠죠. 대부분의 경우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는 나란히 뻗어있지만 종종 완전히 다른 길로 달리기도 합니다. 이 길 위에서 걸을 때에는 볼 수 없는 풍경들을 보곤 하죠. 지나치기만 할 뿐 사람 손이 많이 닿지 않은 길가에는 풀들이 아무렇게나 피어있고 걸음으로 오기 너무 번거로운 그 길엔 사람 없이 버려진 듯 묘한 장면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 곳에서 멈춰 찍은 사진들 역시 다른 것들과 분명 다른 느낌이라 좋아합니다. 사람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세련되지 않아서이기도 합니다. 빠르게 달리며 마음에 드는 장면을 빠르게 '포착'하는 과정은 다채로운 음식들이 있는 뷔페 식당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고르는 것처럼 즐겁습니다. 무엇보다 효율과 돈을 위해 천편일률적으로 만든 도시의 색과 형태가 이 곳에는 없어서 좋습니다.



그 속에서 발견하는 것들


가끔은 안장에 달린 가방마저 떼고 편하고 여유 있게 라이딩을 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마음대로 되지는 않죠. 봄의 길목에서 핀 꽃이나 화창한 날씨가 만든 멋진 반영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세우고 스마트폰으로나마 사진을 찍습니다. '카메라 챙길걸'이라면서 후회를 하긴 하지만 그래도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가 썩 좋아서요. 그 순간의 즐거움을 남기기엔 충분합니다.



사람, 사람, 사람


여름 라이딩은 힘들고 힘들어 | 2014년 여름


기껏해야 수십 분 상관의 거리를 다녀오는 라이딩이니만큼 도시의 풍경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도시 안엔 저처럼 자전거를 타며 여가를 보내시는 분이 정말 많죠. 그들의 달리는 모습도 이 색다른 풍경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만듭니다. 때로는 앉아 쉬던 중에 마주친 아이들의 움직임도요. 공통점은 뜨거운 도시 한복판에서는 다 말라 사라진듯한 '여유'를 이 사람들에게서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는 모습, 그늘에 앉아 쉬는 모습 모두 '좋아요'. 그들의 여가와 휴식에 방해가 되지 않게 길 옆으로 빠져 사진을 찍다 보면 어쩌면 여유라는 게 그렇게 챙기기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몸을 일으켜 나오는 수고 정도는 해야 하지만 그 정도면 아주 값 싸지 않나요?


돗자리를 챙겨 나와 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는 분의 모습을 본 후로 저도 종종 라이딩의 목적지가 생겼습니다. 가까운 한강공원에서 캠핑 체어를 펴고 앉아 책을 읽으며 간식을 먹는 도전(?) 말이죠. 가만히 앉아있는 것은 성격상 맞지 않지만 몇 번 하다 보니 혼자 즐거울 방법이 꽤나 많구나 싶습니다.



한 번쯤 도전하게 만드는 상상 이상의 매력




제 라이딩이야 줄곧 잠깐의 '나들이'였지만 딱 한번, 아주 무모한 길을 달린 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그 날의 그 도전은 이제 막 재미를 붙인 제 욕심이 불러온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가을이면 종종 찾던 두물머리를 이번엔 자전거를 타고 가면 어떻겠냐는 자문자답 후에 이뤄진 일이었죠. 삼사십 분 슬렁 다녀올 때는 몰랐는데 자전거 타는 것도 정말 힘들더군요. 달리다 쉬다를 반복한 게 몇 번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즈음에 두물머리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이 지나가던 길에 발견한 장면들은  그동안 제가 모르고 살던 것들이었습니다. 다리 위를 자동차로 지날 때 이 다리는 단순히 강을 넘기 위한 수단이지만 다리 아래에서 보니 꽤나 아름다운 그림이었고 자전거로 산을 관통할 수 있는 동굴이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죠. 이제 막 터지기 시작한 한강시민공원의 코스모스들은 한여름처럼 땀에 젖은 제게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이 풍경을 '조금 더, 조금 더' 보자며 무거운 페달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었던 것은 힘들게 큰 카메라를 매고 간 보람을 느낄 만큼 그 날 두물머리의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는 것입니다. 비록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려 도착하자마자 해가 지는 풍경을 봐야 했지만 네 시간 넘게 달려 결국 도착했다는 묘한 성취감과 이제 다리가 쉴 수 있다는 안도감 덕분에 더 기억에 남는 일몰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습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이 방식이 종종 이렇게 새로운 용기를 나게 하나 봅니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제가 발견한 풍경들은 다른 걸음이었으면 볼 수 없는 것이었고 자동차와 지하철 안에서 스쳐지나기엔 아까운 것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종종 떠올립니다. 이 날의 그 장면들이, 그리고 제 무모한 걸음이.



가끔은 조금 다르게 걸어보세요

걷는 속도만으로도 여행은 달라지니까요



빠르게 이동하기 위하는 수단인 자전거는 현대인들에게 페달을 밟은 행위 자체의 즐거움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활동 자체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 역시 그 매력으로 여가를 보내고 있고 그에 한 가지를 더해 그 길 위에서 발견한 장면들을 감상하고 감탄하는 즐거움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카메라가 든 작은 가방을 달고 자전거를 타며 느낀 것은 여행을 결정하는 것이 '장소'나 '사람'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걸음의 속도가 때로 여행을 완전히 바꿔놓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새로움이 몇몇 분들에겐 아주 소중할 것입니다.


이번 주말엔 오래간만에 한 번 달려볼까 봐요,

곧 겨울이 올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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