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일기 2
난 항상 경계인이었다.
난 서울사람도 아니고
난 촌사람도 아니고
난 브루조아도 아니고 프롤레타리아도 아니었다.
난 늘 망명자라고 생각했다.
읍 출신이라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고
서울출신도 아니어서 도회적이지도 않고
아버지가 공무원이어서 그리 가난한 적도 없었다.
40년 전에 유치원을 졸업했다면 서울사람도 놀란다.
내 또래중 유치원을 다닌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서울서 살 때 내 고향을 물으면 당혹스러웠다.
태어나기는 평창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는 영월서 다녔고 뭐, 애매모호한 상태다.
고향을 대답할 땐 처음엔 영월, 나중엔 평창이라고 답한다.
왜냐고?
내 유년의 기억은 청령포와 낙화암, 송림(松林), 금강정, 영모전,
서강, 동강,덕포, 봉래산, 보덕사 등이었으나
중학생때 여름방학이면 어머니의 고향인 평창읍 多水里에서
한 달씩 보냈으니까.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다수리에서 방학을 보냈다.
또 대학 2학년 때 휴학하고 1년간을 다수리에서 농사를 지었었다.
그래서 고향을 물으면 다수리라고 대답한다.
아무튼 서울서 영월이 멀지도 않은데 서울로 간 이후에
20년이 지나서야 영월을 찾았다.
영월초등학교를 방문했는데 예전에는 엄청 크다고 느꼈는데
담이 얼마나 낮은지 학교는 얼마나 좁은지 세월의 간극을 느꼈다.
왜 내가 망명자라고 생각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사춘기시절 영월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서울에 갔는데
날 버렸다고 생각했다 영월이,
여전히 영월은 내게 금단(禁斷)의 땅이었고
애증(愛憎)이었으며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몸은 열병처럼 꿈꾸었으나 마음은 여전히 거부하였다.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
마치 추방당한 카인처럼
난 주변을 떠돌고 있다.
그리운 영월!!!
마음은 그리워 하나
몸은 거부하는 곳,
나는 버림받은 망명자라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