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책 8

- 조선시대 임금의 이름

by 우인

심심해서 조선의 왕들은 이름이 어떨까 생각하다가 조사해 본 것이다.


왕은 휘(諱)하는 이름으로 벽자(僻字)를 사용하였다. 일반적으로 쓰지 않는 자를 만들기도 하였다.


임금의 이름


太祖

名은 李成桂, 號는 松軒, 자는 중결(仲潔)이다. 등극 후에 이름을 단(旦), 자를 군진(君晉)으로 고쳤다. 자춘(子春)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최한기(崔閑奇)의 딸이다. 비는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韓氏)이다. 계비는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康氏)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담대했다. 특히 활솜씨가 뛰어났다. 1408년 5월 24일 창덕궁(昌德宮) 별전(別殿)에서 승하했다. 시호는 강헌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이다. 묘호(廟號)는 태조(太祖)이다. 능호는 건원릉(健元陵)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다.


定宗

이름은 경(曔)이고, 초명은 방과(芳果)이다. 자는 광원(光遠)이다. 태조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 韓氏)이다. 정종의 비 정안왕후(定安王后)는 판예빈시사 증문하좌시중월성부원군(判禮賓寺事贈門下左侍中月城府院君) 김천서(金天瑞)의 딸이다. 성품이 순직, 근실하고 행실이 단엄, 방정하면서 무략이 있었다. 일찍부터 관계에 나가 1377년(우왕 3) 5월 이성계(李成桂)를 수행해 지리산에서 왜구를 토벌하였다. 시호는 처음에는 온인공용순효대왕(溫仁恭勇順孝大王)이었으나 공정온인순효대왕(恭靖

溫仁順孝大王)으로 개시되었다. 묘호(廟號)는 정종(定宗)이다. 능호는 후릉(厚陵)으로 경기도 개풍군 흥교면 흥교리에 있다.


太宗

이름은 방원(芳遠)이다. 자는 유덕(遺德)이다. 태조의 다섯째 아들로, 어머니는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韓氏)이다. 비는 민제(閔霽)의 딸 원경왕후(元敬王后)이다. 1418년성덕신공상왕(聖德神功上王)의 존호를 받았다. 1421년에는 성덕신공태상왕으로 가봉(加封)되었다. 시호는 공정예철성렬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恭定睿哲成烈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이다. 묘호(廟號)는 태종이다. 능호는 헌릉(獻陵)으로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산 13번지 1호에 있다.


世宗

이름은 도(祹), 자는 원정(元正). 태종의 셋째아들이며,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閔氏)이다. 비는 심온(沈溫)의 딸 소헌왕후(昭憲王后)이다. 1408년(태종 8) 충녕군(忠寧君)에 봉해지고, 1412년 충녕대군에 진봉(進封)되었으며, 1418년 6월 왕세자에 책봉되었다가 같은 해 8월에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시호는 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고, 묘호는 세종(世宗)이며, 능호는 영릉으로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왕대리)에 있다.


文宗

이름은 향(珦), 자는 휘지(輝之). 세종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沈氏)이다. 비는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권전(權專)의 딸인 현덕왕후(顯德王后)이다. 1421년(세종 3)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450년 37세로 왕위에 올랐다. 시호는 공순흠명인숙광문성효대왕(恭順欽明仁肅光文聖孝大王)이고, 묘호는 문종(文宗)이며, 능호는 현릉(顯陵)으로 경기도 구리 인창동에 있다.


端宗

이름은 홍위(弘暐). 아버지는 문종이며, 어머니는 현덕왕후 권씨(顯德王后權氏)이다. 비는 여산부원군(礪山府元君)송현수(宋玹壽)의 딸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宋氏)이다. 1448년(세종 30) 8세 때 의정부의 청으로 왕세손에 책봉되고,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681년(숙종 7)에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 전 현감 신규(申奎)의 상소에 의해 복위가 결정되었다. 시호를 공의온문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恭懿溫文純定安莊景順敦孝大王)으로, 묘호를 단종으로 추증하고, 능호(陵號)를 장릉(莊陵)이라 하였다.


