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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Dec 05. 2015

나를 만든 카메라, 라이카 M (LEICA M)

상 - '그래서 이 카메라가 왜 좋다고?'


LEICA M (Typ 240)



이 카메라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척 간단하지만 매우 어렵기도 합니다. 적잖은 사람이 한 번쯤 꿈꾸는 빨간 로고의 클래식한 카메라. 이렇게 단 한 줄로 설명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주머니 속 스마트폰으로도 걸출한 작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현재에 이 크고 무거운 카메라는 별 기능도 없이 과거 종군 기자들이 만들어준 이름값을 바닥까지 긁어 팔아먹고 있는 '자본주의 욕망의 심벌’이라 해도 크게 반박할 말이 없습니다. 현재도 이 카메라를 이름보다 가격으로 기억하는 분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죠.


  

하지만 이것은 여전히 아주 인기 있는 카메라이며 그 가치는 단순히 '장사치의 기술’로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지금도 이 카메라로 세계 곳곳을 누비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하는 이야기입니다. 혹 이들이 이러한 ‘실체 없는 가치'에 대해 좀 더 깊이 이야기하고 싶은 상대를 발견하게 되면, 이 무거운 쇳덩이를 책임지고 있는 ‘포토그래퍼’ 즉 ‘나'에 대한 이야기가 필연적으로 꺼내어 펼쳐집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듣기에 무척 길고 지루 한데다 잘 참는다 해도 결국 결론을 내는 데  실패합니다.



그래서 이 카메라가 왜 좋다는 거야?

이 카메라를 어느 정도 알게 됐다 싶을 때 평가하고 싶어 미루고 미뤘던 것이 일 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카메라는 제게 무척 낯선 카메라이고 쉽게 제게 속을 내보이지 않는 물건입니다. 사용할수록 결국 이 카메라를 제가 길들일 수 없을 것 같아 현재까지 느낀 이 사진기의 가치에 대해 설익은 평가를 해보려 합니다.


깡통 카메라의 오만함 혹은 뻔뻔함에 대해


너를 처음 만난 날


‘깡통’이라는 말이 딱 알맞습니다. 그나마 단단하고 예쁜 황동 껍데기에 별 볼 것 없는 카메라의 그야말로 기본적인 기능만 넣어 만들어진 카메라가 라이카 M입니다. 2400만 화소 35mm 풀 프레임 이미지 센서, 1953년부터 생산된 수십 종의 라이카 M 렌즈를 사용할 수 있는 M 마운트 시스템. 라이카 M (Typ 262) 출시로 이제 한 페이지 전 제품이 된 라이카 M (Typ 240)이 가진 장점은 이 둘 뿐입니다. 오랫동안 고수했던 ‘필름’이 ‘디지털 이미지 센서’로 바뀐 것 외에는 22년 전 출시된 M7과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




LEICA M Typ 240의 주요 사양을 살펴보면,  


- 디지털 Rangefinder 카메라
- LEICA MAX 2400만 화소 CMOS 센서 
- 노출 제어 A / M
- ISO 200 ~ ISO 6400 (확장 ISO 100 지원)
- 1/4000 - 60초, 동조 속도 1/180초
- 3 fps 연속 촬영
- 1920  x 1080 동영상 촬영
- 3인치 92만 화소 TFT LCD
- 노출 보정 -3 EV ~ +3 EV

