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으로 되돌아보는 우리 주위 풍경들
어떤 색을 좋아하세요?
혹은 오늘 어떤 색을 가장 많이 보셨나요?
세상의 모든 것은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실제 색이 아니라 물체가 반사해 우리 눈에 닿는 빛의 색이라고 할지라도- 색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꽤나 강렬해서, 때때로 형상보다 색을 통해 감각적으로 물체나 풍경을 인지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색이 나의 생활 그리고 건강을 좌우한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고 있습니다. '컬러 테라피'라는 단어가 더 이상 생소하지 않은 것처럼요.
운 좋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많은 색을 가지고 있는 땅이고, 그 색들을 표현하는 방법과 힘도 대단합니다. 뚜렷한 사계절이 있고, 산과 바다를 충분히 가지고 있으며, 남다른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까요. 아마 그래서 우리가 그동안 색에 대한 간절함을 느끼지 못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이 회색 도시에 던져지기 전까지.
해외 여행 기회가 늘어나면서 얻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조금 더 다양한 곳에 가고 싶다는 욕심이 첫 번째이고, 새삼 내가 사는 이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감탄이 두 번째입니다. 그중 요즘 후자에 빠져있죠. 너무 익숙해서 혹은 흔해서 별 것 아닌 것 같던 내가 사는 도시 그리고 이 나라의 풍경들이 종종 깜짝 놀랄 정도로 아름다울 때가 있거든요. 그토록 갈망하던 프라하에서도 보지 못한 그림 같은 노을을 한강공원에서 보게 되고, 친구가 보내준 시드니의 화창한 날씨도 내 방 창 밖 풍경만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조금 뻔하고 유치하지만, 제가 그동안 국내를 다니며 본 장면들을 일곱 가지 색으로 분류해 함께 보려 합니다. 한번쯤 가보았을 장소, 평범한 장면들이지만 함께 보는 분들에게는 새삼 우리가 이렇게 다양한 색을 보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눈으로 하는 여행, 모니터로 즐기는 컬러 테라피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네요.
우울증과 무기력 해소에 도움을 주며 신진대사를 촉진시킨다. 특히 혈액 순환에 탁월하며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시키는 '활력'의 색.
빨강은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색이면서, 동시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색이기도 합니다. 가을 단풍과 잘 익은 과일 등 우리가 볼 수 있는 빨강의 이미지는 '성숙함'과 '활력'이 아닐까요? 제가 보고 담은 빨간색도 그랬습니다. 소매물도에서 본 믿을 수 없는 붉은 노을은 종일 섬 곳곳을 걷느라 피곤했던 저를 당장에 뛰어나가게 할 만큼 강렬했고, 그렇게 빨강은 믿을 수 없는 감동적인 장면들을 채운 색이었습니다.
빨강과 마주한 순간은 언제나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감탄하며 놀라웠던 기억도 함께요.
그래서 앞으로도 가장 많이 보고 싶은 색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색이라 참 다행이죠.
빨강과 마찬가지로 신진대사에 효과적이며 소화 흡수를 돕는다. 에너지 순환을 돕는 에너지 가득한 색.
주황색은 쉽게 볼 수 있는 색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서 눈을 뗄 수 없는 감동이 있죠. 아름다운 노을을 떠올리면 대부분 이 주황빛 하늘을 떠올리지 않을까요? 그래서인지 인간이 만든 '밤의 조명' 역시 이 주황색에 가장 가깝습니다. 다른 여러 색 속에 섞일 때보다 검정 하늘에 유유히 뿌려져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고요. 주로 해가 질 때, 그리고 그 후 어두운 밤에 발견하게 되는 색이라 잘 느끼지 못하지만 이 색은 에너지를 가득 품고 있는 색이라고 합니다. 아, 그래서 우리가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놀 수 있나 봅니다.
제가 마주한 주황색 중 가장 아름다운 색은 동물원 홍학의 몸에서 본 선명한 주황색이었습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도 저렇게 선명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동물원만 한바퀴 돌아도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을 손쉽게 찾을 수 있겠지만, 이 주황색만큼은 그 감격이 남달랐던 기억입니다.
지적인 능력을 자극하는 '현명함'의 색. 더불어 소화불량과 변비에 효과가 있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봄 그리고 가을의 공통점은 이 노란색이 가장 돋보인다는 것입니다. 개나리와 유채꽃이 알려주는 봄소식이 그렇고, 모두를 감상에 젖게 하는 가을길 낙엽의 색 역시 노란 빛이니까요. 언제나 우리의 기다림 끝에 있는 이 색은 그래서 유독 반갑습니다. 특유의 따뜻한 느낌은 사진의 '감성'을 이야기할 때도 가장 앞자리를 차지합니다. 따라서 한 장의 사진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양념'으로 꼽을 수 있죠.
제 기억에 남은 노랑도 그렇습니다. 늦은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받아 더욱 진해진 유채의 노란색, 그리고 하늘을 가릴 듯 가득한 은행잎 사이로 노랗다 못해 황금색으로 영근 가을빛까지. 그 순간의 감동 때문인지 주변에서 노란색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면 저도 모르게 생각합니다, 어딘가로 여행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긴장과 두통을 해소하는 치유의 색.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며 심장과 혈압에 좋다.