世祖

이름은 유(瑈). 자는 수지(粹之). 세종의 둘째 아들이고 문종의 아우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沈氏)이다. 왕비는 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尹氏)이다. 처음에 진평대군(晉平大君)에 봉해졌다가 1445년(세종 27)에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 고쳐 봉해졌다. 시호는 승천체도열문영무지덕융공성신명예흠숙인효대왕(承天體道烈文英武至德隆功聖神明睿欽肅仁孝大王)이고, 묘호는 세조(世祖)이다. 능호는 광릉(光陵)으로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면 부평리에 있다.

叡宗

이름은 황(晄)이다. 자는 명조(明照)이며, 초자(初字)는 평보(平甫)이다. 세조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파평부원군 윤번(尹璠)의 딸 정희왕후(貞熹王后)이다. 비(妃)는 영의정 한명회(韓明澮)의 딸 장순왕후(章順王后)이다. 계비는 우의정 한백륜(韓伯倫)의 딸 안순왕후(安順王后)이다. 처음에는 해양대군(海陽大君)에 봉해졌다. 1457년(세조 3) 왕세자에 책봉되었고, 1468년 9월 7일 세조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아 19세에 수강궁(壽康宮)에서 즉위하였으며, 재위 1년 2개월 만에 20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시호는 양도흠문성

무의인소효대왕(襄悼欽文聖武懿仁昭孝大王)이다. 묘호는 예종(睿宗)이다. 능호는 창릉(昌陵)으로 경기도 고양시 신도읍 용두리에 있다.


成宗

이름은 혈(娎). 세조의 손자이고, 덕종(德宗 : 세조의 長子로 追尊)의 둘째아들이다. 어머니는 영의정 한확(韓確)의 딸 소혜왕후(昭惠王后)이고, 비(妃)는 영의정 한명회(韓明澮)의 딸 공혜왕후(恭惠王后)이다. 계비(繼妃)는 우의정 윤호(尹壕)의 딸 정현왕후(貞顯王后)이다. 1461년(세조 7)자산군(者山君)에 봉해졌다가 1468년 잘산군(乽山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 태어난 지 두 달도 채 못되어 덕종이 죽자 세조가 궁중에서 키웠다. 세 왕비와 여덟 후궁에게서 아들 19인과 딸 11인을 낳았다. 제10대 왕 연산군은 폐비 윤씨의 아들이며 제11대 중종이 된 진성대군 역(晉城大君懌)은 정현왕후 윤씨의 아들이다. 시호는 강정인문헌무흠성공효대왕(康靖仁文憲武欽聖恭孝大王)이고, 묘효는 성종(成宗)이다. 능호는 선릉(宣陵)으로 광주(廣州)에 있었는데, 현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과 함께 있다.


燕山君

이름은 융(㦕). 성종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관봉상시사(判奉常寺事) 윤기견(尹起畎 혹은 尹起畝)의 딸로 폐비윤씨(廢妃尹氏)이다.


中宗

이름은 역(懌)이다. 자는 낙천(樂天)이다. 성종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정현왕후(貞顯王后)윤씨(尹氏)이다. 비(妃)는 좌의정 신수근(愼守勤)의 딸이다. 제1계비(第一繼妃)는 영돈녕부사 윤여필(尹汝弼)의 딸 장경왕후(章敬王后)이며, 제2계비는 영돈녕부사 윤지임(尹之任)의 딸 문정왕후(文定王后)이다. 1494년 진성대군(晉城大君)에 봉해졌다. 1506년 9월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 등이 반정(反正)을 일으켜 연산군을 쫓아낸 뒤 왕으로 추대되었다. 1544년 11월 14일 세자인 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5일 창경궁의

환경전(歡慶殿)에서 재위 39년 만에 승하하였다. 시호는 공희휘문소무흠인성효대왕(恭僖徽文昭武欽仁誠孝大王)이다. 묘호는 중종(中宗)이다. 능호는 정릉(靖陵)으로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다.


