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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Sep 23. 2015

#9 가을의 선물, 구리 코스모스 축제

가을꽃 가득한 그 날을 기다리며

아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 뭔지 알아?



아직도 소녀감성을 간직하고 계신 꽃 같은 우리 어머니는 요즘처럼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때면 어김없이 물으십니다. 몇 년째 묻고 있지 않냐는 다 큰 아들의 핀잔에 '그랬어?'라고 수줍게 웃으시며 꽃을 향해가시죠. 문득 '올해는 아직 어머니가 별 말씀이 없으시네'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어느새 가을이 부쩍 다가왔나 봅니다.


구리 한강시민공원, 2014


세상에서 봄이 제일 좋다는 어머니도 꽃만큼은 이 가을의 코스모스를 가장 좋아하십니다.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시죠. 워낙 어렸을 때부터 들어서인지 누가 제게 가장 좋아하는 꽃이 뭐냐 물으면 자연스레 코스모스라고 대답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그 사랑을 더 깊게 만드는지 몰라도 가을이 되면 꼭 하루는 시간을 내 코스모스를 보러 갈 정도로 깊어져 버렸습니다. 물론 사진도 찍습니다. 꽃 사진이 많지 않은 제 보관함에도 유독 코스모스 사진은 십 수 장이 있습니다. 분홍, 보랏빛 오묘한 색도 색이지만 일 년 중 날씨가 가장 좋은 가을이라 유독 예쁘게 나왔거든요. 


매일 걷던 길에서 마주친 꽃을 '언제 피었지'라며 반가워하는 것이 가을 코스모스의 매력이라지만 제대로 보기 위해 해마다 빠지지 않고 찾는 곳이 있습니다. 비현실처럼 세상 가득 코스모스 꽃결을 볼 수 있는 구리 한강시민공원이 그곳이죠.



사실 한강 시민공원은 봄에는 유채꽃 축제, 가을엔 코스모스 축제로 꽃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이미 유명한 곳입니다.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담으려는 사진가들의 리스트에도 빠지지 않는 곳이죠. 한강변 제법 넓은 땅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진 꽃밭은 직접 보지 않고는 그 감동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일 년 내 잊고 살다가도 이맘때쯤 되면 스물스물 이 곳이 그리워지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며칠 전부터 문득 그리웠어요 이 곳이. 이 꽃결이.


찾아보니 올해는 10월 3일부터 11일까지 구리 코스모스 축제가 개최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축제 인파와 공연 등 어수선한 분위기를 피해 축제 조금 전 그러니까 이맘때쯤 다녀오는 편입니다. 그래서 2015년 코스모스를 만나기 전, 지난 사진들을 잠시 다시 돌아보려 합니다.


구리 한강시민공원, 2013


'이 꽃길이 어디까지 이어질까' 혹은 '이 길이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


이 꽃밭 앞에 선 사람들의 감정은 다양하겠지만 미움이나 짜증은 없을 것입니다. 꽃 싫어하는 사람이 있냐지만 크게 감흥 없는 사람은 분명 있거든요. 저도 그런 편이었으니까요. 그래도 마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구리 한강시민공원의 코스모스길은 그 규모와 컬러 만으로도 누구에게나 놀라운 경험입니다. 이삽십분은 쉬지 않고 걸어야 겨우 그 끝을 볼 수 있다는 이 거대한 꽃밭 속에선 모두가 소년, 소녀입니다. '꽃 따위에' 넋을 빼앗겨도 이곳에서만큼은 창피하지 않습니다.


구리 한강시민공원, 2012


어떤 색의 코스모스를 간직하고 계신가요?


분홍색, 보라색 또는 흰색 혹은 그 사이.

