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이항蔡以恒
채이항蔡以恒
蔡以恒이란 분은 우리 역사를 통틀어
유일무이한 독특한 캐릭터이다.
내가 드라마 PD에게 추천하면서 조선판 돈키호테라고 정의내렸다.
성석제라는 소설가가 "인간의 힘"이라는 소설에서
채이항 선생을 이미 주인공으로 형상화 했다.
호는 오봉五峰, 경북 함창 출신.
조선왕조실록에는 기록이 많지 않다.
그건 문과급제자가 아니라서 국정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분의 5대조는 채수蔡壽 선생.
문과에 장원 급제한 분이다.
그런데 후대에는 문과 급제자가 없고
오봉선생대에 오면 지역의 한미한 가문으로 전락했다.
계속 문과에 실패하고 지역에서 향반으로 있던 오봉선생에게
어느날, 이괄의 난이 전해 지자 경북 함창에서
단독으로 인조가 있는 공주 행재소로 출진하는데
가는 도중에 난은 평정된다.
그리하여 고향으로 다시 돌아 오고
이번엔 정묘호란 소식을 듣고 출진하지만 가는 중간에
청나라와의 강화협상이 되고 전쟁은 끝난다.
고향에 와서 정부에 상소도 올리고 적극적으로 국정에도 관심을 갖지만
여전히 문과는 고사하고 소과에도 합격 못한다.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고향에서 동네 청년 30명 정도를
설득해 출전하고 이번에 남한산성 근처까지 진출해서
싸우는 데 모두들 죽고 혼자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전쟁이 종결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조정에 계속 강경한 상소를 올린다.
청나라와의 일전이나 혹은 임금이 해야 할 일들-
이 상소들은 상당히 과격하게도 보인다. 어떻게 임금이 용납했는지
의문이 든다. 인조가 읽었다면 상당히 불쾌한 내용이었다.
주 내용은 임금이 덕을 쌓고 정치를 잘해야 한다는 요지인데
듣기에 따라선 매우 불경한 내용이다.-
계속 정부에 강경한 상소를 하는데
청나라에선 조선의 강경파들을 청으로 압송하라고 조선정부를 압박하고
정부에서는 이에 굴복해 누굴 보낼까 노심초사하다가
재상급에서는 척화파의 상징인 청음 김상헌, 중간 관리는 지평인 조한영을
보내기로 하는데 정부관리 뿐 아니라 백두인 채이항도 이 속에 포함된다.
이렇게 3명이 청에 잡혀갔는데
채이항 선생은 청 태종과도 맞짱 뜰 정도로 배짱이 있었다.
아무튼 우여곡절끝에 조선으로 살아 돌아오고
인조는 이런 사실이 고마워 소과에도 급제 못한 오봉에게
군수도 시키고 평시서 령까지 진급시킨다.
죽으라고 보낸 인물이 살아서 돌아 온데 대한
마음의 부담이 컸으리라.
이후 정조 때 경헌이란 시호도 받는다.
내가 찾은 기록을 보면
채이항
1596년(선조 29)∼1666년(현종 7).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여구(汝久), 호는 오봉(五峰)이다. 경북 함창 출신이며 아버지는 贈참의 천서(天瑞)이며,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국신(國臣)의 딸이다.
인조반정 후 이괄(李适)의 난과 정묘호란 때 행재소(行在所)로 인조를 찾아가 배알하였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동지들과 의병을 모아 경상우병사 민영(閔泳)과 감사 심연(沈演) 등을 도왔으나 화의가 성립되자 향리로 돌아가 대청(對淸)복수책을 상소하였다.
병자호란 후 인조15년(1637년) 조정에 여러 시폐에 관해 강경한 상소를 올림으로써 실록에 처음 등장한다.
상당히 강경한 내용이다 인조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너그러이 받아들인다. 인조18년(1640년) 또 다시 청나라와 대적하라는 강경한 상소를 올리고 이게 빌미가 되어 척화신으로 청나라의 미움을 사 1640년 김상헌(金尙憲)·조한영(曺漢英) 등과 함께 심양(瀋陽)에 잡혀갔다. 김상헌은 고위 관료, 조한영은 중급 관리, 채이항은 일반 백성의 대표격이다.그후 인조21년(1643년)에 돌아왔다.1648년 그의 충의를 높이 사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제수되었고, 이어 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목천현감·활인서별제(活人署別提) 소촌찰방(召村察訪)·군자감주부 등을 역임하고, 1661년(현종 2) 석성현감(石城縣監)이 되어 치적과 진휼(賑恤)에 힘쓴 공으로 포상되었다. 그뒤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를 거쳐 평시서영(平市署令)에 이르렀다.
정조5년(1780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경헌(景憲)이다.
여러모로 드라마틱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