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일기 10
꿈을 꾸었지. 論山에서.
너의 꿈을.
너무 생생했어.
언덕에서 풀잎은 떨고 있었고
노을이 있었어.
생생한 꿈.
논산에서였어.
너의 꿈을 꾼건.
끈적끈적한 꿈.
그렇지만 황홀했어.
너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
너는 알기나 했던가
벚꽃 휘날리던 黃山
각개전투훈련을 마치고
꿈속에서 너를 만나다니.
생생했어.
그리고 행복했지.
세상과 단절하고 싶었고
내무반 누구와도 얘기를 하지 않던 그 때,
난 말 없는 훈련병이었고
나를 지탱했던 건
바람에 휘날리던 풀잎.
괴로왔던가?
아니다.
뭐, 그리 힘들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어.
서울을 떠난게 오히려 좋았어.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거든.
군대는 적당히 안온했지.
편안한 생활에서 벗어나
적당한 긴장감을 갖게 한 조직이었어.
그 때는 오히려 잠이 필요했으니까.
육신은 힘들어도 정신은 맑아졌던 시기.
그 때 푸른 하늘을 봤지.
그리고
꿈을 꾸었지. 그 때.
너의 꿈을.
눅눅한 꿈.
끈적끈적한 꿈.
짧았지만
그러나 행복했어.
너를 만난 것만으로도.
많이 행복했지.
그게 아마 너희 동네
놀이터였었을거야.
그네에 앉았던가?
아니면
시소에 앉았던가?
떨리는 목소리.
조마조마한 느낌.
날 잡아주길 바랬지.
참, 어설펐어.
늘 아마추어야.
이루어지지 못해서 아쉬운건가.
아니면 지나간 시절은 늘 애틋한건가.
벌써 40년 전,
참 많이도 흘렀구나.
기억의 한 페이지.
생생한 꿈
황홀하지만 아쉬웠던 꿈.
넌 여전히 말없이 앉아 있었고
무슨 말을 할까?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더듬어도
세상은 여전히 변함이 없고
꿈 속에서만
사랑은 완성되네.
3년뒤,
龍山에서 흰 언덕이랑
풀잎을 얘기하던 날,
나는무척 醉했었고
하얀 언덕이 또 너를 그리 사랑했다고
내게 말하고
술이 더 취하더라.
난 사실 알고 있었다고.
너만 모르고 있었다고,
용기 없는 놈은
늘
마음속으로만
꿈꾸고,
그리고
그 날을 기억하고,
하얀 언덕은
언제나 시니컬하게 살아가고 있고,
세월은 흘러
나만 기억한다.
아니
그들도 기억할지 모르지.
그게 무슨 대수라고.
생생한 꿈만
생생하게 기억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