- 139 X 42 X 80mm
- 680g


M8/M9에 이은 세 번째 디지털 M 시리즈로서 센서 기술의 발전으로 고화소 도입, 고감도 이미지 품질의 향상이 이뤄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한정된 M 시스템 안에서의 얘기일 뿐 ISO 3200의 고감도 이미지는 손바닥만 한 콤팩트 카메라보다 못할 때도 많습니다. LCD를 이용한 라이브 뷰 촬영이나 있으나 마나 한 Full HD 동영상 기능은 오히려 ‘M 시스템의 품격을  훼손시킨다’는 거센 반발을 받아 최신 제품에선 다시  삭제되는 수모를 겪었고 Wi-Fi 무선 통신이나 터치 스크린 같은 최신 기능은 이제 감히 추가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초라함을 ‘본질에 대한 질문’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한 라이카의 뻔뻔함에 박수를 보냅니다. 고성능 센서와 편의 기능을 넣는다고 그 본질이  손상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본질은 사진기가 아닌 사진가 안에 있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 빈약함이 '얼마 남지 않은 것'들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은 인정하기 싫지만 분명히 겪었습니다. 이 카메라로는 필터 효과나 파노라마 사진을 찍을 생각을 감히 해 보지도 않았고, 스마트폰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열악한 JPG 이미지 덕분(?)에 필름 인화  못지않은 RAW 보정 과정을 거쳐야 사진 한 장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가격을 생각하면 정말 오만하기 짝이 없지만 이제는 그 답답함과 기다림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시선을 바꾸는 카메라, 나를 만드는 사진기


제게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이 카메라의 특징과 다양한 한계들이 제가 장면을 보는 시선을 확실히 바꿔 놓았거든요. 그것이 수동 초점과 이중 합치라는 이 RF 카메라 특유의 ‘불편함’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제 분수에 넘치는 카메라를 대하면서 생긴 꼴사나운 ‘진지함’ 혹은 ‘허영’ 때문인지는 확답할 수 없습니다만 불만 없이 손쉽게 그럴듯한 사진을 안겨주던 커다란 풀 프레임 DSLR을 하루아침에 내치고 지극히 낯선 네모난 쇳덩어리 깡통 사진기를 쥐고 난 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작게는 찍는 것이나 거리, 자세, 매는 가방의 형태 같은 것들이 변했고 크게는 장면을 보는 제 시선이 바뀌었습니다.


수동 초점의 느린 호흡이 강제로 떠 안겨 준 신중함은 조금 더 오래 장면을 보는 변화로 이어졌고, 렌즈를 포함한 부피가 작아지면서 거리 스냅 사진과 여행 사진을 찍을 때 몸과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워졌습니다. 특히 스트릿 포토를 촬영할 때 DSLR 카메라를 든 제게 꽂히는 시선들이 많이 사라진 것이 좋았습니다. 물론 친구의 말처럼 ‘수백만 원짜리 카메라를 쓰니 마음 자세가 바뀌는 것 아니냐’는 말 역시 부정할 수 없습니다.






거리계 연동(Rangefinder) 카메라

초기 RF 카메라 형태인 바르낙 카메라와 현재의 라이카 M, 기본 원리는 같습니다

RF(Range Finder)는 현재 라이카만이 활발하게 이 RF 방식의 카메라를 제작하는 유일한 회사일 정도로 이제는 도태되다시피 한 카메라의  형태입니다. 거리계 연동 방식의 이 카메라는 DSLR 카메라에 비해 뷰파인더의 시차가 크고 고성능 AF 시스템에 밀려 지금은 소수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죠. 물론 이 말에 틀린 점은 없습니다. 다만 참고 사용하다 보면 이 RF 시스템의 장점이 없진 않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고 생각보다 많습니다.


거리계 연동 카메라(Rangefinder Camera) 구조 <출처 : http://www.rogerandfrances.com>

  

<출처 : http://camerasize.com/compare/#312,389>


반사 미러가 없는 RF 시스템은 SLR/DSLR 카메라에 비해 비교적 소형화로 제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두께를 많이 줄일 수 있어 스트릿 사진이나 여행에 보다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현재는 더욱 작은 미러리스 카메라가 다수 출시되어 있어 이 장점은 빛 바란 이야기가 되었습니다만, 이전에 사용하던 풀프레임 DSLR 카메라와 비교했을 때 이 점은 분명한 장점이었습니다. 별 차이 없이 크고 무겁긴 하지만 렌즈를 포함한 전체 시스템의 부피가 줄어들어 여행을 떠날 때 휴대하기 좋았고 미러 쇼크가 없어 실내 촬영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DSLR 카메라가 셔터를 누를 때 미러가 올라가며 잠시 파인더 내 상이 보이지 않는  ‘블랙아웃’도 RF 카메라에서는 남의 이야기라 그런 작은 면에서의 변화가 전반적인 기동성을 향상시켜줬습니다.