仁宗

이름은 호(岵)이다. 자는 천윤(天胤)이다. 중종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윤여필(尹汝弼)의 딸 장경왕후(章敬王后)이다. 비는 첨지중추부사 박용(朴墉)의 딸 인성왕후(仁聖王后)이다. 1520년(중종 15) 세자로 책봉되었다. 25년 간 세자의 자리에 있다가 1544년 즉위하였다. 경복궁 정침(正寢)에서 31세로 죽었다. 시호는 영정헌문의무장숙흠효대왕(榮靖獻文懿武章肅欽孝大王)이다. 묘호(廟號)는 인종이다. 능호는 효릉(孝陵)으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다.


明宗

이름은 환(峘), 자는 대양(對陽). 중종의 둘째 아들로 인종의 아우이고,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윤지임(尹之任)의 딸 문정왕후(文定王后)이다. 비는 인순왕후(仁順王后)로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심강(沈鋼)의 딸이다. 중종은 제1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에서 인종을 낳고, 제2계비인 문정왕후(文定王后) 윤씨에서 명종을 낳았다. 중종이 죽고 인종이 즉위했으나 재위 8개월만에 죽자, 당시에 12세였던 명종이 즉위하였다. 34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인순왕후 심씨와의 사이에 순회세자(順懷世子)를 낳았으나 1563년에 13세로 죽고, 왕위는 덕흥부원군(德興府院君 : 중종의 아홉째아들)의 셋째 아들이 계승했으니, 이가 곧 선조이다. 시호는 공헌헌의소문광숙경효대왕(恭憲獻毅昭文光肅敬孝大王)이고, 묘호는 명종(明宗)이며, 능호는 강릉(康陵)으로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다.


宣祖

초명은 균(鈞), 뒤에 연(昖)으로 개명하였다. 1552년 11월 11일 한성(漢城) 인달방(仁達坊)에서 출생하였다. 중종의 손자이며,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초(岧)의 셋째아들이고, 어머니는 증영의정(贈領議政) 정세호(鄭世虎)의 딸인 하동부대부인(河東府大夫人) 정씨(鄭氏)이다. 비는 박응순(朴應順)의 딸 의인왕후(懿仁王后)이며, 계비는 김제남(金悌男)의 딸 인목왕후(仁穆王后)이다. 명종의 사랑을 받았으며 성장하자 하성군(河城君)에 봉해졌고, 1567년 명종이 후사없이 죽자 즉위하였다. 시호는 소경정륜입극성덕홍렬지성대의격전희운현문의무성예달효대왕(昭敬正倫立極盛德洪烈至誠大義格天熙運顯文毅武聖睿達孝大王)이고, 묘호는 선조(宣祖)이며, 능호는 목릉(穆陵)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다.


光海君

이름은 혼(琿). 선조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공빈 김씨(恭嬪金氏)이다. 비(妃)는 판윤 유자신(柳自新)의 딸이다.


仁祖

이름은 종(倧)이다. 자는 화백(和伯)이다. 호는 송창(松窓)이다. 선조의 손자로, 정원군(定遠君 : 추존왕 元宗)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좌찬성 구사맹(具思孟)의 딸인 인헌왕후(仁獻王后)이다. 비(妃)는 영돈녕부사 한준겸(韓浚謙)의 딸인 인열왕후(仁烈王后)이다. 계비(繼妃)는 영돈녕부사 조창원(趙昌遠)의 딸인 장렬왕후(莊烈王后)이다. 1607년(선조 40) 능양도정(綾陽都正)에 봉해졌다. 이어 능양군에 진봉(進封)되었다. 시호는 헌문열무명숙순효대왕(憲文烈武明肅純孝大王)이다. 묘호는 인조(仁祖)이다. 능호은 장릉(長陵)으로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에 있다.


孝宗

이름은 호(淏)이다. 자는 정연(靜淵)이다. 호는 죽오(竹梧)이다. 인조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인열왕후(仁烈王后)이다. 비는 우의정 장유(張維)의 딸 인선왕후(仁宣王后)이다. 1619년 5월 22일 서울 경행방(慶幸坊) 향교동(鄕校洞: 서울시 종로구 종로3가 부근)에서 태어났다. 1631년 12세에 장씨와 혼인했다. 1626년(인조 4)봉림대군(鳳林大君)에 봉해졌다. 1659년 5월 4일 41세를 일기로 창덕궁에서 승하했다. 시호는 선문장무신성현인대왕(宣文章武神聖顯仁大王)이다. 묘호(廟號)는 효종이다. 능호는 영릉(寧陵)으로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왕대리)에 있다.

