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하재기(汝霞齋記)
얼마 전에 나의 벗 하서(荷墅)가 자기의 당호(堂號)를 여하재(麗霞齋)로 하면 어떻겠냐고 하기에, 노을 자체가 예쁜데 거기에다 곱다는(麗) 뜻을 더하면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차라리 고울 여麗를 너 여汝로 바꾸어 여하재(汝霞齋)로 하여 “여의도에서 노을을 바라보는 집” 혹은 “너도 노을처럼 아름답게 살아가는 집”으로 하는 게 어떤가? 되물은 적이 있어 이제 거기에 따른 기문(記文)을 쓴다.
요즘엔 모두들 나(吾)를 강조하기에 바쁘다.
어디에든 나(吾), 나(吾), 나(吾)만 내세운다.
이런 시대에 너(汝)를 생각하는 것만도 미덕이다.
하서(荷墅)는 누구인가?
“연꽃으로 지은 농막”이란 뜻처럼 그는 소박하다.
모두들 나만을 내세우는 시대에 너(汝)를 생각하는 하서(荷墅)의 인품은 여기저기에서 묻어난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언제든 뒤에서 웃음 짓는 그의 품성(稟性)은 아마 고향에서 유래한 것이리라.
넉넉한 고장에서 자란 그는 남을 우선하고 본인은 뒤에 있다.
나(吾)를 강조하지 않는 세상은 온유하다.
노을(霞)은 저녁에 하늘이 그리는 그림이다.
자정이 되면 우리는 떠나야 하리.
낡은 외투를 벗어 버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야 할 때, 노을은 자정이 되기 전에 하늘이 우리에게 주는 아름다운 선물이다.
이런 노을을 바라보는 여유만 있어도 충분히 훌륭한 삶을 살았다고 여겨도 될 만큼 이 세상은 각박하다.
모두들 노을을 바라본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 볼 뿐이지, 노을에 깃든 여유를 보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하서(荷墅)가 노을을 바라보는 여유를 갖은 마음을 부러워한다.
이제 아름다운 노을이 보이는 여의도의 집, “여하재(汝霞齋)”에서 본인이 꿈꿔왔던 세상을 그리며 살아가길 기대하며
내소헌(內素軒)에서 그의 벗 又人이 기문(記文)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