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짧은 생각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짧은 생각
보납산을 바라보며 북한강변을 강아지와 걸어갈 때
가끔씩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고등학생 때 읽었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이란 詩처럼
내가 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상념들이다.
내 삶의 두 갈래 길에서 다른쪽 길을 갔으면
‘지금의 나는 어디를 걷고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다.
가령 내가 서울에 오지 않고 영월에서 계속 살았으면
지금의 나는 어떠한 모습일까?
아마 영월중, 영월고를 나와 공무원 시험 보고 군청에 근무하며
시동인회 하면서 아줌씨들과 김삿갓 묘소에 야유회도 다니고
동강(東江)서 천렵도 하고 가끔은 강릉 가서 회나 먹고 놀다가
어느 정도 되면 면장 정도로 – 내 초등학교 동창도 면장으로 퇴직했으니,
나도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지만 – 퇴직해서
영월의 어느 계곡에 집을 짓고 세월을 낚고 있을테지.
혹은 졸업 때 지금과는 다른 직장을 택했다면
아마 평창에서 조합장으로 – 이것도 과분하지만 – 있다가
외가 근처에 집을 짓고 외사촌 형이랑 같이 술 먹고 한량생활 하고 있을테지.
아주 자잘한 선택은 말고 큰 선택의 기로에서
여러 개의 가지 않은 길을 머리 속으로 그려 보면,
제2의 나, 제3의 나, 제4의 나 등
아주 여러 개의 또 다른 ‘나’가 다른 길에서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제1의 나는 북한강변을 걸어가오.
제2의 나는 영월 청령포 길을 걸어가오.
제3의 나는 김천 직지사 뒤 山길을 걸어가오.
제4의 나는 대전 갑천 수변길을 걸어가오.
제5의 나는 강릉 경포대 해변길을 걸어가오.
제6의 나는 오사카 도돈부리 길을 걸어가오.
제7의 나는 제주 사려니숲길을 걸어가오.
제8의 나는 장흥 탐진강변길을 걸어가오.
(길은 호젓한 곳이 적당하오.
강아지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소.)
뭐, 가지 않은 길을 후회하거나 미련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고,
언제나 결론은 ‘그래도 지금의 ’나‘가 괜찮다’ 이다.
다른 길을 갔으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 길을 가지 않아
회한이나 미련은 없고 어떠한 길을 택했든
지금의 ‘나’가 가장 좋은 것 같으니 행복하다.
(이것도 클리셰이다)
북한강변서 날마다 산책하는 오늘이,
임인년 仲夏 內素軒에서 又人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