顯宗

이름은 연(棩)이다. 자는 경직(景直)이다. 효종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우의정 장유(張維)의 딸 인선왕후(仁宣王后)이다. 비는 영돈녕부사 김우명(金佑明)의 딸 명성왕후(明聖王后)이다. 효종이 봉림대군(鳳林大君) 시절에 청나라의 볼모로 심양(瀋陽)에 있을 때 심관(瀋館)에서 출생하였다. 1649년(인조 27) 왕세손에 책봉되었다가 효종이 즉위하자 1651년(효종 2)에 왕세자로 진봉(進封)되었다. 시호는 소휴순문숙무경인창효대왕(昭休純文肅武敬仁彰孝大王)이다. 묘호는 현종(顯宗)이다. 능호는 숭릉(崇陵)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다.


肅宗

이름은 순(焞), 자는 명보(明普). 현종의 외아들이며, 어머니는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김우명(金佑明)의 딸인 명성왕후(明聖王后)이다.비(妃)는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김만기(金萬基)의 딸인 인경왕후(仁敬王后)이고, 계비(繼妃)는 영돈녕부사 민유중(閔維重)의 딸인 인현왕후(仁顯王后)이며, 제2계비는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김주신(金柱臣)의 딸인 인원왕후(仁元王后)이다. 1661년 8월 15일 경덕궁 회상전(會祥殿)에서 태어나 1667년 정월 왕세자에 책봉되고, 1674년 8월에 즉위하여 재위 46년 되던 해 6월 8일 경덕궁 융복전(隆福殿)에서 승하하였다. 시호는 현의광륜예성영렬장문헌무경명원효대왕(顯義光倫睿聖英烈章文憲武敬明元孝大王)이고, 묘호는 숙종(肅宗)이다. 능호는 명릉(明陵)으로 경기도 고양시 신도읍 용두리의 서오릉(西五陵)에 있다.


景宗

이름은 윤(昀), 자는 휘서(輝瑞). 숙종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희빈 장씨(禧嬪張氏)이다. 비(妃)는 심호(沈浩)의 딸 단의왕후(端懿王后)이고, 계비는 어유구(魚有龜)의 딸 선의왕후(宣懿王后)이다. 1689년(숙종 15) 원자(元子)로 정호됨. 시호는 덕문익무순인선호대왕(德文翼武純仁宣孝大王)이고, 묘호는 경종이며, 능호는 의릉(懿陵)으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에 있다.


英祖

이름은 금(衿), 자는 광숙(光叔), 호는 양성헌(養性軒). 숙종의 세 아들(景宗·英祖·延齡君) 중 둘째이며, 어머니는 화경숙빈(和敬淑嬪) 최씨이다. 비는 서종제(徐宗悌)의 딸 정성왕후(貞聖王后)이고, 계비는 김한구(金漢耉)의 딸 정순왕후(貞純王后)이다. 1699년(숙종25)연잉군(延礽君)에 봉해졌으나 어머니의 출신이 미천했던 관계로, 노론 유력자인 김창집(金昌集)의 종질녀로서 숙종 후궁이던 영빈(寧嬪) 김씨의 양자노릇을 하였으며, 이로 인해 숙종 말년 왕위계승문제가 표면화되었을 때 그 이복형인 왕세자(후일의 경종)를 앞세우는 소론에 대립했던 노론의 지지와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 올린 묘호(廟號)는 영종(英宗)이었으나, 1890년(고종 27)에 영조로 고쳐 올렸다. 능은 양주에 있는 원릉(元陵)이다.