무엇보다 카메라 장비가 간소화되면서 제가 주로 찍는 여행 스냅 사진을 찍을 때 주위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것이 가장 만족스러운  변화였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소매치기들에게는 오히려 제가 더 눈에  들어왔겠지만 말이죠. 하나 남은 것이 있다면 수동 초점의 한계인데 처음엔 그야말로 ‘황당했던’ 이중 합치 방식의 초점 검출도 이제 몇 년째 사용하다 보니 나름 구형 DSLR 카메라 수준의 속도는 갖추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마저도 귀찮을 때는 높은 조리개 값에 과초점 촬영을 주로 사용합니다.








프레임 라인의 매력

- RF 카메라의 뷰파인더 구조 -< 출처 : http://www.digitalbirdphotography.com>

눈에 보이는 화면과 결과물이 95% 이상 일치하는 DSLR과 달리 RF 카메라는 렌즈에 맺히는 상과 파인더로 보이는 상에 차이가 있어 대략적인 장면을 파인더를 통해 확인하고 셔터를 누르게 됩니다. 기분상 약 80%, 피사체와 가까워질 때면 때때로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황당한 뷰파인더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장면과 저를 만나게 하는 유일한 창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 부정확성에 의지해 장면을 정리하기에 이릅니다. 프레임을 신뢰할 수 없게 되면서 장면의 모든 요소를  조율하겠다는 꿈을 버리고 대략적인 구도에 확실한 ‘주제’를 선정할 수 있게 되었달까요? 물론 이것은 이 카메라에 적응하며 겪은 개인적인 경험이며, 아직도 사진의 주변 정리를 위한 트리밍을 할 때가 부지기수입니다.  

- 렌즈 초점거리에 따른 프레임 라인 변화 -<출처 : http://www.rangefinderforum.com>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좋은 것은 이 부정확한 뷰파인더의 ‘프레임 라인’ 표기 시스템입니다. 라이카 M의 광학 뷰파인더는 렌즈의 화각에 맞게 촬영 영역을 선으로 표시하는 고전적인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제가 사용하는 35mm 렌즈의 경우는 그래도 파인더의 상당 부분이 촬영 영역으로 표시됩니다. 그 밖 모서리의 일부 공간이 ‘버려지는’ 장면이 되는 구조인데 이 점이 프레임을 ‘디자인’ 하는 데 유리합니다. 이 자투리 공간에서 보이는 것들이 무척 많습니다. 프레임 안으로 무심히 걸어오는 행인의 움직임과 곧 발생할 ‘찰나’를 이 공간에서 종종 발견하고 셔터를 준비하는 즐거움은 RF 카메라를 접하며 새롭게 느낀 것들입니다. 때문에 종종 35mm 프레임 밖의 일들에 더욱 주목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프레임 안에 없는 '장면 밖 세상’에 말이죠. 한 눈에 담을 수 없는 세상을 35mm 속에 가둬 둔 것인데, 그 밖의 세상이 방해가 되면서도 때로는 과정이 된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 Typ 240은 전자 뷰파인더를 이용한 라이브뷰 촬영이 가능합니다 -<출처 : http://www.overgaard.dk>


