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걷는 길에서 나는 유난히 두근거립니다.
기억하나요, 그때 그 길
특별한 길에 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저 걷기만 해도 좋은 혹은 유난히 가벼웠던 걸음.
네, 방금 떠올리신 그런 추억 말이죠.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 보았는지 떠올리려면 아마 모든 기억력을 총동원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걸어본 길의 수를 세는 건 참으로 바보 같은 짓이에요. 당장 매일 출퇴근 길에 들어서는 골목길만 해도 족히 수십 개가 넘고 때때로 무심히 걷다 왼편이나 오른편에 열린 길을 눈으로 들어섰다 빠져 나오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해도 이십여 년 산 동네에 아직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길이 많습니다.
그럼 이런 질문은 어떨까요.
떨림을 준 길이 있었죠? 분명히,라고.
전부는 아니더라도 기억 속 수 많은 길 중 몇몇 길은 주체할 수 없는 설렘이었을 테고 또 어떤 길은 가슴 내려앉는 막막 혹은 먹먹함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있던 것들보다 흥얼거린 내 콧노래로만 기억하는, 혹은 도무지 기억해보려 해도 남의 무용담처럼 떠오르지 않거나 너무 또렷한 기억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길도 있겠죠.
우리는 생각보다 다양한 감정들을 그 곳에서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셀 수 없는 희로애락 중 제가 언제까지고 남겨두고 싶은 것은 새로운 길에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두근거림'입니다. 처음 걷는 길은 늘 제게 설렘이나 묘한 흥분 같은 것들을 안겨 주거든요.
무섭지 않냐고요? 어제 만난 소개팅녀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나 면접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 심지어 난생처음 보는 음식을 입에 넣기로 결정하는 것 보다도 훨씬 수월했습니다.
친구 하나 없는 도시에 십 수 시간을 날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처음 마주친 이 길에 나를 던져놓는 것입니다. -저는 굳이 이렇게 표현합니다- 방향도 목적지도 모르는 이 곧고 막막한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 찾아오는 미세하지만 특별한 떨림은 다른 곳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우연이던 아니던 이제 들어선 이 길은 모든 것이 처음이고 또 새것입니다. 다행이다,라고 한 숨을 내뱉은 후 그 속으로 파고듭니다. 제 여행의 시작은 매번 꼭 같습니다.
길 [명사] : 사람이나 동물 또는 자동차 따위가 지나갈 수 있게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
연신 두리번거리며 '낯선 사람' 티를 내던 그 날, '걷기만 해서 뭐가 되겠어?'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그때까지 길은 당연히 이동을 위한 '수단'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운이 좋았던 것일까요, 그 길에서 많은 것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내는 길이 '목적'이 되었습니다.
처음 걷는 길에서 느끼는 생소함은 곧 '감탄-원더(Wonder)-'으로 이어집니다. 펼쳐지는 모든 장면들이 마치 역사상 유일의 1/60초 마냥 특별하고 그럴듯하게 보이는 마법 같은 경험이죠. 이것들은 멈추지 않고 걸어온 나를 위한 선물입니다.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짓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표정도 나를 위해서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 장면은 오롯이 그 날 혹은 이 여행의 씬(Scene)이 될 테니까요.
그래서 처음 만나는 길을 걷는 시간은 마치 큰 선물 상자를 열어 안에 든 작지만 마침 꼭 필요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는 것 같습니다. 한겨울 모스크바의 꽁꽁 언 골목 곳곳엔 크리스마스 선물이 놓여 있었고, 돌아오니 새 봄이 머리 위로 이것저것 예쁜 것들을 뿌려 주더군요. 그것들은 색이나 향, 소음 같은 형태로 기억됩니다. 노래 한 곡보다 먼저 끝난 길에서 일 년 치 이야깃거리가 생기기도 하죠.
길을 목적지를 위한 수단이 아닌 여행의 일부로 생각하면 시시각각 변하는 길의 표정들이 보이고 그 위에 떨어진 감정들이 밟힙니다. 그럼 자연스레 쉬지 않고 '처음 만나는 길'을 찾게 되죠. 마치, 하루라도 빨리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싶은 3월 새학기 때 처럼요.
파리의 에펠탑, 로마의 콜로세움,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 등 우리는 몇몇 장소를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지만 돌아온 후 남은 장면들의 상당수는 평범한 골목길에서 만난 것들입니다. 정확히 어디쯤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길이지만 두고두고 그 길을 떠올리며 여행을 이야기하곤 하죠. 왠지 나만 아는 곳 같아 목소리에 더 힘이 들어갑니다.
저 역시 성 바실리 대성당보다는 닫힌 문을 돌아 강추위를 뚫고 걸었던 끄레믈린 외곽 길이, 프라하 성보다 새벽 햇살이 떨어진 신시가지의 텅 빈 골목길로 여행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들은 직접 찾아가 걸으며 얻은 것이기에 특별한 의미를 갖죠. 지금도 지난 여행을 떠올려보면 빠듯한 일정에 외면한 관광지 몇 곳보다 조식 시간에 맞추느라 발길을 돌려야 했던 그 골목길의 끝자락이 더 궁금하고 아쉽거든요. 그 모든 길은 걷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몰랐을 길이기에 더욱 특별합니다.
처음 걷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새로운 것'들은 이전에 머무르고 다녀간 이들이 남겨놓은 메시지입니다. 그것들은 굳이 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건네고 질문을 합니다. 놀랍게도 그것들은 하나하나 감정과 표정을 갖고 있어 나를 기쁘게 하고 슬프고 안타깝게 하기도 하며 어떻게 알았는지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합니다. 그것들 중엔 알아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공감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고 남겨둘 것과 지나치면 이내 잊힐 것들이 있습니다.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 한 켠에 20여 년 전 떠난 빅토르 최를 추모하는 벽이 있습니다. 우연히 그 곳에 닿게 된 날, 생전에 그가 좋아했던 것들이 너저분하게 쌓인 그 벽을 보며 저는 수백 명의 사람들과 둘러앉아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한 경험을 했습니다. 노비스벳의 한 벽에 새겨진 'I Love PRAHA'를 보며 사랑에 빠지는 듯한 착각을 했고, 갖가지 위로의 말이 적힌 한강 다리를 처음 걷던 날엔 언젠가 맘이 무너지는 날 꼭 다시 올 것을 다짐합니다. 우리는 원하는 만큼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처음 걷는 길에선 그들도 저도 서로에게 열정적이라 더 좋습니다.
처음 걷는 길엔 익숙한 것이 단 하나 있어요,
다름아닌 '걷고 있는 나'
언젠가 낯선 땅, 처음 걷는 길에서 의지할 것 즉 익숙한 무언가를 찾게 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름 아닌 걷고 있는 나 자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서툴지만 조심스레 저는 처음으로 저와 대화를 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 내어 수다를 떨게 되었습니다. 후에 생각하니 무척 창피한 일이지만 재미있게도 그 수다를 통해 저는 제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습니다. 새 길을 일부러 찾아다니고, 몇 시간을 날아 가게 된 원동력이 아마 그 날의 추억이 아니었을까,라고 돌이켜봅니다.
마침내 그 길 끝에서 보게 되는 것은 '나'입니다.
설렘에서 반가움으로, 처음 걷는 길엔 경쾌한 시작과 함께 분명한 맺음이 있어 좋습니다.
이제, 곧게 뻗은 새 길이 조금은 더 환하게 보이시나요?
다행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 설렘의 고작 0.1% 만큼만 열어 보았으니까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이 떨림, 부디 여러분들도 함께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