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일기亡命日記 7

by 우인

망명일기 7


어제 꽤 많은 술을 마셨더니 습관적으로 새벽에 일어난다.

그리고는 잠이 오지 않는다.

책상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5월 3일 일요일 동네 성당에 예비자 신자반에 등록하고

-예전부터 관심은 갖고 있었지만 게으름을 피우던 나에게

직장 동료가 아침 9시에 나오라 해서 9시 30분에 갔다-


처음으로 교리를 배우는 날,

수녀님의 첫마디가 나의 뒷통수를 때린다.

"나는 누구인가?"

항상 생각해 왔다고 자부해 왔지만 막막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답이 없다.


나는 누구인가?

사춘기시절, 한 평짜리 다락방에서

그렇게 많이 공상을 하고

그렇게 많은 책을 읽으며

그렇게 많이 생각했는데

나를 누구라고 말할 수 없다니...

나이 쉰이 넘도록 나를 정의할 수 없다니

헛살았나?


술을 많이 마시면 항상 새벽에 일어나고

정신은 은화처럼 맑다.

내가 일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지리산에서 만났던 선비.

나는 조선의 마지막 선비라고 기억 한다.

겸산謙山선생, 내가 만났을 때가 90세였고

그때가 1992년이니, 지금은...

선생님의 서당에서 1박2일을 지내며 강의를 들었었는데

기억나는 건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으로 여겨지는 말씀,

내 팔뚝의 시계를 가리키며

시계를 차면 시간을 봐야지

우리는 서양의 물건에 정신을 뺏기고 있다는 일갈이었다.


면암 최익현 선생의 제자라고 누군가 얘기했는데

연세로 따지면 그건 불가하고 아마 면암의 학통을 이어 받았겠지.


그 사실이 중요한 건 아니고

그분은 우리가 갖고있던 편견들,

고루한 유학자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침 5시에 일어 나셔서 상투를 틀고

정갈한 몸가짐에 90세의 연세가 믿겨지지 않을 만큼

맑은 목소리로 책을 읽으시던 모습이 기억 난다.


서당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의 제자가 된

여섯 명의 학생이 있었다.

선생님 글씨는 얼마나 예쁜지 탐났지만

끝내 달라는 말은 못했다.

-뭐, 어디 가서 달라고 해 본 적은 평생 없지만

탐나는 건 탐나더라 -


내가 항상 역사책을 읽다가 느끼는 건

조선 500년을 지탱한 힘은 선비정신이라고 단언한다.


중학생 때인 1973년, 아버지와 여행했을 때도 느꼈던 점인데

강원도 정선, 소탄이라는 동네를 가서 만났던 학자분,

아버지는 할아버지 제자라고 하시던데

호는 기억 안나고 성함은 기억 난다.


우리 할아버지의 호는 海岳,

어렸을 때 부터 들었던 "해악선생장종계자손서"라는 글은

내가 10년 전에 한글로 번역했는 데

한, 90%는 제대로 한 거 같은 데 검증을 받아 봐야겠다.


그때 그 분하고 식사를 하다가

밥상에 놓여 있는 버섯을 갖고 말씀하시는데

구체적인 기억은 없지만 일상적인 말투로

이 버섯이 이 밥상에 놓이게 될 때까지

어떻게 이 버섯이 탄생하고

이 밥상에 어떻게 놓여지게 된 것인가를

우주에서 부터 시작해서 산이 나오고

그 뒤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청 감동 받았던 기억이 난다.


아, 난 단순히 버섯이었는데

버섯을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라는 감동이었다.

그때부터 조선시대 유학자는 그리 고리타분하지도

관념적이지도 않은 매우 실사구시적인 사람이라는 것과

우리가 선비에 대해 오해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을 갖었다가

겸산선생을 만나면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수덕사에서 만난 묘공妙空스님이 기억 난다.

아주 인상 깊었던 스님인데

그 때 바로 출가한 지 한 달쯤 되었나?

원래 스님들한테 출가한 이유는 물으면 안 되는 데

물어 봤더니 뭐,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는데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던 거 같다.


은사스님은 묘공妙空이라는 법명을 화두라고 했다.

수덕사의 만공滿空스님과 연관이 있다고 했는데

자세한 건 잘 모른다.


나는 누구인가?

왜 갑자기 두 분이 기억 난 거지.


겸산과 묘공.


그 때 좀 더 새로운 삶의 방향을 잡았으면

내 인생도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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