장면에 집중하는 계기


앞서 설명한 이 카메라 특유의 시스템이 기존 DSLR 촬영의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던 제 습관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한동안 사진 한 장을 찍는 데 많게는 십 초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담배 연기를 뿜으며 멋진 실루엣으로 걷던 행인은 이미 지나간 지 오래였고 기다리던 그녀의 굳은 표정만 담겨 있었습니다. 연습 혹은 훈련 치고는 꽤나 길고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이제 그런대로 구형 DSLR 카메라 정도의 속도를 제 왼 손이 갖게 되었다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분명 기쁜 일입니다. 초점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니 새삼 이 카메라의 뷰파인더가 매우 큰 편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마치 증강 현실처럼 장면을 프레임 라인 안에 재단하는 과정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DSLR처럼 전광석화 같은 촬영은 할 수 없지만 이제 초점 링을 돌리느라 진땀 나던 시간을 파인더 속 프레임을 보며 결과물을 상상하는 데에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진을 찍는 즐거움은 크게 늘었습니다. 불편함이 편리함이 된 아이러니한 결과입니다.


- 일단 막 찍어보는 거죠 -

이 카메라를 사용하며 장면에 보다 집중하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연속 촬영’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 장면에 적게는 서너 장, 많게는 이삼십 장을 촬영해 모아 보는 것인데요, 가로/세로를 바꿔서 찍기도 하고  종종걸음으로 반대편으로 가 다른 관점으로 찍어보기도 합니다. 물론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투자한 시간을 이렇게라도 보상받으려는 심리도 시작 어딘가에 있었겠지만 일 초에도 몇 차례나 변하는 장면의 흐름을 넉넉히 끊어내  그중 한 장을 선택하는 것이 이제는 빠지면 허전한, 제 습관이 되었습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처럼 다른 렌즈를 마운트 한 여러 대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닐 정도는 되지 못하지만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찍는 사진이 많아지니 한 장이나마 건질 확률도 그만큼 올랐습니다. 물론 나머지 수천 장의 처치 곤란한 사진들이 골칫거리로  따라붙기도 합니다. 다행히 아직 까지는 하드 디스크가 버텨 주고 있습니다.

- 하지만 곧 바닥이 보이겠죠, 다 비슷한 사진인데도 지우기가 쉽지 않아요 -



달려가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힘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저는 이 카메라를 들고 조금 더 ‘용감해’ 졌습니다. 사막이나 밤길 뒷골목을  탐험한다거나 익스트림 스포츠에  동반한다는 의미의 용기가 아닌 ‘장면에  다가가기로 한 결정’입니다. 풀프레임 DSLR 카메라와 코끼리 코 같은 긴 렌즈를 사용하던 저는 바보 같지만 ‘부끄럼’이 많았습니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이댈 때 그들은 종종 저를 의식했고, 저는 그것을 지레 ‘염려’ 했거든요. 그래서 눈 앞에 보이는 매력적인 ‘찰나’를 그냥  흘려보내기도 했습니다.



반신반의로 ‘그나마 작은’ 이 카메라를 들고 나서 보니 생각보다 그들의 시선이 다가선 저에게서 자유로워진 것을 느꼈고 저도 하루에 반 발짝씩 다가가 셔터를 누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그동안의 부끄럼이 많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됐죠. 들쳐 메는 장비가 작아지니 촬영 후 그들과 대화 한 마디 나누기도  수월해졌습니다. 종종 먼저 말을 건네는 외국인도 있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이 카메라 비싼 거 아니냐’란 호기심이었지만요. 아, ‘단속 나왔냐’는 질문도 이제 더 이상 받지 않습니다.


조금 더  다가갔으면 좋았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포기하면 편합니다


- 물론 한 없이 다가갈 수는 없습니다, 접사가 되지 않는 건 정말 불편해요. 특히 제가 사랑하는 음식 사진 찍을 때 -


당연하다 여겼던 조금의 ‘줌’도 허락되지 않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단초점 렌즈는 결국 저를  훈련시켰고, 이제는 불편하다  투정하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애증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렌즈가 M 시스템의 최대 매력이라 떠들고 다닙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 모스크바




- 2편에서 계속


https://brunch.co.kr/@mistyfriday/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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