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소헌기(內素軒記)
내소헌기(內素軒記)
가평에 조그마한 거처를 마련하고
집이름(堂號)을 “내소헌(內素軒)”이라 지었으며,
이제 스스로 기문을 짓는다.
무릇 세상에 태어났으면 한 조각 흔적이라도 남겨야 하느니,
이렇게 가평(加平)에 내 삶을 기록하는 바이다.
전부터 조그마한 꽃밭이라도 가꾸고 싶은 희망이 있었는데
오늘에야 아파트에서 벗어나 경기도 가평 땅에 정착을 하는구나.
예전부터 나는 이름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다.
소풍을 가거나 수학여행을 가거나 하면,
집이나 입구에 걸린 현판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그런데 거는 현판이 다 뜻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도 뭔가 걸고 싶어 하였다.
마침 고 2때 내 방이 생겼다.
형이랑 같이 방을 쓰다가 고 2때야 처음으로 작지만
나만의 공간이 생겼을 때
난 방 입구에다 “가어재(佳峿齋)”라고 써 붙였다.
나의 공간, 나의 우주, “아름다운 산이 보이는 집” 이라는 뜻으로 지었다.
산이름 어(峿) 자(字)를 찾느라 옥편을 꽤 뒤적였다.
서울의 배봉산(拜峯山)아래에 살던 때였다.
가평으로 이사와 집 이름을 짓고 싶어 하였으나 아내가 이런 호사취미를
반대하였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주장하여 이제 동의를 얻어 7개월 만에 내 집은 이름을 갖는다.
내소헌(內素軒)은
“안으로 소박함과 겸손함을 지향하며 살아가는 집”이란 뜻이다.
이 세상이 얼마나 외관만 치중하는가!
사람의 내면을 가볍게 본 지는 오래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충실함을 포기할 수는 없다.
소(素)는 대부분 흴 소로만 알지만,
회남자(淮南子)에 “소이불시(素而不飾)”이라고
질소(質素)하면서 장식(粧飾)이 없다는 뜻으로 씌어 있다.
나의 삶 또한 번지르르하지는 않지만
질박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있어서,
이 素를 취하였다.
제주에 사는 선비, 설황(雪篁)형님의 집이름(堂號)이
“내죽헌(內竹軒)”이다.
제주에 근무할 때 만난 설황형님은
그림같은 집에서 온유하며 서로 존중하며 순리대로 살고 있는 존경할만한 부부이다.
아마 누구든 만나보면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설황형님 부부의 삶을 닮고 싶어서 이름까지 닮게 지었다.
집 안에 대나무가 있기도 하지만, 어머님의 성함이기도 한 중의적인 표현이다.
나는 집 안에 대나무가 없기도 하고
담고 싶기에 “내소헌(內素軒)”으로 하였다.
누구나 무언가를 목표로 삼는다.
나는 설황형님의 정신과 그 삶을 목표로 살겠다.
이러한 뜻으로 집이름을 정했으니
이제는 온전히 나와 아내의 몫이다.
늘 질박하면서 겸손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기문을 이제야 짓는다.
又人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