다 같은 색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코스모스의 색은 참 다양합니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꽃의 색도 모두 다르겠죠. 가을 코스모스 축제는 내가 어떤 색의 꽃을 좋아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수만 송이의 꽃을 보다 보면 거짓말처럼 한 송이가 마음에 들어오고, 그 형태와 색이 이번 가을로 기록될 수도 있거든요. 꽃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기에도, 이각도 저 각도 사진을 찍기에도 좋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코스모스 한 송이를 찍고 싶은데 그러려면 잡고 있는 그 사람의 손을 놓아야 할 것 같아 포기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이 꽃길이 끝나지 않길 원하는 이유 역시 이 깍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이라도 걸음이 어긋나면 손을 놓을까 봐, 발 순서마저 맞추며 걷습니다.


이 가을 꽃길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기 가장 좋은 길입니다. 걷는 것 만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한 듯 많은 추억이 생기고, 잡지 않던 손을 낚아챌 용기가 생기기도 하거든요. 조금 창피할 수도 있지만, 허리만큼 자란 키다리 꽃들이 망설이는 손을 가려주니 한 번쯤 과감해지기에는 이 번만한 기회가 없죠.


뜨거운 여름이 가고 가을을 맞이하는 요즘은 다시 사랑을 시작하기 가장 좋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설렘의 시작에 이 가을 축제가 있고요. 그래서 매해 구리 코스모스 축제에는 연인들이 가득합니다. 아마 제가 축제기간을 피해서 이 곳을 찾는 이유 중에 그것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언젠간 저도 꼭 연인의 손을 잡고 이 길을 걸을 수 있길 바랍니다. 그 날은 카메라는 챙기지 않을 거예요. 스마트폰 카메라 화질이 좀 안 좋으면 어때요.


구리 한강시민공원, 2011


신나요, 신나!


사람들은 의도하던 그렇지 않던 공교롭거나 절묘한 장면들을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꼭 주인공이 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일수록 더욱 많은 '씬'들이 많들어지죠. 만약 사진을 위해 이 축제를 찾으셨다면 아주 좋은 선택입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배경위에, 뛰는 아이들의 움직임은 생동감이 넘치고 모두가 행복한 표정이라 어딜 보아도 함께 기분 좋아지거든요. 그래서 이 곳에선 종종 무슨 사진을 찍어야 할지 헛갈립니다. 광활한 코스모스 밭의 풍경, 그녀 혹은 아이들의 미소, 꽃 한송이 접사 중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요? 즐거운 고민이 깊어만 갑니다. 곧 해가 질 텐데 말입니다.


구리 한강시민공원, 2013


가을 하루는 짧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 곳에서는 더 짧은 것 같아요


이 꽃밭에선 시간이 참 빨리 갑니다. 함께 몇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 사진 몇 장 찍었을 뿐인데 벌써 저 멀리 뉘엿뉘엿 해가 떨어집니다. 화려한 꽃 색들도 조금씩 어두워지니 한없이 아쉽습니다. 내 축제는 이제 막 시작인데 말이에요. 하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운 좋게도 오늘 올해 최고의 노을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변이라 유독 더 빨리 떨어지는 해, 축제도 그만큼 짧지만 그즈음 코스모스 파티에 이은 오늘의 축제 2부가 시작됩니다. 매일매일이 최고의 날씨 같은 한국의 가을, 이 곳에서 만나는 해거름 역시 다른 계절에는 볼 수 없는 멋진 장면이죠. 풍경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은 오늘 축제가 끝났다며 떠날 채비를 하지만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머무르면 또 다른 축제와 마주합니다. 그리고 저는 꽃 못지않게 이 순간의 기록들을 많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구리 한강시민공원, 2013


올해도 기대합니다


매해 실망시키지 않았던 그 곳, 코스모스 세상.

올해도 그 날쯤이면, 아니 어쩌면 이미 가득 꽃 피웠겠죠? 2015년 가을 저의 베스트 씬 역시 코스모스 가득한 이 곳에서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손꼽아 이번 가을을 기다리셨던 여러분에게도 멋진 선물이 되길.


올해 저는 저 못지않게 코스모스를 사랑하시는 어머니와 함께 가보려고요.

과연, 얼마나 좋아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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