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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Jul 30. 2015

#5 우리의 사진, 기꺼이 더 실패해주마

흔들림의 미학 - 망쳐서 더 소중한 나의 기록들

이 사진, 흔들렸네요?

이 말을 곧 '버리세요'라는 뜻으로 사용하지 않으셨나요?


너무나 당연하고 따분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찍는 사진의 대다수는 소위 '망친' 사진들입니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걸작이 나온다면 그것을 더 이상 걸작이라 부르지 않는다는 격려의 말(?)도 있지만 망친 사진 앞에서 나오는 한숨은 어쩔 수 없어요.

볼 때마다 아쉽고 맘이 아픈데, 그래서 더 의미있는 것들이 있어요.

오늘의 이야기는 '실패'에 대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보여드리기 낯 뜨거운.


어느 누구도 '망친' 사진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먼저 제 것들을 꺼내 놓아 보려고요. 이제부터 보여드릴 사진들은 '흔들려서' 망친 사진들입니다. 너무 빠르게 지나간 장면이라 혹은 찍은 제가 너무 다급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제가 카메라 조작에 아직 미숙해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잊을 수 없었던 순간이며, 아쉬움에 더욱 진하게 남은 장면이기도 하죠.


망한 사진은 훌륭한 조연이라는, 그리고 주연을 더욱 빛나게 한다는 그런 따분한 말 보다는 이 사진들을 제가 버리지 못하는 이유를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 왜 그랬냐고 물으신다면 그저 '너무 좋아서 그랬다'고 할 수 밖에요 -

집 혹은 숙소에 돌아와 오늘의 사진들을 보며 미소를 짓기도 하지만 종종 깊은 한숨을 쉬게 됩니다. 정말 멋진 장면을 찍었다며 혼자 흐뭇해했는데 돌아와서 보니 흔들려서 쓸 수 없는 사진이 되어버렸거든요. 어둡거나 밝은 사진은 보정으로 '소생'시킬 수 있겠지만, 흔들린 사진은 마음에 묻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종종, 누가 봐도 흔들리고 실패했음에도 끝끝내 버릴 수 없는 묘한 사진들이 있지 않으신가요?

대부분은 찍는 순간 제가 받은 특별한 감정들 때문이라 다른 분들에겐 그저 '흔들린 사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그 아쉬움마저 함께 감상하며 간직하고픈 사진이요.


물론 제게도 그런 사진들이 있습니다,

망쳤다는 이유로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모스크바 붉은 광장, 2015

이 사진은 저의 '망친 사진 역사'를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진입니다. 영하 20도의 모스크바, 크리스마스 축제가 한창인 붉은 광장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이 폭설 속에서 유난히 반짝여서 아이를 안은 아버지를 따라가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워낙에 어두운 밤인데다 빠르게 움직이는 아버지의 걸음을 따라가며 찍는 바람에 이렇게 흔들려 버렸지만요. 하지만 이 순간 제가 아이의 눈을 보며 느꼈던 감정은 아직도 또렷하게 남습니다.


물론 남들에게 자신 있게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이 사진을 흔들리게 만든 모스크바의 어둠과 아이 아버지의 급한 걸음, 그리고 제 설렘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겨울 10박 12일의 모스크바 여행을 돌이켜볼 때 빠지지 않고 떠오르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만약 이 사진이 적절한 셔터 속도와 조리개 값으로 의도했던 선명한 사진이 되었다면 어땠을까요? 남에게 보여주고 설명하기 좋은 사진은 되었겠습니다만, 이렇게 마음 한구석을 콕 찌르는 장면이 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 추워서였는지 모스크바에선 유독 실패가 많았습니다 -


프라하, 2015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평범한 장면은 체코 프라하의 어느 골목길입니다. 그것도 이십여 년간 꿈꿔온 여행의 첫날 밤에 찍은 사진이고요. 중세 유럽 건축물이나 낭만적인 밤거리를 굳이 앞에 내세우고 싶지 않습니다. 꿈같은 여행의 첫 밤에 잠 못 이루고 돌아다니다 마주친 이 장면은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무언가를 기다리는 청년의 시선과 실루엣이 그 자체로 꽤나 멋졌거든요. 그래서 그가 움직이기 전에 재빠르게 셔터를 누른다는 게 이렇게 흔들린 사진이 되어버렸습니다.


별 것 아닌 이 사진을 지우지 못하고 간직하는 이유는 이 사진을 찍은 그 밤에 저를 가득 채웠던 설렘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흑백 사진을 보며 저는 이 밤 프라하의 주홍빛 가로등, 골목길 옆 언덕에서 내려다 본 프라하 시 야경 같은, 이 장면과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떠올리게 되거든요. 이 사진 속 청년은 멈춰 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이 밤 저는 일 초가 아까워 골목길을 구석구석 다녔습니다. 다른 사진에선 그 진한 감정들을 떠올릴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이 사진이 좋습니다.


-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 보다는 망치더라도 찍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


부산, 2015

지난 겨울, 2년 만에 부산을 찾았을 때는 빛이 부족하지도 않았는데, 큰 설렘 같은 것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 망쳐댔는지 모르겠어요. 2박 3일 동안 찍은 사진 중에 제대로 된 게 오십 장이 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아마 다른 때와 조금 다른 여행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동안 여행의 첫 번째 준비물이 '사진기'였던 제가 요즘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찾고 있거든요. 이 부산 여행이 그랬습니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못내 아쉬워 사진기를 둘러 매긴 했지만 되도록 파인더보다는 눈을 통해 보고 찍기 좋은 곳보다는 걷기 좋은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해운대와 광안리에서 보낸 시간이 특히 그랬어요. 오랜만에 만난 부산 바다들이 아무리 반가워도 몇 장 뻔한 장면들을 담고 나면 그 후부턴 지루한 시간이었는데, 이 날은 해가 중천에 있을 때부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깊은 밤까지 가만히 '머물러' 보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많은 것들을 보았죠, 평소처럼 '기념 사진'만 몇 장 찍고 떠났으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싶을 만큼.


돌아와서 본 사진들엔 마음이 떠난 저의 셔터질(?)이 그대로 보였지만, 꽤나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한 번은 사진기 없이 떠나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물론 그 곳에서 가슴을 치며 후회하게 되더라도 말이죠.


- 삼각대를 챙겨야겠다는 생각도 가끔 하지만, 그것으로 제 여행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요 -



우리는 더욱 많은 '망친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진을 '걷다, 문득' 찍는 저는 그 실패 빈도가 다른 분들보다 훨씬 높습니다. 갑자기 마주친 멋진 장면에 허겁지겁 카메라를 들어 올려 몇 컷을 '다다다다' 누르는 습관상 노출이 맞지 않는 건 물론이요, 대다수는 흔들린 사진이 되기 일쑤거든요. 그래서 한 장면에서 많게는 수십 장의 사진을 찍기도 하죠. 그래야 한 장 성공할까 말까 하니까요.


그 사진들 중에 우리가 '선택'하고 '감상' 그리고 '간직'하게 되는 사진은 불과 몇 장이지만, 남은 사진들  그중에서도 우리 마음을 잠시나마 아프게 했던 사진들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망친 사진이지만 나쁜 사진은 아니었다고.



기회가 있으시다면,  그동안 제대로 봐 주지 않았던 여러분들의 '망친' 사진을 다시 한 번, 천천히 감상해보세요. 그 안에는 여러분의 가슴이 뛰게 하는 것들과 앞으로 마주치게 될 장면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이 당신이 '사진을 찍는 이유'가 아닐까요?



물론 앞으로도 저는 '망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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