어릴 적 어머니는 책상 유리 아래 초록색 부직포를 깔아주셨습니다. 녹색이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면서요. 가정 통신문마다 주위가 산만하다는 평가가 있었던 걸 보면 크게 효과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색을 보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 사실입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던 이 색이 어째 우리가 사는 곳이 회색으로 칠해지면서 너무나도 귀하고 간절한 색이 되었습니다. 주말마다 녹색을 찾아 몇 시간을 떠나게 되기도 했고요.
그런 것을 보면 녹색은 '마음의 고향'같은 색이 아닐까 싶어요. 주변에 가득할 때는 소중함을 모르지만 잠시만 보이지 않아도 이내 그리워지거든요. 제 녹색 프레임 안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들은 다른 색보다 유난히 행복해 보입니다. 물론 그 이유가 색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바라보는 저까지 함께 웃는 것을 보면 그 시절 어머니의 노력이 영 헛된 것은 아니었다 싶어요.
불면증을 해소하며 두통 완화시켜주는 등 안정을 찾게 해준다. 면역력 증진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으며 특이한 점으로 모공 수축에도 영향을 준단다. -믿거나 말거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입니다. -근데 왜 저는 잠을 잘 못 이루는 걸까요?-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배경인 화창한 하늘이, 늘 꿈꾸는 바다가 제 맘속에서 이런 빛깔이니까요. 세상에 파란 빛이 가득하면 모든 장면이 평소보다 멋져 보입니다. 아무렇게나 그린 것 같은 흰 구름이나 울퉁불퉁한 섬 혹은 능선의 실루엣이 이 파란 배경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아름다울까 싶어요.
이상적인 자연의 색이다 보니 주변 사물에서 이렇게 새파란 색을 보면 어쩐지 위화감이 들기도 합니다. 사진 속 새파란 철문은 제주 어딘가에서 발견했는데, 이렇게 완벽한 파랑이 하늘도 바다도 아닌 길 위에, 그것도 사람이 만든 형태로 있어서 왠지 거부감마저 들었던 기억입니다. 적어도 이 색만큼은 땅 위보다는 파랗고 싶은 곳들 몫으로 남겨두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 곳에서 보고 싶습니다.
특별한 설명을 찾지 못했어요, 아마 파랑과 같지 않을지.
파란색이 아주 진하면 남색이라지만 남색 풍경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의 마음은 파란색과 사뭇 다릅니다. 보통은 한차례 비가 지나간 후의 선명한 밤의 색이 이렇습니다. 일 년에 몇 번 마주하기 힘든 구름 한점 없는 날씨 아래의 바다가 종종 이렇게 보이고요. 남성들의 슈트나 여성들의 원피스에서 '가장 무난한' 색으로 통하지만 자연에서 남색을 만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남색은 여름이 끝나가던 어느 날 한강변 노을을 삼키던 하늘의 색이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화려한 노을 색을 가린 이 하늘이 원망스러웠지만 완벽하게 검푸른 이 하늘이 오히려 너무 새로워서 기억에 남았거든요. 이전까지는 남색은 검은색과 진배없는 어둠의 색으로 생각했는데, 이 날 생각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이 어두운 실루엣에서도 충분히 섬세한 것들이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상상력과 창의력 증진시켜주는 놀라운 색. 더불어 반복해서 보면 자존심도 회복된다네요(?)
보라색은 참 오묘합니다. 세상의 색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거든요. 더군다나 자연에서 이 색을 마주하게 되면 기분이 왠지 묘해집니다. 종종 이 색은 비현실 같은 장면에 함께하거든요. 동시에 있기 어려운 파랑과 빨강이 섞인 색인만큼 자주 마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만든 조명이나 조형물에서 주로 찾게 됩니다.
사실 저는 보라색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제게는 좀 '억지'같은 색이거든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모스 꽃이 이 색이고 종종 보정으로 사진의 색을 틀어버릴 때 마지막에 바로 이 보라색이 되곤 합니다. 어쩌면 이 색을 무척 좋아하지만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자칫 빨강과 파랑을 모두 잃게 될까 봐. 그래서 요즘은 보라색을 만들기보다 적극적으로 찾아보려 합니다. 쉽지 않겠지만, 사랑하게 될 때까지.
그렇다면 더 없이 보람있겠습니다.
조금 억지스럽지만 이렇게 색으로 제 걸음들을 정리하다 보니 그동안 멋진 건물이나 누군가의 표정보다 눈 앞을 채운 색에 더 크게 반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피사체가 무엇인지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장면에 뿌려진 색이 감각을 통해 훨씬 빠르게 마음에 닿는 것은 당연하겠죠?
늘 해외 여행을 꿈꿨지만 정작 제가 사는 이 땅 대한민국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지는 충분히 알지 못했습니다. 한국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낸 적도 있었으니까요.
생각해보면 이렇게 다양한 색을 가진 땅이 또 있을까 싶어요. 어쩌면 우린 굉장한 곳을 여행 중인지도 모릅니다. 매일매일, 끊임없이.
내일은 어떤 색들과 함께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