正祖

이름은 산(祘).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 영조의 둘째아들인 장헌세자(莊獻世子, 일명 思悼世子)와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비(妃)는 청원부원군(淸原府院君)김시묵(金時默)의 딸 효의왕후(孝懿王后)이다. 1759년(영조 35) 세손에 책봉되고 1762년장헌세자가 비극의 죽음을 당하자 요절한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孝章世子 : 뒤에 眞宗이 됨)의 후사(後嗣)가 되어 왕통을 이었다. 1800년 6월에 49세의 나이로 죽자 그의 유언대로 융릉 동쪽 언덕에 묻혔다가 그의 비 효의왕후가 죽으면

서(1821) 융릉 서쪽 언덕에 합장되어 오늘날의 건릉(健陵)이 되었다. 시호는 문성무열성인장효왕(文成武烈聖仁莊孝王)이다. 대한제국이 성립되자 1900년에 황제로 추존되어 선황제(宣皇帝)가 되었다.


純祖

이름은 공(玜), 자는 공보(公寶), 호는 순재(純齋)이다. 정조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박준원(朴準源)의 딸 수빈(綏嬪)이다. 1800년(정조 24) 정월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이 해 6월 정조가 승하하자, 7월 11세의 어린 나이로 창덕궁 인정문(仁政門)에서 즉위했다. 시호는 연덕현도경인순희문안무정헌경성효대왕(淵德顯道景仁純禧文安武靖憲敬成孝大王)이다. 묘호는 순조(純祖)이다. 능호는 인릉(仁陵)으로 서울 서초구 내곡동 산13의 1에 있다.


憲宗

이름은 환(奐)이다. 자는 문응(文應)이다. 호는 원헌(元軒)이다. 순조의 손자이다. 익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풍은부원군(豐恩府院君)조만영(趙萬永)의 딸 신정왕후(神貞王后)이다. 비는 영흥부원군(永興府院君)김조근(金祖根)의 딸 효현왕후(孝顯王后)이다. 계비는 익풍부원군(益豊府院君)홍재룡(洪在龍)의 딸 명헌왕후(明憲王后)이다. 1830년(순조 30) 왕세손에 책봉되었다.1849년 창덕궁 중희당(重熙堂)에서 23세로 후사 없이 죽었다. 수용(睟容 : 임금의 畵像) 1본이 선원전(璿源殿)에 봉안되어 있다. 시호는 경문위무명인철효대왕(經文緯武明仁哲孝大王)이다. 묘호는 헌종(憲宗)이다. 능호는 경릉(景陵)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다.


哲宗

이름은 변(昪)이다. 초명은 원범(元範)이다. 자는 도승(道升), 호는 대용재(大勇齋)이다. 정조의 아우 은언군(恩彦君)의 손자이다. 전계대원군 광(全溪大院君㼅)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용성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 염씨(廉氏)이다. 1849년 6월 6일 헌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왕후(純元王后 : 純祖妃, 金祖淳의 딸)의 명으로 정조의 손자, 순조의 아들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이 때 나이 19세였다. 혈육으로는 궁인 범씨(范氏) 소생의 영혜옹주(永惠翁主)가 있어 금릉위(錦陵尉) 박영효(朴泳孝)에게 출가했을 뿐 후사가 없었다. 시호는 희륜정극수덕순성문현무성헌인영효(熙倫正極粹德純聖文顯武成獻仁英孝)이다. 묘호는 철종(哲宗)이다. 능호는 예릉(睿陵)으로, 경기도 고양시 원당읍 원당리에 있다.


高宗

아명은 명복(命福), 초명은 재황(載晃), 후에 희(熙)로 개명, 자는 성림(聖臨, 후에 明夫로 고침). 호는 성헌(誠軒). 영조의 현손(玄孫) 흥선군(興宣君) 이하응(李昰應)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여흥부대부인 민씨(驪興府大夫人閔氏)이다. 1852년 7월 25일 정선방(貞善坊)에서 출생하였다. 즉위 후인 1866년 9월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 민치록(閔致祿)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니 이가 명성황후(明成皇后)이다.


純宗

이름은 척(坧), 자는 군방(君邦), 호는 정헌(正軒). 1874년 2월 창덕궁의 관물헌(觀物軒)에서 고종과 명성황후(明成皇后, 閔妃)의 둘째 아들로 탄생하였다. 탄생 다음 해 2월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882년에 민씨(뒷날의 純明孝皇后)를 세자빈으로 맞았다. 1897년 대한제국의 수립에 따라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1904년 새로이 윤씨를 황태자비로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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